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권효숙 기자] 임진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선조가 임진왜란 때 몽진을 가던 임진나루가 보이고 그 위쪽으로 날아갈 듯 강을 내려다 보고 있는 정자가 보인다. 바로 율곡이이 선생이 늘 찾던 화석정이다. 율곡선생의 본향이 화석정 아래 율곡리였고 율곡선생은 국사 중에도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며 시와 학문을 전했다 ▲ 율곡이이가 여가가 날 때마다 찾아와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화석정. 율곡의 본향 파주 파평면 율곡리에 있다. 화석정은 본래 고려 말의 대유학자였던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였다고 한다. 이곳에 1443년(세종 25)에 율곡 이이(李珥)선생의 5대 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정자를 짓고, 1478년(성종 9) 율곡 선생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보수하고, 이숙함(李淑諫) 선생이 화석정(花石亭)이라 이름 하였다. 그 후 율곡 선생이 다시 중수하여 독서와 덕을 기르는 곳으로 삼았다. 그 당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화석정을 찾아와 음시 청유(吟詩淸遊), 즉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고도 한다. ▲ 화석정에서 바라보는 임진강 율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조선 중기(1530)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 41)까지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책으로 엮은 여지도서에서 파주의 성씨를 보면 파주에는 지(智), 윤(尹), 방(邦), 백(白), 피(皮). 봉성지역엔 서(徐), 염(廉), 야(夜), 차(車). 적성지역에는 유(劉), 신(申), 김(金), 노(盧), 최(崔), 현(玄), 조(趙), 서(徐), 양(梁). 교하 지역에는 노(盧), 김(金), 옥(玉), 박(朴), 윤(尹), 전(田). 심악지역엔 이(李), 박(朴), 전(全). 석천지역에는 야(夜), 염(廉), 차(車), 호(扈). 등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파주 관적 성씨인 윤, 야, 노, 염, 김씨 외에도 여러 성씨가 오래 전부터 파주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파평윤씨 정정공파 시제 파주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서교(西郊)라고 불려지면서 고려와 조선을 이어 도성 근처에 있고,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토착세력들 또한 조선에 들어와서도 그 기득권을 놓치지 않고 주요 사림들을 배출하거나 왕실과의 혼맥을 통하여 정치적인 주도권을 이어나갔다
[그린경제=권효숙기자]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7월 18일~19일 이틀간 전국에서 공개모집한 무형유산지기의 위촉장 수여식과 워크숍이 개최되었다 ▲ 무형유산지기 위촉식 및 워크숍을 마치고 기념촬영 무형유산지기는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공개모집을 통한 신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거쳐 올해 1차로 64명이 위촉되었다. 이들 무형유산지기는 향토문화연구자, 교원, 공무원,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로서 전문성, 활동경력, 헌신성 등에 관한 심사를 통하여 최종 선정되었다. 남자 45명 여자 19명. 연령층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며 대체로 40~50대가 주류를 이루었다. ▲ 무형문화유산지기 워크숍 중 국립무형유산원 건물을 돌아보고 있는 무형유산지기들 위촉식 이후 워크숍에서는 지역 문화자원 조사 활동 사례와 지역현장 기반의 무형유산 보호의 중요성과 방향에 대하여 강의 및 분임토론으로 이루어졌다. ▲ 무형문화유산지기 워크숍 중 분임토론 후 조별로 발표하고 있다 무형유산지기는 명예직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원칙으로 하며, 앞으로 2년간 ▲ 지역의 무형문화유산 조사연구 ▲ 지정비지정 무형문화유산의 변화발전 모니터링 ▲ 정책 제안 역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파주 광탄면 영장리에는 왕의 친어머니이자 후궁이라는 신분으로 사후에 묘를 원으로 조성하게 된 소령원이 있다. 숙빈 최씨(1670년(현종 11)~1718년(숙종 44)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친어머니로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태어나 7살에 궁에 들어가 궁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여 숙종의 승은을 입어 아들 영조를 낳음으로 하여 일약 무수리에서 내명부 최고의 빈에 오른 인물이다. ▲ 숙빈 최씨의 소령원 능침 숙빈 최씨는 숙종의 승은을 입은 이후 숙원, 숙의, 귀인을 거쳐 숙빈에 봉해지고, 1694년(숙종 20) 24세에 영조를 낳았다. 1718년 3월 49세로 돌아가니 당시 양주군 백석면 영장리 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장사지내고 묘호(墓號)를 소령묘(昭寧墓)라 했으며 서울 궁정동 칠궁 안에 사당을 짓고 그 묘호를 육상묘(毓祥廟)라 하였다. ▲ 소령원 원비 ▲ 소령원 비각 그 후 1753년(영조 29) 6월에는 영조가 친어머니 숙빈최씨를 화경(和敬)이라 시호를 다시 올리고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소령묘를 소령원으로 승격시켰다. 조선시대에 임금의 생모인 후궁의 묘가 원이라는 형식으로 조성되는 것은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재너머 성권롱(勸農) 집의 술 닉닷 말 어제 듯고 누운 쇼 발로 박차 언치 노하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座首) 왔다 하여라 조선시대 낭만적인 대문학가 송강 정철은 참으로 술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관동별곡,사미인곡 등의 작품을 남긴 가사문학의 대가로 윤선도와 함께 한국 고전문학을 대표하지요. 그러나 술을 좋아한 탓에 실수도 많아 유배를 떠날 때 선조임금이 은술잔 하나를 하사하며 이 술잔으로 하루 석잔만 마시면 술로 인한 실수로 남의 미움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 송강 정철 ▲ 송강 정철의 대표적인 가사 관동별곡 위 정철의 시조에서 재 너머 성권롱은 파주 우계에서 살고 있는 성혼을 말하는데 어찌 알았는지 그의 집에 술이 익어간다는 말을 듣고는 소에 언치를 놓아 타고 찾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그 당시 정철은 현재의 고양시 신원동 송강마을에서 부모님의 묘를 2년 간격으로 연이어 쓰고 시묘살이를 4년 7개월간이나 하며 살았습니다.