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5 (토)

  • 흐림동두천 24.6℃
  • 흐림강릉 25.5℃
  • 흐림서울 25.2℃
  • 흐림대전 25.1℃
  • 흐림대구 28.9℃
  • 울산 26.8℃
  • 흐림광주 27.1℃
  • 부산 27.6℃
  • 흐림고창 26.9℃
  • 제주 26.3℃
  • 흐림강화 22.8℃
  • 흐림보은 24.9℃
  • 흐림금산 25.4℃
  • 흐림강진군 23.9℃
  • 흐림경주시 27.2℃
  • 흐림거제 26.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네팔 랑탕(NEPAL Langtang) 캉진리 등정기

속세를 벗어난 평화로운 산상 마을

# 5일 차: 2025년 11월 22일(토요일), 림체 롯지 ~ 랑탕 마을 (이동 거리 15.9km, 이동 시간 9시간 35분, 3,430m)
[네팔 랑탕(NEPAL Langtang) 캉진리 등정기] 5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이 어두워지니 림체 롯지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등산객 열댓 명이 식당 난로 부근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눈다. 나는 고산증 증세인지 손가락 끝이 저리고, 왼쪽 다리 대퇴부 접히는 부분 근육이 올라와 숙소로 돌아와 파스를 붙였다. 가파른 언덕을 많이 오르내려서 생긴 듯하다. 평소 운동 부족으로 몸이 망가진 것이다. 내일은 더 천천히 걸어야겠다.

 

고산 지대라 구름이 피어오르고 꽤 추워졌다. 산그림자가 어둠으로 변하며 빠르게 어둠이 찾아왔다. 저녁 7시 30분에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롯지의 벽은 판자로 대어 놓아 옆방 소음과 불빛이 훤히 들어오는 바람에 불편하여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밤 11시 40분쯤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구름은 사라지고 산 위에 별이 잔뜩 걸려 있어, 누가 누가 더 밝은지 시합을 하고 있는 듯하다. 별과 산이 가까워서 그런지 별들이 유난히 크고 무척 밝게 보인다. 별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져올까 했었으나, 무게 때문에 포기한 것이 무척 아쉽다. 슬기말틀(스마트폰)로 여러 장 찍었는데, 사진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정말 좋다.

 

다시 자리에 누우니 계곡의 물소리가 장마철 소나기 내리는 날 양철 지붕 아래서 비를 피할 때 나던 소리의 몇 배는 더 크게 들린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추워서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아침 식사로 뜨거운 물과 맨밥을 시켜서 한국에서 챙겨온 고추장과 시래깃국, 멸치 반찬으로 밥을 먹으니, 힘이 난다. 불편하던 다리 근육도 풀렸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구름 사이로 비친 산그림자와 함께 아침이 찾아온다. 끝없이 이어진 산을 바라보며 나를 되돌아본다. 그동안 쉼 없이 바쁘게만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세상 소식도 전혀 모른 채 오직 계곡에 울리는 물소리와 헛디디는 내 발걸음 소리만 들릴 뿐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은 림체 롯지에서 아침 8시에 출발, 랑탕 마을(Langtang Village, h 3,430m)로 향했다. 고도를 1,000m나 끌어올려야 하는 고된 여정이다. 가는 길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조금씩 고도를 올리는데, 내리막길이 나오면 뒤이어 나타나는 오르막 계단길이 더 길어서 힘이 든다.

 

출발한 지 1시간 30분쯤 지났을 때 '랑탕리룽' 봉우리가 뚜렷하게 보인다. 설산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순수하게 빛나는 순백색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으로 너무나 아름답다. 내 몸은 비록 힘들지만, 저 산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내가 꿈꾸던 이화 세계가 분명히 있을 것만 같았다.

 

걸으면서 자꾸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온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승용차로만 이동하며 하루에 1시간도 채 걷지 않았으니, 지금 이곳에서 내 몸이 나에게 벌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반성하며 앞으로는 운동을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산길 주변에는 네팔의 국화인 ‘랄리그라스’ 나무들이 많이 서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V자 협곡보다는 하늘이 더 가까워지고 식생은 점차 줄어든다. 풀들은 갈색으로 변해가고, 길 주변으로 돌담을 쌓아 만든 밭과 풀밭에서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는 야크들, 그리고 짐을 싣고 지나가는 말들이 보였다. 계곡 길의 경사도 완만해지면서 물소리 역시 한결 정겹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게 들린다. 며칠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의성어로 '쏴아'라고 표기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 여성(33살)이 혼자 걷고 있어 밀감을 나누어 먹었는데, 'A 다이아몬드' 카드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다. 포터 없이 홀로 다니는데도 가방 무게가 16kg 정도 족히 돼 보였다. 대단한 여성이다.

