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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표대덕과 가지산 선차의 뿌리

인도ㆍ중국ㆍ신라를 잇는 차의 길, 보림사 천년 차맥의 시작
한국의 차인열전 ④
[라석의 차와 시서화] 18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한국 차문화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신라의 충담사와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조선의 초의선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한국 선차(禪茶)의 정신적 토대를 닦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원표대덕(元表大德)이다.

 

원표는 오늘날 한국 불교사에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화엄과 선을 아우르고 인도ㆍ중국ㆍ신라를 잇는 국제적 구도자의 삶을 살았던 승려였다. 더욱이 그가 창건한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는 훗날 한국 선종과 차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였다. 원표의 삶은 곧 한국 선차의 기원이자, 한국 차문화가 동아시아 불교문화와 만나는 접점이라 할 수 있다.

 

원표는 고구려 출신 구도승이자, 인도와 중국을 거쳐 통일신라에 온 위대한 선승이었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원표는 본래 고구려 출신 승려였다. 그는 젊은 시절 구법(求法)의 큰 뜻을 품고 바다를 건너 인도까지 유학하였으며, 귀로에는 중국에 머물러 화엄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당나라 화엄종의 전성기였다. 당시 중국 화엄종은 두순(杜順), 지엄(智儼), 법장(法藏)으로 이어지며 동아시아 불교사상 가운데 가장 정교한 철학체계를 완성하고 있었다.

 

원표는 절강성과 복건성 일대에서 화엄학을 익히며 명성을 얻었고, 중국 남방 선종이 막 태동하던 시기와도 맞물려 있었다. 특히 원표가 귀국하기 직전은 육조 혜능(慧能, 638~713)이 남종선(南宗禪)을 크게 일으키던 시대였다. 혜능의 선법은 형식과 교학보다 본래 마음의 깨달음을 중시하였다. 원표가 머물렀던 절강ㆍ복건 일대는 화엄종과 남종선이 활발히 교류하던 지역이었다. 비록 원표가 직접 혜능을 만났다는 기록은 없으나, 귀국 과정에서 남종선의 영향을 접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후일 원표가 창건한 보림사가 화엄도량이면서도 훗날 선종의 본산이 된 사실은 결코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그는 어쩌면 의상 이후 신라 화엄과 혜능 이후 중국 선종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가교 구실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중국 지제산 보림사와 한국 가지산 보림사는 서로 닮았다. 원표와 보림사의 관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보림사’라는 그 이름이다. 전승에 따르면 원표는 중국 복건성 지제산(支提山)에 머물렀다. 지제산은 화엄과 선이 함께 융성하던 불교성지였으며, 그곳에는 이미 보림사(寶林寺)가 있었다.

 

 

원표는 귀국 뒤 장흥 가지산에 절을 창건하면서 중국 보림사의 이름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전해진다. 마치 문수보살의 성지인 중국 오대산을 본떠 강원도 오대산이 성지가 된 것처럼, 중국 지제산과 한국 가지산은 불교문화의 정신적 계승관계를 보여준다. 실제로 여러 연구자는 중국 지제산과 한국 가지산이 산세와 지형이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고 지적한다. 원표는 중국에서 보았던 이상적인 수행공간을 신라 땅에서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보림사는 단순한 절이 아니라 인도ㆍ중국ㆍ신라를 연결하는 불교문화의 상징이었다. 매화보살과 원표의 전설 또한 아름답다. 의상대사에게 선묘낭자(善妙娘子)가 있었다면 원표에게는 매화보살(梅花菩薩)이 있다. 보림사에는 오래전부터 매화를 든 보살상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오늘날 보림사 조사전에는 매화를 든 여인과 보살상이 함께 표현된 그림이 전해지는데, 이는 원표와 관련된 전승으로 이해된다.

