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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법사(圓光法師)와 화랑정신의 차향(茶香)

한국의 차인열전 ⓹
[라석의 차와 시서화] 19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 진흥왕 3년(542)에 태어난 원광법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향해 나아가던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그는 젊은 시절 불법을 구하기 위해 중국 수나라로 건너가 장기간 유학하며 불교 교학과 수행법을 익혔다. 당시 중국은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시기였으며, 절마다 선승들이 차를 마시며 좌선하고 경전을 토론하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원광법사는 단순히 경전만 배우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중국의 선진 불교문화와 수행정신, 그리고 인재를 기르는 교화의 방식을 함께 익혀 신라로 가져왔다. 귀국 뒤 원광은 왕실과 귀족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신라 정신문화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특히 화랑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찾아와 삶의 지침을 묻자, 그는 유명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내려주었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이 다섯 계율은 단순한 도덕규범이 아니라 신라 화랑도의 정신적 헌장이 되었으며, 훗날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원광법사가 추구한 교육은 지식의 전달보다 인격의 수양에 있었다. 이는 차문화가 추구하는 정신과도 깊이 통한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마음을 맑게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를 완성하는 수행의 매개였기 때문이다. 화랑들은 산천을 유람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나라를 위한 큰 뜻을 길렀다.

 

 

특히 이러한 화랑정신이 단순한 전설이나 이상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되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 바로 신라의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다. 이 비석에는 두 젊은 화랑이 임신년(壬申年)에 하늘에 맹세하며 충성과 효도, 학문과 인격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는 원광법사가 제시한 세속오계의 정신이 당시 화랑들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 벗과의 신의와 끊임없는 자기 수양은 곧 화랑도의 실천이었으며, 훗날 신라 정신문화와 차를 통한 수행문화가 꽃피는 토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을 벗 삼고 정신을 가다듬는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훗날 신라와 고려 선승들의 차생활 역시 이러한 화랑정신과 맞닿아 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곧 원광이 강조한 충ㆍ효ㆍ신ㆍ용ㆍ인의 실천과 다르지 않았다.

 

 

원광법사는 직접 차를 논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그가 중국에서 가져온 수행문화와 교화정신은 신라 차문화의 뿌리가 되는 선풍(禪風)을 형성하였다. 후대의 자장, 의상, 원효와 같은 고승들이 차를 수행의 동반자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원광이 닦아놓은 정신문화의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차는 맑은 물을 만나 향기를 드러내고, 사람은 바른 도를 만나 인품을 완성한다.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심어준 세속오계의 정신은 차가 지닌 청정(淸靜), 절제(節制), 수양(修養)의 정신과 하나로 이어진다. 차의 정신은 화랑의 수행적 풍류정신과 일맥상통했다.

 

그러므로 원광법사는 단순한 고승이나 교육자가 아니라, 신라 정신문화의 차향(茶香)을 길러낸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은 천삼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차 한 잔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한국 차문화의 깊은 뿌리로 살아 숨 쉬고 있다. (26. 6. 25.불한산방에서)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