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조일하가 부른 <우조 평거>라는 노래를 중심으로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이 곡은 비교적 안정된 구조와 흐름을 지니고 있으며 과장된 감정 없이 담담하게 불러나가는 여창가곡의 멋과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국립국악원》 정가(正歌) 단원으로 활동해 오면서 무대 공연뿐 아니라, 후배, 후진들을 꾸준히 지도해 오고 있으며, 주요 활동으로는 1994년 제1회 조일하 개인발표회를 시작으로 해서 해마다 크고 작은 발표무대를 열어오면서 정가의 확산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왔다는 이야기, 현재는 가곡의 명인들과 함께 이 분야의 중흥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정상급 여류 가객이라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월하 명인의 추모공연, 『가곡, 달 꽃을 피우다』에서 네 번째 순서로 무대에 올라, 「일각(一刻)이 삼추(三秋)라 하니 …」로 시작되는 <우조 두거(羽調頭擧)>를 불러, 객석에게 감동을 준 황숙경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가 부른 <우조 두거>라는 곡은 어떤 노래인가?
<우조-羽調>라고 하는 말은 <우조 평조>를 줄인 이름이다. 곧 높은 음이 중심을 이루는 <평조>의 음계를 간단하게 줄여서 <우조>로 통하고 있는 용어이다. 우조는 <웃조>, 곧 <높은 악조>라는 뜻이다.
또한 <두거-頭擧>는 악곡 이름인데, 여기서 두(頭)= 머리, 곧 처음이란 뜻이고, 거(擧)= 든다, 들어 올린다는 뜻이므로 노래의 시작 부분을 높게 부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악곡 이름이다. 이 노래 역시, 앞에서 소개한 <중거>, <평거>와 함께 여창의 첫 곡, <이수대엽>에서 파생된 악곡의 이름이다.
참고로 <두거>라고 하는 곡조 위에 얹어 불러온 노랫말, 곧 시조시(時調詩)들은 아래와 같은 연가(戀歌)가 대부분이다.
1 ‘일각(一刻)이 삼추(三秋)라 허니.(잠깐의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니)
2 ‘한숨은 바람이 되고’
3 ‘적무인엄중문(寂無人掩重門)한데’(사람 없어 적막하고, 문은 굳게 닫혀 있는데)
4 ‘해 지면 장탄식(長歎息)하고,’
5 ‘식불감 침불안(食不甘寢不安)허니(밥맛은 없고 잠자리 편치 않으니)’
이 5수 가운데서 현재는 ‘일각이 삼추라 하니’가 대표적으로 불리고 있다. 「일각(一刻)」이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끝없이 길게 느껴지는 이별의 정서를 들어내고 있는 말이다.
그가 부른 <두거>의 노랫말이다.
대여음(大餘音) - 관현악기들의 전주
1장-일각(一刻)이 삼추(三秋)라 하니,
2장-열흘이면 몇 삼추요
3장-제 마음 즐겁거니, 남의 시름 생각허랴.
중여음(中餘音) - 관현악기들의 간주
4장-천리(千里)에
5장-임, 이별하고 잠 못 이뤄하노라.
첫머리에 나오는 일각(一刻)이란 말은 한 시간의 1/4 정도인 약 15분 정도가 되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을 삼추(三秋)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기다림의 시간이 매우 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추(三秋)는 세 번의 가을, 곧 3년의 가을을 의미하니까 매우 긴 시간이다. 일각이란 아주 짧은 시간임에도 그토록 길게 느껴지는 것은 임을 사모하고 그리워한다는 연모(戀慕)의 정이 넘쳐흐르는 표현이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있으나, 더더욱 그립고 깊어지는 심정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노래를 불러준, 황숙경의 소리는 감정의 처리를 극대화하지 않는 절제(節制)있는 소리로 가곡의 아름다운 값어치를 드러내 주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에서 가사의 발음이나 가락의 진행은 밝고 또렷하게 뻗어나가고 있었고, 한 음, 한 음을 밀어 올릴 때의 역동미(力動美)라든가, 내려놓을 때의 편안하고 고요한 안정감(安定感) 등이, 조화를 이루어 나가면서 그 중심을 적절히 유지해 주었기에 객석의 공감은 매우 컸다.
그의 노래에서는 고저(高低)로 이어지는 선율에 나타난 아름다움이라든가, 안정감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등등, 가곡의 독특한 미적(美的) 요소들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앞에서 소개한 김영기나 이승윤, 조일하 등에서도 공감되었던 스승 김월하 명인에게서부터 시작된 여창가곡의 아름다움이라는 점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황숙경의 소리가 스승의 가곡세계에 근접해 있음을 확인이나 하듯, 그는 스승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 마주한 스승의 모습은 너무도 단아하고 빈틈이 없으셨지요. 뭐라 할까? 선생님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엄격한 분이셨어요.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함께 불러주시던 자상함도 지니셨고요.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승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저의 배움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몸으로 따라 익히며 쌓아온 연속의 시간, 시간들, 그 시간들이 저에게 여창가곡의 이름으로 전해져 왔다는 생각에 이르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스승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릴 뿐입니다.”
오늘의 성장을 오로지 스승께 돌리고 있는 황숙경의 착하고 순수한 마음이야말로 가곡,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버금가는 사실임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