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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의상 - 차향은 달라도 그 뿌리는 하나

한국차인열전(10)
[라석의 차와 시서화] 22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 불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언제나 두 개의 큰 산이 나란히 서 있는 듯하다. 하나는 원효(元曉)이고, 다른 하나는 의상(義湘)이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스승 아래에서 수행하였으며, 함께 당나라로 구법의 길을 떠난 평생의 도반이었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걸어도 바라보는 하늘이 다르듯, 그들의 구도는 어느 순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갈라짐이 아니었다. 강물이 좌우로 나뉘어 흘러도 끝내 하나의 바다에 이르듯, 원효와 의상의 길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같은 진리의 길을 향하고 있었다.

 

젊은 두 승려는 당시 불교의 중심이던 당나라 장안으로 향하였다. 신라에서 배우고 익힌 가르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그들은 더욱 넓은 세계에서 부처의 뜻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국경을 넘기 전, 어느 토굴에서 하룻밤을 머물던 중 원효는 목이 말라 어둠 속에서 물을 마셨다. 달빛도 들지 않는 밤, 그 물은 세상 어느 감로수보다 시원하고 달게 느껴졌다.

 

하지만 새벽이 되어 보니 그 물은 해골에 괴어 있던 빗물이었다. 순간 속이 메스꺼워졌지만, 원효는 곧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밤에는 감로였고 아침에는 더러운 물이 된 것은 물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지은 바"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고, 더욱 먼 나라에서 진리를 찾을 이유가 없음을 알았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의상은 홀로 길을 계속 걸었다. 수만 리를 지나 마침내 장안에 이른 그는 지엄대사의 문하에서 화엄의 깊은 법을 배우며 오랜 세월 수행하였다. 귀국한 뒤에는 부석사를 비롯한 수많은 도량을 세우고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지어 우주 만물이 하나의 법계 안에서 서로 원만하게 이어져 있음을 한 폭의 법도로 펼쳐 보였다.

 

원효가 마음속에서 우주를 발견하였다면, 의상은 우주 속에서 하나의 마음을 발견한 셈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수행 방법은 서로 달랐듯, 차를 대하는 마음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비록 기록으로 전하는 다례는 없지만, 당나라에서 이미 차는 수행하는 승려들의 맑은 벗이 되어 있었다. 긴 좌선의 졸음을 씻어 주고, 마음을 맑게 하며, 도반과 법담을 나누는 자리에는 늘 차 한 잔이 함께하였다. 의상 역시 장안의 절에서 그러한 차문화를 접했을 것이다. 그에게 차는 계율처럼 단정하였고, 화엄의 세계처럼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수행의 공양이었다. 물을 끓이고, 찻잎을 우리고, 향기를 음미하는 한 과정까지도 흐트러짐 없는 수행이었을 것이다.

 

반면 원효는 달랐을 것이다.

그는 절집의 담장을 넘어 장터로 들어갔고, 백성들과 함께 두렁박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웃으며 무애춤을 추었다. 귀천을 가리지 않았고, 승속의 경계도 스스로 허물었다. 차 한 잔이 있다면 법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길가에서도, 초가에서도, 농부와 나누며 마셨을 것이다.

 

그에게 차는 의식이 아니라 사람을 잇는 마음이었다.

원효의 차가 자유였다면 의상의 차는 질서였다.

원효의 차가 따뜻한 인간의 숨결이었다면, 의상의 차는 고요한 선정(禪定)의 향기였다.

 

 

그러나 자유는 질서가 있어 방종이 되지 않고, 질서는 자유가 있어 생명을 잃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삶은 마치 차를 우리는 두 가지 방식과도 닮았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차향을 잃고, 너무 식으면 참맛을 얻지 못한다. 향기와 온도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한 잔의 좋은 차가 완성되듯, 원효와 의상도 서로 다른 삶으로 신라 불교를 완성하였다.

 

심물철학은 마음과 사물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는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사물을 통해 드러나고, 사물은 마음을 만나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원효는 마음이 형식을 뛰어넘는 자유를 보여 주었고, 의상은 형식이 마음을 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질서가 되는지를 보여 주었다. 하나는 심(心)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물(物)의 길이었다. 그러나 심과 물이 본래 둘이 아니듯, 원효와 의상 또한 둘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가 차를 마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차는 목을 축이기 위한 음료가 아니라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인연이다. 때로는 원효처럼 웃으며 세상과 함께 마실 줄 알아야 하고, 때로는 의상처럼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며 마실 줄도 알아야 한다.

 

한 잔의 차에는 자유가 있어야 하고, 또한 절제가 있어야 한다. 그 두 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차는 비로소 향기를 얻고, 삶은 수행이 된다. 원효와 의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같은 진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두 갈래의 정신은 오늘까지도 우리 차문화 속에 살아 숨 쉬며, 향기는 달라도 그 뿌리는 하나임을 조용히 일깨워 주고 있다.

(2026. 7. 22. 상해 포동에서 불한자)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