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2026년은 프랑스와 한국이 정식 외교를 맺은지 140돌이 된다. 처음 양국이 통상수교조약을 맺기 전에는 프랑스 포경선이 신안 앞바다에 좌초되어 구조한 선원들을 청나라 북경에 있던 프랑스 영사관을 통하여 인도해줌으로 좋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조선에서의 천주교인 탄압으로 인하여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의 천주교인들이 참살당하는 일이 있은 뒤에는 프랑스가 해군함대를 보내와 강화도 초지진과 광성보 등에서 함포사격과 육박전이 벌어지는 결사적인 항전도 있었다. 이때 조선군은 무기의 위력 차이에 무참하게 쓰러져갔다. 강화도 광성보에 가면 그 당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위령비가 있다.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략을 감행 한 뒤, 조선은 청나라의 중재로 조선-프랑스 통상수교조약을 체결하여 정식으로 국교를 맺었으며, 이후 천주교를 믿는다고 탄압받는 일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조선이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대립으로 스스로 힘을 키우기 보다는 외세에 의지하여 이리 저리 휩쓸렸다. 그리고 결국은 일본에 나라를 잃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그동안 서구 국가들과 맺었던 조약들은 자연히 그 힘을 잃었고, 오직 일본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한민족의 부단한 독립정신을 바탕으로 중국과 미국에 흩어진 한민족들은 개인적인 부귀영화를 떠나 조국광복을 염원하며 광복군을 설립하여 중국의 각지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등 독립의지를 만방에 밝혔다. 또,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한국은 다시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을 맞이한 뒤, 그동안 잠들었던 세계 각국과 맺었던 수교조약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렇게 프랑스와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얼마 누리지 못한채,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연합국의 한 축을 이루었던 프랑스는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3,400여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한국내 많은 전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회복한 국교를 바탕으로 다양한 교류를 이어왔다. 그러나 당시는 한국과 프랑스의 국력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멀고 멀어서 한국에서 프랑스를 보는 것은 까마득하기만 하였다. 그리하여 1980년 이전에는 한국과 프랑스는 대통령들의 만남은 없는 상태로 이어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한국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한국에 고속철도를 건설하고자 하는 계획에 따라 프랑스의 TGV를 수입함에 따라, 이를 수주하기 위하여 프랑스는 미테랑대통령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모든 한국의 대통령이 프랑스와 한국에서 서로 만나서 정상외교를 하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렇게 140년을 함께 하면서 맺어온 한국과 프랑스와의 외교관계를 정상들 사이에 주고 받은 선물들과 각종 기념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전시회를 통하여 140년 전 당시에는 너무도 빈약했던 한국의 국력이 오늘날 한류문화가 프랑스에서 맹위를 떨치는 현실을 견줘보면 좋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