 

고도를 올리니 야크 여러 마리가 꿀꿀대며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소의 생김새가 서로 달라 로메스 씨에게 물어보니, 수소는 ‘야크’, 암소는 '낙(Nyak)'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지역의 특산물은 야크 치즈다. 산길에는 야크 똥과 말똥이 널려 있는데, 먹이가 달라서인지 야크 똥은 둥글고 무르지만, 말똥은 작고 갈라져 있어 쉽게 구분이 되었다.

 

출발한 지 6.6km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암소인 ‘낙’을 많이 방목하고 있었다. 이곳부터는 강폭이 좁아지는 계곡이라 작은 나무다리를 여러 개 지나게 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로 아슬아슬하게 만들어 놓은 다리들이다. 주변에 노란색 작은 열매가 많이 보이는데 비타민 나무 열매라고 한다. 여러 롯지에서 ‘SEA BUCKTHORN JUICE AVAILABLE(비타민 나무 주스)’라는 판매 광고 그림을 붙여 놓았다.

 

낮 1시경, 고라타벨라(Ghoratabela) 롯지에 가기 전, 이틀 전 헤어졌던 대원 5명과 포터를 만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동안 서로 걸었던 길에 대해 이야기꽃이 피었다. 내가 워낙 천천히 걸은 탓에 뒤에서 출발한 일행에게 약 4km를 따라 잡힌 것이다. 해발 3,100m를 넘어가니 깔딱고개가 나온다. 아, 정말 힘들어 죽겠다. 문 원장은 술기운으로 잘 걷는데, 나는 저질 체력으로 자꾸만 걸음이 처진다.

 

산 아래에서 바라볼 때는 랑탕리룽이 한눈에 잘 보였는데, 정작 산속으로 들어오니 설산의 끄트머리만 조금 보인다. 저녁 4시를 넘기면서부터 구름이 낮게 깔리기 시작하더니 산자락이 보였다 안 보이기를 반복한다. 이윽고 구름이 사방으로 잔뜩 몰려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마치 구름 속을 유유히 걷는 신선이 된 것만 같아 힘든 와중에도 기분이 좋았다.

 

 

 

 

 

저녁 5시쯤 완전히 구름 속에 갇혔다. 랑탕 마을 입구를 따라 길게 돌탑이 늘어서 있었는데, 탑에 있는 돌에다가 '옴마니반메훔'이라 글자를 수십 개를 적어 놓았다. 네팔 사람들은 길을 걸어면서도 '옴마니반메훔'을 읊조리는데, 나 역시 주문을 따라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 선명하게 보이던 설산은 구름에 완전히 갇혀 자취를 감추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그저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이었는데, 막상 그 산자락 아래로 깊숙이 들어와 보니 이곳의 사람들은 척박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저마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랑탕 마을 입구에 이르니 추모비 같은 것이 발길을 붙잡았다. 사연을 알아보니, 2015년 4월 25일 네팔 대지진 당시 거대한 산사태가 일어나 마을 전체를 덮치는 바람에 마을이 그대로 산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때 희생당한 이들의 넋을 기리는 조그마한 추모비다.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오늘도 엄청나게 많이 걸었다.

 

오늘 묵을 '블루 스카이' 롯지의 고도는 해발 3,430m이다. 창문에 커튼을 쳐두기는 했으나 나무 창틀로 짜인 문이어서, 밤새 설산 계곡을 타고 휘몰아치는 바람이 무척 거세다. 창문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매서운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어쩔 수 없이 북향 방에서 남향 방으로 숙소를 옮겼더니 외풍이 덜하다. 침낭에 들어가 핫팩을 끼고 자리에 누우니 그제야 몸이 따뜻해진다. 고산 지대 산악 마을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낮에는 강렬한 햇살 덕분에 따뜻하지만, 밤이 되면 설산에서 불어오는 영향으로 기온이 영하 10℃~18℃ 이하로 뚝 떨어지고며 얼음이 얼고 무척 춥다.

 

자정쯤 눈이 떠져 창밖으로 하늘을 바라보니, 설산 위로 별들이 총총히 걸려 있다. 별 사진 찍으러 계단을 내려가 롯지 현관문을 열어보니, 출입문을 잠가 버려 아예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몸을 녹이려 서둘러 다시 침낭으로 들어갔다.

 

※ 곰파: 티베트 불교에서 사원이나 탑이 있는 마을을 '곰파'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