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도 간간이 내려와 이곳에 머물렀고 죽은 후에는 부모님 근처에 자신의 묘가 마련되기도 했지요. 지금은 충북 진천으로 묘를 이장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파주 광탄면에서 고양시 고양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혜음령이라 부르는 높은 고개가 있다. 이 고개는 고려시대 개경에서 남경으로 가는 길이고 조선시대엔 북경으로 오가는 사신들이 다니던 의주대로의 한구간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가 이 고개를 넘어 임진나루를 건너 의주로 피난을 가던 길이기도 하고,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왜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동생 이문승(李文升)을 잃었던 벽제관 전투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 혜음원터 발굴조사 현장 혜음령을 사이에 두고 벽제관과 혜음원이 있었다. 지금은 건물은 불타고 주춧돌과 그 터만 남아 있다. 벽제관은 조선시대의 역관터로서 중국을 오가던 고관들이 머물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관서로에 역관이 10여 군데 있었는데 한양에 들어가기 하루 전에 반드시 이곳 벽제관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예의를 갖추어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이 고개는 산세가 험하고 높아 산적과 산짐승들이 자주 출몰하여 행인들의 짐을 빼앗고 해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조선초 서거정 등이 편찬한 시문집인 『동문선(東文選)』 64권 김부식의 혜음사신창기(惠蔭寺新創記)에 의하면 고려의 수도인 개성의 동남방 지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통일로와 자유로가 만나는 끝 지점에 임진각이 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 옆에는 비무장지대 경의선 옛 장단역 남쪽 50여 미터 지점에서 6.25전쟁 때 중공군에게 피폭되어 멈춰 50여년간을 버려져 있던 화물차 증기기관 화통이 있다. ▲ 경의선 철교와 자유의 다리 이 증기기관차는 당시 연합군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개성역에서 황해도 한포역까지 올라갔다 전세가 악화되어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1950년 12월 31일 밤늦게 경의선 장단역(장단면 동장리)에서 피폭된 뒤탈선하여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이 기관차는 검붉게 녹슬고 부식된 채로 반세기 동안 비바람을 맞고 방치되어 있다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후 녹제거와 방지처리를 한 후 임진각관광지로 옮겨졌다. ▲ 비무장지대 옛 장단역에서 옮겨온 증기기관차 화통 이 증기기관차 화통 안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흙먼지가 조금씩 쌓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뽕나무 씨앗이 그곳에서 싹을 틔웠고 빗물을 먹고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 증기기관차 화통 북측 화단에 옮겨 심어진 뽕나무 가지가 화통 밖으로 져나오면서 기적과도 같이 그 뽕나무는 살아남아 제법 나무모양새를 갖췄다. 기차화통이 임진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의 율곡이이선생유적지가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525호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여 5월 25일 대대적인 기념식과 함께 고유제가 개최되었다. 율곡고등학교 취타대의 개막을 알리는 연주와 함께 파주시립무용단의 힘차고 역동적인 무대공연이 펼쳐졌고 곧이어 지역의 유림인사와 다양한 파주시민의 표창이 이루어졌다. 또한 율곡의 사상과 정신을 재조명해보는 한영우 전 서울대교수의 특별강연도 있었다. ▲ 파주시립무용단이 식전공연을 펼치고 있다 ▲ 파주시립무용단원이 율곡선생으로 분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어서 초헌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아헌관 이인재 파주시장, 종헌관 우관제 파주문화원장이 헌관으로 참여하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고유제례가 봉행되었다. ▲ 고유례에서 초헌관 김문수 경기도지사,아헌관 이인재 파주시장, 종헌관 우관제 파주문화원장이 예를 갖추고 있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초헌례를 행하고 있다 율곡선생유적지 기념식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여 전시된 율곡의 어록과 행적을 읽어보고, 전통차 시음과 떡을 나누어 먹으면서 기쁨을 나누었다.2월 21일 자운서원(紫雲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문산에서 경의선을 타고 가다보면 임진강역을 지나 도라산역으로 갈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위를 철교로 건너면 철조망이 친근한 민통선 지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민간인통제지역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무성한 숲과 나무들, 고라니,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과 이름 모를 풀꽃들, 그리고 그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는 백로, 기러기, 독수리가 보인다. ▲ DMZ안에 유일하게 민간인이 거주하는 대성동 마을. 판문점 인근에 있다. 국내외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분단의 아픔으로만 기억되는 이곳...이곳의 정확한 지명은 경기도 장단군이다. 고려 때부터 도읍지 개성 근교이고, 조선조에도 한양과 멀지 않아, 왕실과 사족들이 거주하거나 사후 문중의 선영지가 많은 곳이다. 이곳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왕건에게 신라를 넘겨주고, 왕건의 맏딸 낙랑공주와 결혼해 개성에서 살면서 신라의 도읍지를 그리워 하며 오르던 도라산(都羅山)이 있다. 또한 북쪽에서 비무장지대를 뚫고 온 1,653m 제3땅굴과, 장단콩 두부로 유명한 통일촌, 대성동 자유의 마을, 실향민의 해마루촌이 있다. 그리고 진동면 하포리에 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을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