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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11월 8일 전라도 용안에서 ‘근대’를 만나

동학농민혁명을 예측한 기록도 주목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85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7일 밤을 용안 관아에서 잤다. 밤에 비가 왔고 벼룩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10시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11시에 정복을 차려입고 정식으로 용안 현감을 예방한다. 그는 좌초되었던 미군함 앨러트호(Alert)를 도와준 데에 대해 현감에게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용안 현감 김노완은 개화파 인물이었다. 더구나 포크의 절친인 서광범의 동지였다. 당시 여행에 통역으로 동행한 전양묵 또한 개화파였다. 김노완과 전양묵은 모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어 일본어를 안다. 포크는 일본어에 능통하다. 그러니까 1884년 11월 8일 전라도 용안(오늘날 익산에 속함)에서 일본을 아는 개화파들이 회동한 것이다. 김노완과 전양묵의 방일 행적에 대해 알아본다김노완은 1880년 7월에 김홍집이 이끄는 일본 방문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 약 1달 동안 체류한 뒤, 1880년 8월 말 귀국했다. 김노완은 한 달 남짓의 일본 체류 중 윤웅렬(윤치호의 부친)과 함께 군사분야 시찰과 연수에 몰두하였다. 도쿄의 일본 육군성 산하 부대 그리고 군사 시설과 근대식 무기를 제조하던 도쿄 포병창(육군 조병창) 등지를 시찰했다.

 

 

일본 육군 장교들의 안내를 받아 서구식(프랑스와 독일식) 전열보병 전술, 제식 훈련법, 병력 편성법을 참관하고 기초 동작을 익혔다. 아울러 일본 군대가 사용하던 스나이더(Snider) 소총과 무라타(Murata) 소총 등의 근대식 소총 조작법, 분해ㆍ결합법, 사격 요령을 배웠다. 한편, 근대식 군대가 어떻게 보급받고, 장교를 양성(육군사관학교의 전신 시찰)하는지 제도적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고종은 이듬해인 1881년 김노완을 별기군 우부령관에 임명하여 조선 군대의 체질 개선을 맡겼다.

 

한편, 전양묵은 김노완보다 1년 뒤인 1881년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처음 방문했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오늘날의 외교부)의 생도(유학생) 신분에 포함되어, 일본의 세제, 세관 업무, 근대식 공업과 행정 제도를 집중적으로 시찰했다. 이때의 견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 역관이자 개화파 실무 관료로 성장했다.

 

전양묵은 조지 포크(George C. Foulk)의 남부 지방(경기ㆍ충청ㆍ전라ㆍ경상) 탐사에 동행하면서 포크의 귀와 눈 역할을 한다. 전라도 삼례의 한 주막에 묵을 당시, 전양묵은 포크에게 "조선의 탐관오리들이 백성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매질을 하지만, 백성들은 견디다 못하면 관리를 공격해 서울로 쫓아내기도 한다"라는 현지 실상을 알려준다. 이 발언은 정확히 10년 뒤 그 지역에서 폭발한 동학농민혁명을 예측한 기록으로 주목된다.

 

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