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산책로에서 만나게 된 월하의 시조(時調)가락”이라는 제목으로 정가의 명인, 김월하 여사가 시조와 만나게 된 인연, 그리고 동호인들을 통해 정가계의 대가들을 만나게 된 배경을 소개하였다.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삯바느질 일을 하다가 위궤양을 앓게 되었고, 위기는 넘겼으나, 후유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 그래서 매일 새벽, <구덕수원지>에 올라, 새벽 운동을 하며 시조창 동호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들을 통해 당대 유명한 사범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랬다.
당시, 30대 중반의 월하 여사는 피난민이자, 환자였고, 매일 새벽 산책길에 나서며 동호인들과 만났다. 또한 그들을 통해 시조창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정가(正歌)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움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가 마련되었기에 훗날 그가 으뜸 명인 자리(예능보유자, 속칭 인간문화재)까지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은 전혀 계획되고, 준비되었던 결과가 아니었다.
모든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지만, 그가 노력한 결과는 인정되어야 했고, 그 위에 본디 착한 성품으로 베풀면서 살아온, 월하 여사에게 내려진 하늘의 보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글쓴이는 월하 여사가 어린 김윤서를 손녀딸로 맞아들인 이후, 그와 함께 할머니와 손녀딸의 관계로, 또는 스승과 제자로 함께 지내온,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어보기로 했다,
김윤서에게 물었다.
- 주위에서는 월하 여사와 김윤서 가객이 사제(師弟)관계로만 알고 있다. 월하 선생과 가족의 인연(因緣)을 맺게 된 이후, 함께 기거하면서 평소 할머니의 일상)을 조금 소개해 준다면?
“네. 할머니는 정말 부지런하신 분이셨어요. 일찍 주무시고, 새벽 기상과 동시에 집 앞부터 동네 한 바퀴 청소를 다 하시지요. 그러고는 집 앞에 있는 탑골 공원(종로 2가)으로 가셔서 비둘기 밥까지 챙겨주십니다. 또한 일상의 할머니는 꽃과 동물들을 무척이나 좋아하시고 사랑하셔서 집안 곳곳이 꽃과 화분들이 즐비했지요. 옥상 절반이 온통 나무와 꽃이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고양이도 키우시고, 다리 하나를 잃어 3발이 된 강아지(뽀삐)를 불쌍하다고 데려다 키우셨어요. 가끔, 손님들 또는 제자들과 종종 밖에서 식사하실 때가 있잖아요? 어떤 때는 고기를 드실 때가 있는데, (잠시 멈짓하며) 글쎄 강아지 생각이 난다고 고기를 제대로 못 드시고, 음식을 싸 오시기도 했어요 .‘뽀삐가 생각나서 목에 걸린다’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다리 하나 없는 강아지가 생각나고, 그것이 불쌍해서 고기 드시는 것이 걸린다는 마음 약하고 정이 많은 분, 그분이 바로 월하 김덕순 명창 할머니이셨지요.”
손녀, 김윤서가 전하는 할머니, 김월하 여사야말로 근면한 생활태도를 지닌 분이었고, 또한 꽃과 동물을 사랑해 온, 선(善)한 심성의 소유자였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 함께 살다 보면, 나이에서 오는, 또는 관점(觀點)이나 세대 간의 차이로 인해 의견이 다를 수도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실수로 잘못해서 할머니의 꾸지람도 들었을 법한데, 혹시 눈물을 흘릴 정도의 아픈 기억이 있는지? 있다면 언제, 어떤 일로 그러했는지? ”
“네, 할머니는 소녀와 같이 정이 많은 분이어서 저를 참 예뻐해 주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잘못을 했을 때는 평소와는 달리, 매우 엄하게 꾸짖으셨지요. 특히,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오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돼요, 하루는 제가 버스를 잘못 타서 집을 못 찾고 헤맨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늦게 파출소를 찾아가 간신히 연락이 되어 돌아온 적도 있었거든요.
그때, 할머니는 눈물을 보이시며 심한 꾸지람을 하셨지요.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었던 시절이었고 집을 찾아갈 방법이 없어서 저도 겁이 나서 울기만 하다가 어떤 언니의 도움으로 파출소에 갔었어요. 제가 오지 않고 연락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지금도 마음이...”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감춘다.)
- 월하 선생의 근검절약은 널리 알려진 미담인데, 실제로 일상에서 경험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면?”
“네, 절약의 습관은 몸에 배어 있으셨지요. 휴지 한 장, 빈 상자 하나를 못 버리고 재활용하셨어요.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이, 얼마 안 되었다’라는 말씀이 기억됩니다.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