[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별자리와 천문(天文)
천문을 읽은 전생 생각느니 (돌)
뉘 피운 꽃들인가 여기저기 (달)
알알이 박힌 아카식 레코드 (초)
천문이 인문이고 권좌일세 (심)
... 25.2.5. 불한시사 합작시
설명 1:
산스크리트어의 '아카사(ākāśa)'는 단순한 ‘허공’이 아니라, 존재가 머물고 드러나는 근원적 마당을 뜻한다. 이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모든 형상과 운동을 품어내는 가능성의 바탕이며, 소리와 빛, 사유와 생명의 흔적이 스며드는 자리다.
신비학에서 말하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는 바로 이 아카사 위에 새겨진 우주의 기억을 가리킨다. 한 개인의 생애를 넘어,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 생각과 감응, 인연과 흐름이 시간의 선형을 넘어 축적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것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도 끊임없이 갱신되는 ‘살아 있는 우주적 기록’이다.
헬레나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는 이를 체계적으로 언급하며,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기억마당으로 이해하였다. 여기서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은 비어 있는 공백이 아니라, 무수한 정보와 흔적이 잠재된 ‘기억의 바다’로 간주된다.(사자산기슭 초암)
설명 2:
천문(天文)은 하늘의 글이다. 별은 흩어진 점이 아니라, 읽히기를 기다리는 무늬며 문(文)은 곧 문장 이전의 결(紋), 우주가 스스로 새겨 놓은 흐름의 자국이다. 밤하늘의 별자리 또한 단순한 물리적 배치가 아니라, 인간이 우주의 질서와 의미를 읽어내려는 상징적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별은 빛으로 쓰인 점들이고, 그 사이의 어둠은 아직 읽히지 않은 문맥이다. 천문을 읽는다는 것은 곧, 우주의 기록과 인간 의식이 만나는 지점을 더듬는 일이다.
사람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잇고,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사유는 단순한 신비주의를 넘어, 인간의 의식과 우주의 구조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관점을 내포한다. 마음의 파동은 사물의 파동과 떨어져 있지 않으며, 존재의 모든 흔적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주적 마당에 남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 흐르고 있던 질서를 마음이 더듬어 읽어낸 것에 가깝다. 천문학은 별의 위치와 운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되 그 근저에는 ‘읽음’이 있다. 곧 빛의 궤적을 따라가며 시간의 깊이를 헤아리고 보이지 않는 관계를 추론하는 일이다.
하늘의 무늬를 읽는다는 것은 곧 존재의 결을 읽는 일이며 외부의 별자리를 탐구하는 동시에 마음의 무늬를 비추는 일이다. 별은 멀리 있으나 그 질서는 내 마음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고 결구의 "천문이 곧 인문"이라는 말은 하늘의 문장이 인간의 삶 속에서 다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문은 권좌가 아니고 지배의 자리도 아니며 읽고, 응답하고, 함께 흐르는 천문(天文)의 자리다. 한 점의 별이 흔들릴 때, 나 또한 미세하게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이어져 우주라는 한 문장이 된다.(북경 밀운-密雲에서 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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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