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다리고 기다리던 약속 날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억제할 수 없이 설레는 마음은 흡사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 가는 날 아침과 비슷하였다. 그렇지만 K 교수는 ‘펜스 룰’을 잊지 않았다. 학교로 출근하자마자 이과대학의 ㅈ 교수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전화했다. 정오쯤에 K 교수는 ㅈ 교수와 같이 미녀식당으로 갔다.
방학이 되면 교수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 나올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공 계열 교수들은 연구과제와 관련된 실험을 하므로 대부분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왔다. ㅈ 교수도 방학 동안에 날마다 학교에 나오는 사람이었다. ㅈ 교수는 이른바 KS 출신으로서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특히 과학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그는 컴퓨터 공학 전공으로 카이스트(KAIST)에 수석으로 들어가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스카우트 되어 S 대학 교수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었고, 사회생활은 빵점이었다. 학교에 출근하면 연구실과 강의실과 실험실만 오갔다. 다른 사람과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았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혼자 먹었다. 그러니 연구 업적은 뛰어나지만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그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총장의 인정을 받고 아내의 사랑을 받을지는 몰라도, K 교수가 보기에는 매우 답답한 교수였다.
ㅈ 교수가 평가실장이라는 보직을 맡은 적이 있었다. 해마다 교수들의 업적을 평가하여 점수로 환산하는 작업을 하는 곳이 평가실이다. 교수들은 학생을 상대로 평생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유분방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믿는 사람들이 교수다. 총장은 자기 말을 잘 듣지 않는 교수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찾다가 좋은 방법을 발견하였다. 업적평가기준을 터무니없이 높이면 된다고 누군가 총장에게 알려 주었다.
S 대학은 모든 중요한 결정을 교무위원회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다. 총장 혼자서 결정하는 상명하달식 독재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총장은 그전에는 건설업에 종사하던 기업인 출신이어서 회사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토론을 통해서 의견을 수렴하고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총장은 ㅈ 교수를 불러서 업적평가 기준을 카이스트의 2배로 높이라고 지시했다. ㅈ 교수 자신도 달성하기 힘든 기준이었다. 그렇지만 ㅈ 교수는 나약한 예스맨이었기 때문에 총장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들여 업적평가 기준을 고쳤다.
그 뒤 S 대학 교수들은 전국 대학들 가운데서 가장 엄격한 업적평가 기준을 달성하기 위하여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업적평가 기준을 달성할 수가 없었다. 해마다 점수가 모자라서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교수가 늘어났다. K 교수가 보기에는, 교수들이 업적평가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기준이 높기 때문이었다.
업적평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교수들을 교무처장이 한 사람씩 불러서 면담했다. 교무처장은 넌지시 말했다. “점수가 낮아서 잘못하면 이번 재임용에서 탈락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총장님을 집으로 한번 찾아가 보세요. 총장님에게 잘 부탁해 보세요.”
교무처장의 조언 아닌 조언을 받아들여 선물을 사 들고 총장 집을 다녀온 사람은 어김없이 재임용 탈락에서 구제가 되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교수는 총장을 찾아가서 손을 비비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보직교수들도 총장 앞에서는 모두 예스맨이 되었다. S 대학 교수들은 서서히 총장에게 길들어 갔다.
오랜만에 보는 미스 K는 역시 아름다웠다. 그녀는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고 아래에는 하얀색 바지를 입었다. 뒤태를 보니 허리에 군살이 하나도 없었다. 엉덩이에는 적당히 살이 붙었고 다리도 아주 날씬했다. 걸음걸이는 날렵하였고, 온몸에서 건강미가 넘쳐났다.
미스 K를 처음 보는 ㅈ 교수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큰 용기를 내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사장님, 미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미스 K가 의례적으로 대답했다.
K 교수가 한 마디 했다.
“ㅈ 교수는 너무 직선적이네요. 그렇게 말하면 감동이 없어요. 내가 시범을 보일게요.”
K 교수가 미인을 칭찬하는 시범을 보였다.
“내가 보기에 사장님은 수화미인과 폐월미인을 합한 미인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미스 K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하. 제가 중국 고전에 나오는 미인과 사장님을 견주어 보았어요. 수화(羞花)미인이란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인데, 그 유명한 양귀비를 말합니다. 폐월(閉月)미인이란 달이 부끄러워 구름 사이로 숨어버릴 정도의 미인이라는 말로서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이를 말합니다. 사장님은 양귀비와 초선이를 합한 만큼의 미인이라는 뜻이지요. 제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호호호. K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양귀비와 초선이를 보신 적이 있나요? 호호호...”
K 교수는 미스 K가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서 두 사람을 합한 것만큼 미인이라고 과장하여 아부성 발언을 했다. 그러나 미스 K는 그걸 부정하지 않고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K 교수가 슬쩍 딴지를 거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은정 씨는 미인 소리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지겹지 않은가요?”
“아니에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에요. 교수님은 여자 심리를 잘 모르나 봐.”
미스 K는 마지막 말은 존댓말이 아니고 반말로 했다.
여자란 참으로 이상한 존재다. 못생긴 여자에게 빈말로 미인이라고 칭찬하면 그저 좋아한다. 예쁘지 않아도 예쁘다고 말해주면 그저 좋아한다. 그런데 미스 K는 실제로 예쁘기까지 하니, K 교수가 볼 때 미스 K는 아주 기고만장하다. 자기가 꽃다운 20대 여자가 아니고 40대 중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공주병과 왕비병에 단단히 중독된 것 같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