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15년 5월 4일 자 매일신보에는 국산 맥주광고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삿ᄲᅩ로 맥주와 아사히 맥주로 일제였지만, 일본과 조선을 하나로 하여 국산(國産)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33년 5월 6일 자 동아일보에는 조선과 일본을 똑같이 짙은 색으로 표시하여 조선은 일본의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광고는 “동양의 맹주 일본! 동양의 명주 사쿠라”라고 광고문구를 썼고 이는 결국 사쿠라 맥주를 마시면서 조선은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흉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러한 광고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조선으로 들여오면서 삽화나 광고문구를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조선에서 광고함으로써 광고 본래의 기능보다는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일제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한 것입니다. 드디어 일제는 민족말살정책을 위하여 1937년 ‘일본과 조선은 한몸’이라는 뜻으로 내건 ‘내선일체(內鮮一體)’로 치달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1923년 9월 25일 자 동아일보에는 “조선을 사랑하시는 동포는 옷감부터 조선산을 씁시다. 처음으로 조선 사람의 작용과 기술로 된 광목”이라는 경성방직주식회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꼬리를 물고 - 박노해 산비탈 밭이 목 말라서 졸졸졸 흐르는 계곡 물줄기를 대나무 관으로 끌어와 물둥지를 만들었다 나로서는 수에즈 운하만큼 대단한 공사였다 물 본 김에 수련 몇 뿌리를 심었더니 붉은 연꽃이 피고 개구리밥이 뜨고 참개구리가 이주해 식구를 늘리기 시작한다 개구리 합창이 정이 들 때쯤 꽃뱀이 슬슬 나타나더니 뱀을 노리는 너구리가 어슬렁거리고 하늘에는 처음 본 솔개가 원을 그린다 얼마 전 일취스님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아서》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는 모두가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잘 사는 길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이렇다 할 방법을 제시하기 힘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혼자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매우 나약하기 때문에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 위안이 되고 보호받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가 있어야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존의 가치성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책에서 스님은 말한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이웃은 물론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지 때 팥죽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이야 잘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개인이 별도로 벌을 줄 수가 없고, 법에 따라 처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간통하거나 하는 사람이 있으면 큰일일 때는 관아를 통해서 벌을 받도록 했지만,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마을 어른들이 발의한 뒤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벌을 주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조리돌림’과 ‘덕석말이’가 있지요. 먼저 ‘조리돌림’은 주로 경상북도 북부 지방에서 있었는데, 전라남도 지방의 ‘화지게’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벌을 주기로 정해지면 마을 사람들을 모은 뒤에 죄를 지은 사람의 등에 북을 달아매고 죄상을 적어 붙인 다음, 풍물꾼을 앞세워 마을을 몇 바퀴 돌아서 그 죄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이것은 죄지은 사람을 마을에서 쫓아내지는 않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게 창피를 주어 심리적 압박을 줌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여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도록 했던 풍속입니다. 그리고 ‘멍석말이’ 또는 ‘덕석말이’는 역시 마을에서 못된 짓을 한 이에게 벌을 주는 방식인데 ‘덕석몰이’라고도 합니다. 벌을 주는 방식은 죄지은 사람을 마을 사람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나라 고유의 무술이자 민속놀이에는 독특한 움직임으로 다리걸기, 발차기, 던지기 등의 기술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택견’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택견’이라고 나오지만, 대한체육회에는 ’태껸‘으로 올라 있으며, 탁견, 택기연(擇其緣), 착견, 각희(脚戱), 비각술(飛脚術)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 이 ’택견‘은 1983년 6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그에 따라 택견’을 수련하는 체육관을 도장으로 부르지 않고 ’전수관(傳修館)’이라고 부릅니다. 택견이 문헌상 처음 나타난 시기는 18세기 초반으로 당시는 ‘탁견(托肩)’이라고 했는데 영조 4년(1728)에 김민순(金敏淳)이 쓴 《청구영언(靑丘永言)》의 사설시조에서 처음 보이지요. 이후 정조 22년(1798)에 이만영이 펴낸 《재물보(才物譜)》와 최영년이 1921년에 쓴 《해동죽지(海東竹枝)》에도 탁견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우리 문헌뿐만 아니라 1895년에 스튜어트 쿨린이 쓴 《코리언 게임스》에도 ‘HTAIK-KYEN-HA_KI(택견하기)’ 기록이 등장하지요. 택견의 수련과정은 크게 혼자 익히기(개인 수련), 마주메기기(상대 수련) 등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 3월 3일 KBS-1TV <진품명품> 프로그램에는 화려함의 극치, 불교미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이 등장했습니다. 의뢰품은 표지와 그림, 글씨까지 전부 금으로 작성되어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경전의 내용을 압축하여 그린 ‘변상도’는 부처가 마치 눈앞에 있는듯한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었습니다. 