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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100년 한강의 눈 < 고양 행주수위관측소>

고양시 행주산성 뒤 창릉천변의 근대건축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초여름 망초꽃이 조붓한 산책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길, 고양시에 30여 년을 살고 있으면서도 이 호젓한 산책길은 처음이었다. 수없이 발길을 했던 행주산성이지만, 그 뒷편 한강과 창릉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고양 행주수위관측소'라는 다소 생소한 건축물을 찾아 나선 어제(17일)는 한낮의 수은주가 30도를 가리키는 무더위였다. 창릉천변을 따라 산책하는 이들과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정작 강가에  서있는 등대 모양의 시멘트 건축물을 바라보는 이는 드물었다.

 

 

 

 

이곳은 1916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한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건립한 역사적 시설물이자 국가등록문화유산 제599호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100여 년 전 한강의 거친 숨결을 묵묵히 기록하기 시작했던 귀중한 근대 토목 유산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내세운 표면적 명분은 근대적 하천 관리와 수해 예방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철저한 식민지 자원 약탈과 토지 강탈이라는 숨은 목적이 깔려 있었다. 당시 일제의 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하천 수위 조사는 농민들의 관습적 경작권을 부정하고 토지를 빼앗은 토지조사사업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한강 하류의 정확한 수위 데이터는 하천 유역의 비옥한 사유지를 하천부지(국유지)로 강제 편입하기 위한 명분이 되었고, 향후 미곡 수탈을 가속화한 '산미증식계획'의 용수 확보 및 곡물 수송선 항로 개척을 위한 기초 조사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곧, 근대식 치수(治水)라는 미명 아래 조선 농민의 삶의 터전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식민 통치의 정교한 도구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 관측소는 우리 민족이 겪어낸 수난과 재난의 현장을 묵묵히 증언하는 역사적 결과물로 남았다. 실제 1925년 7월 18일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지면을 살펴보면, ‘20세기 최악의 재난’이라 불리는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 수위가 사상 최고치인 12m를 돌파해 경성(서울) 전역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의 참상이 생생히 보도되어 있다.

 

당시 언론들은 “한강홍수통제기관과 행주관측소의 보고에 의하면 한강 하류의 수위가 매시간 급등하여 위험 수위를 돌파했다”며 연일 긴급 속보를 타전했고, 일제의 수탈 기지였던 이 구조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강 하류 주민들의 목숨을 건지는 유일한 재난 알림이 역할을 해야 했다. 

 

 

 

1979년 공식 폐쇄될 때까지 약 60년간 축적된 수위 자료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현대 치수 계획의 귀중한 기초 자산으로 환수되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원형을 유지한 근대 관측소는 한강 변의 고양 행주(국가등록문화유산 제599호)와 서울의 구 용산수위관측소(서울시 기념물 제18호), 영산강 변의 나주 영산포 자기수위표(국가등록문화유산 제129호) 등 손에 꼽을 만큼 희귀하다.

 

기후 위기로 자연재해 예측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오늘날, 흐드러진 망초꽃과 자전거 도로 옆에 외롭게 서 있는 이 건축물은 우리에게 치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침탈당했던 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 현재 이 건축물 앞으로 나있는 길은 행주산성에서 법곳IC(17.47킬로)까지 이어지는 <DMZ 평화의 길 4-1코스>구간으로 구간구간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쉼터도 있어 한강을 옆에 끼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강변을 달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78-9

 (자동차로 이 주소를 찍고 가면 창릉천 공용 주차장이 있으며 이곳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 또는 도보로 접근하면 되는데 도보 거리는 약 10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