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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시사 합작시 77. 백삼향(白蔘香)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백삼향(白蔘香)

 

   한 줄기 푸른 연기의 사라짐 (돌)

   그윽함을 남긴 영혼의 궤적 (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달)

   갈 곳 모르지만 온 곳일테지 (심)

 

               ... 25.2.24. 불한시사 합작시

 

 

한빛 댁에서 오찬을 마무리할 즈음에 주인이 선향 하나를 피웠는데, 그 향기가 몹시 맑고 좋았다. 라석이 가져다준 선물이라는데, 그가 중국 장춘여행에서 그곳 지인에게 선물받은 백삼향(白蔘香)이란 선향이었다. 이름 그대로 저 백두산록의 약초를 재료로 한 것이라니, 더욱 귀하게 여겨지고 경건해졌다.

 

 

향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고 소중하게 다뤄져왔다. 향은 공간을 정화하며 오감을 통해 심신을 맑게 하고 기운을 북돋아 준다. 향을 보고 듣고 묻고 생각하는 수행과 명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철학적, 종교적, 의례적 용도나 향례, 향도가 이어져 왔으나 지금은 거의 잊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귀한 전통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 한 가닥 선향이 타올라 연기가 피어오르고 흩어지고 사라지며, 그 향기가 은은히 번지는 그 짧은 일생!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또 얻고 주는 것인가. 어느새 향기는 번져 사라지고 그 향 재만 땅에 떨어져 잠시 머물다가 스러져가고 있다. (옥광)

 

라석은 그날의 향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백두산의 흰 인삼이 품고 있던 산천의 정기와 세월의 숨결이 한 가닥 연기로 피어올라 한빛 벗의 사랑방에 머물렀다. 그것은 단순한 향내가 아니었다. 백두산의 바람과 숲, 흙과 물, 햇빛과 달빛이 오랜 세월 빚어낸 생명의 기억이었으며, 멀리 장춘에서 이어져 온 인연의 향기였다.

 

심물철학의 관점에서 향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향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문을 여는 매개이다. 향목과 약초는 물(物)이지만, 그것이 타오르며 피워내는 향기는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흔들고 정신을 맑게 하여 심(心)의 세계를 일깨운다. 심과 물은 둘이 아니며, 향은 그 둘이 서로 감응하는 가장 아름다운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물파미학의 시각으로 보면 향기는 보이지 않는 파동이다. 눈으로는 연기를 보지만 실제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 연기 속에 실려 오는 미세한 향의 물결이다. 향기는 공간을 지나 사람의 호흡 속으로 스며들고, 기억을 흔들며, 감정을 깨우고, 생각의 결을 바꾸어 놓는다. 마치 물결이 호수의 표면을 따라 번져가듯 향의 파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며 공명의 세계를 만든다.

 

 

예로부터 동아시아의 문인들은 시(詩)ㆍ서(書)ㆍ화(畵)ㆍ차(茶)를 군자의 사예(四藝)로 여겼다. 그러나 그 네 가지를 하나로 묶어 주는 보이지 않는 다섯 번째 예술이 바로 향(香)이었다. 향이 피어오르면 시는 더욱 깊어지고, 붓끝은 더욱 맑아지며, 그림은 더욱 고요해지고, 차는 더욱 그윽해진다. 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서화차의 정신을 이어주는 숨은 다리와도 같다.

 

시는 마음의 향기를 언어로 피워내는 일이며, 서예는 향기의 흐름을 먹빛으로 옮기는 일이다. 그림은 향이 머무는 경계를 형상으로 드러내는 것이고, 차는 물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씻어내는 수행이다. 그리고 향은 이 모든 예술의 바탕에서 보이지 않는 음악처럼 흐르며 공간과 정신을 조율한다.

 

백삼향 한 가닥이 다 타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속에는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 물질과 정신이 함께 만나는 작은 우주가 들어 있다. 연기는 하늘로 흩어지고 향기는 바람 속으로 사라지지만, 그 향을 맡은 사람의 마음에는 오래도록 남아 새로운 시가 되고, 한 획의 글씨가 되고, 한 폭의 그림이 되고, 한 잔의 차가 된다.

 

어쩌면 향도(香道)란 향을 태우는 기술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남는 것을 깨닫는 공부일지 모른다. 연기는 사라지되 향기는 남고, 향기는 사라지되 기억은 남으며, 기억은 사라지되 마음의 울림은 남는다. 심물합일의 세계 또한 그러하다. 보이는 것은 스러지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이어진다.

 

그날 한빛 벗의 사랑방에서 피어오르던 백두산 백삼향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시와 서와 화와 차와 향을 하나로 잇는 인연의 향로였으며,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무형의 다리였다. 향은 사라졌으나 그 향기가 남긴 물결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라석)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