 

내용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핵심은 같다. 구도자의 길을 가는 원표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보호하고 도왔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전설은 단순한 신비담이 아니다. 그 속에는 불법을 향한 순수한 마음과 수행정신에 대한 민중의 존경심이 담겨 있다. 선묘가 의상을 지켰듯 매화보살은 원표를 지켜주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화엄과 선이 만난 자리

 

원표는 화엄종 승려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행적을 살펴보면 단순한 교학승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화엄경》의 원융무애(圓融無碍, 모든 법의 이치가 골고루 융통하여 막힘이 없음) 사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수행과 실천을 중시하였다. 이는 훗날 남종선이 강조하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정신과도 상통한다.

 

그래서 보림사는 처음에는 화엄도량으로 출발하였으나 뒤에는 선종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의(道義)가 당나라에서 선법을 들여오고, 염거(廉居)를 거쳐 체징(體澄)에 이르러 가지산문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도 원표가 닦아 놓은 정신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문구산(禪門九山)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을 연 가지산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원표에게 닿는다. 그는 비록 종파의 이름으로는 화엄승이었으나 정신적으로는 화엄과 선을 잇는 선구자였다.

 

보림사와 차, 그리고 다소(茶所) 등을 살펴볼 때 원표를 차인으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가 세운 보림사는 한국 차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장흥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최대의 차 생산지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전국 차소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장흥에 집중되어 있다. 보림사 일대 역시 대표적인 차 생산지였다. 산중의 맑은 물과 온난한 기후, 안개 많은 계곡은 차나무 재배가 이상적이었다. 차는 수행자들에게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좌선 중 졸음을 막고 정신을 맑게 하는 수행의 벗이었다. 원표가 창건한 보림사는 자연스럽게 선과 차가 만나는 공간이 되었다.

 

고려 선종과 보림사 차맥은 밀접한 관계로 고려시대에 들어 보림사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체징 이후 가지산문은 고려 선종의 중심세력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였다. 왕실은 보림사에 차와 향을 하사하였고, 선승들은 차를 통해 수행공동체를 유지하였다. 고려 후기의 선원에서는 차가 곧 수행문화였다. 차를 달이고 나누며 법을 묻고 답하는 풍속은 보림사에서도 이어졌다. 선과 차가 하나라는 ‘선다일여(禪茶一如, 참선(禪)과 차를 마시는 것(茶)이 본질적으로 같은 경지라는 뜻)’의 정신 역시 이 무렵 더욱 확고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보림사의 차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조선말기 초의선사는 서울의 학자와 문인들에게 차를 선물할 때 자신의 차보다 보림사 차를 귀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임하필기》에는 초의가 보림차를 선물하며 “우리나라 으뜸 품질”이라 평가한 내용이 보인다. 또 다산 정약용 역시 강진과 장흥 일대의 차를 높이 평가하였다. 보림사 차의 명성은 단순히 산지의 명성이 아니라 천 년 동안 이어진 수행과 제다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늘날 청태전(靑苔錢)으로 대표되는 남도 차문화 역시 이러한 가지산 차맥의 연장선 위에 있다.

 

원표는 차에 관한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삶 자체가 선차정신을 보여준다. 인도에서 구법하고, 중국에서 화엄을 배우고, 혜능의 남종선이 꽃피던 시대를 지나, 신라에 돌아와 보림사를 세웠다. 그의 삶은 한 잔의 차가 걸어온 길과 닮았다. 차는 땅에서 나지만 하늘의 기운을 품고, 선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온 세상과 하나가 된다.

 

원표가 가지산에 심은 것은 단지 한 절이나 선풍(禪風)만이 아니었다. 그는 화엄의 지혜와 선의 깨달음, 그리고 차의 맑은 향기를 함께 심었다. 그 씨앗은 고려 선종으로 자라고, 조선의 초의선사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한국 선차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천 년 전 가지산의 차향은 지금도 보림사의 숲길을 따라 은은히 흐르고 있다. 그 향기 속에는 원표대덕의 구도정신과 한국 선차의 원형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26.6.18. 대만의 양명산에서 불한자)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