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의 글에서 한 가지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내부자의 가슴을 지닌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글이 좋은 예가 아닌가 한다.
"밤이 오면 어두운 남산 꼭대기, 봉수대(烽燧臺)의 불꽃이 줄지어 신속히 꺼진다. 남산의 봉홧불은 이 나라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뻗어 있는 제4봉수로(烽燧路)의 마지막 봉화다. 그 신호로써 사람들은 오늘 밤 온 나라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산 맞은편 궁궐의 임금은 왕국의 평화를 알리는 이 무언의 메시지에 안도하며 침전에 들 것이다.
잠시 뒤 도심의 큰 종에서 울리는 ‘부웅 부웅 부웅’ 소리가 귓전에 닿는다. 사람들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며 밤에는 성문이 닫힌다는 신호다. 이 땅에 밤이 내리면 이처럼 봉홧불이 신호를 하고 큰 종이 밤공기 속에서 부웅부웅 소리를 내온 지 4백 년이 넘었다!"
( The signal has flashed out nightly, and the great bell has boomed thus in the night air nightly for more than four hundred years! )
(*Carter J. Eckert의 <Male Concubinage: Notes on Late Choson Homosexuality by an American Naval Attache>, JAHYUN KIM/ HABOUSH 편 ,『Epistolary Korea: Letters in the Communicative Space of the Chosôn, 1392-1910』,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9)
저물어 가는 왕국의 모습을 달빛에 젖은 듯 애상 어린 필치로 묘사하고 있지 않는가? 이 글에서 28살의 미국 군인이 느껴지는가? 포크가 남긴 기록의 특징에 대해 카터 에커트(Carter J. Eckert, 하바드대 교수)는 이렇게 짚는다.
19세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글을 읽을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짧은 기간 조선을 방문한 그들은 조선의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지 포크는 많은 면에서 예외다. 1876년 해군사관 학교를 거의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아시아 함대에 배속되어 6년 동안 동양에서 지냈다. 그때 일본어와 중국어를 습득했다.
1883년 미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조선 사절단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포크는 다른 해군 동료 한 명과 동행했고 안내했다. 조선사절단이 귀국을 앞두고 있을 때 아더(Chester Arthur) 미국 대통령은 포크를 조선 주재 무관으로 발령 내어 사절과 함께 조선에 가도록 했다. 포크는 조선에 1887년까지 머물었으며 한동안 대리공사로 일했다. 그는 조선의 정세, 군사상황과 사회는 물론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많은 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다.
포크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더없이 값어치가 있고 중요한 까닭은 그 시기 때문이다. 미국은 조선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첫 서양 국가였다. 포크는 서양의 영향을 받지 않은 조선 왕국에서 상당기간 생활한 첫 외국인이다. 외부의 손이 닿지 않은, 훗날의 방문자들은 볼 수 없게 될 조선 왕국의 원형을 우리는 그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포크 기록물의 가장 위대한 값어치는 그 사람 자체의 특별한 인격과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민한 자질을 타고났던 그는 해군사관학교에서 탁월한 성적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정보장교로서 특수 훈련을 받았다. 조선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정밀성과 디테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젊은 개혁가들이 일으킨 갑신정변 당시에 그는 서울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그 사건에 대한 장문의 정밀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유려하고도 흥미로운 이 보고서는 다양한 목격담을 근거로 쓰였다. 또한 내용의 신빙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신중한 교차 검증을 거쳤다. 그것을 매우 높이 평가한 정부는 이듬해 외교백서(《 Papers Relating to the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에 수록하였다.
포크는 조선의 모든 것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여느 외교관과 사뭇 달랐다. 이미 일본어와 중국어를 습득한 그는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방미사절단에게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뒤이어 조선에서 한국어 실력을 계속 향상시켰다. 근무지는 서울이었지만 지방을 널리 여행했다. 여행 중에 관찰한 모든 것에 대하여 그는 풍부한 기록을 남겼다. 정보장교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기록에 몰두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사람이 금방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자신이 몸담은 전혀 다른 세계를 향한 강렬한 호기심, 비상한 개방성과 감수성이 그것이다.
(위의 책)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