이날 출연한 김영복 전문위원은 “역사적인 값어치는 물론 국가 차원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으뜸 제작 수준을 자랑한다.”라고 했으며, 추정감정가는 10억원에 달했습니다. 또한 이 의뢰품은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된 것이며, 무려 약 700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려 후기 국내 유일본으로 밝혀져 높은 감정가로 평가받은 것입니다. 남색 종이에 금 글씨로 사경하여 펼쳐서 볼 수 있게 만든 절첩본(折帖本)인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0.8㎝, 가로 10.9㎝이고, 한 면 6행 17자지요. 변상도는 가로 43.5㎝, 20.8㎝로 오쪽빛을 여러 번 물들인 색종이에 표지, 변상도, 경문 모두 금가루를 아교에 갠 물감인 금니(金泥)로 사경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립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하얗고 붉은 향기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가운데 줄임)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마음엔 한껏 꽃 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모레면 벌써 24절기 셋째 ‘경칩(驚蟄)’이다. 경칩은 놀란다는 ‘경(驚)’과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이 어울린 말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다. 원래 ‘계칩(啓蟄)’으로 불렀으나 기원전 2세기 중국 전한의 6대 황제였던 경제(景帝)의 이름이 유계(劉啓)여서, 황제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서 계'자를 '경(驚)'자로 바꾸어 '경칩'이 되었다. 경칩에는 개구리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고 몸에 좋다고 해서 이날 개구리알 찾기가 혈안이 되는데 지방에 따라선 도룡뇽 알을 건져 먹기도 한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즙을 마시면 위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이때쯤 되면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국립수목원 전시원에는 봄꽃들 잔치로 완연한 봄세상이 된다. 그와 함께 수목원 곳곳 얼음 녹은 물웅덩이마다 겨울잠을 끝낸 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선생님의 고난일생 지성일념이 이러했거늘 마지막에 원수 아닌 동족의 손에 피를 뿜고 가시다니요. 이것이 선생님에게 바친 최후의 보답입니까? 동포 형제여, 가슴을 치고 통곡하십시오. 선생님! 천지가 캄캄하고 강산이 적막합니다. 무대에서 임진택 명창이 오열한다. 어제 3월 1일 낮 3시 3.1절 105돌을 맞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와 백범김구기념관, 김구재단이 함께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백범 김구' 창작판소리 공연이 펼쳐졌다. 판소리 ‘백범 김구’는 백범 김구 선생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담은 창작판소리다. 창작판소리의 핵심 내용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조국의 독립과 광복 이후 분단과 남북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막기 위해 노력하다 안두희의 총탄에 삶을 마감한 김구의 일생을 담았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를 기반으로 임진택 명창이 판소리 대본인 창본을 직접 쓰고 장단을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의 첫 공연은 2009년 백범 서거 60주년 당시, 김구재단과 함께 제작한 것으로 1부 '청년 역정', 2부 '대한민국임시정부', 3부 '해방시대' 모두 3부로 구성돼 이후에도 지속해서 공연을 진행해 오고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인생일장은 춘몽이 되고 세상공명은 꿈밖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세월가는 것 등달아 나어이 할까요 이는 서도소리의 대표되는 것으로서 남도의 ‘육자배기’와 함께 우리 민요의 쌍벽을 이루는 소리로 꼽지요. ‘수심가’는 섬세한 감정과 호흡을 담은 소리인데 지난 1월 26일 서울돈화문국악당 <일소당 음악회>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서도소리 전승교육사며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인 유지숙 명창의 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대개 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애틋한 심경을 읊은 것인데, 열자 안팎으로 된 '가'와 '나' 두 부분과 "생각을 하니…나 어이 할까요"로 된 '다' 부분이 1절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가ㆍ나ㆍ다로 나누어진 짜임새는 초장과 중장과 종장으로 된 시조나 남도민요 육자배기의 구성과 같아서 전통 음악의 노래에 나타나는 형식의 공통점을 보여 줍니다. 〈수심가〉를는 서도소리의 대표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공명가’와 ‘초한가’와 같은 잡가나 ‘엮음 수심가’의 끝에서는 수심가 한 절로 끝맺음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든지, 서도소리의 특징을 '수심가조'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으로도 증명됩니다. 소리의 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가무형문화재에는 옥 종류의 돌을 이용하여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하는 장인 ‘옥장(玉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ㆍ중국ㆍ일본 등에서는 옥공예가 일찍부터 발달했는데 그 까닭은 중국에서 돌 가운데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옥’을 ‘오덕(五德)’에 견줬기 때문입니다. 곧 옥에서 온화한 광택이 나는데 이를 ‘인(仁)’으로, 또 투명하고 맑은 빛깔을 보이는데 이는 ‘의(義)’로, 두드리면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지(智)’로, 깨져도 굽히지 않는 성질을 ‘용(勇)’으로, 예리하면서도 상처를 내지만 절대로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을 ‘엄(嚴)’을 상징한다고 하여 이를 오덕으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옥으로는 옥피리ㆍ옥경(玉磬) 등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어 연극에 썼고, 의례에 쓰이는 도구로서는 대규(大圭)ㆍ규장(圭璋), 꾸미개(장신구)로는 옥비녀ㆍ옥가락지ㆍ옥구슬ㆍ패옥(임금ㆍ왕비의 법복이나 문무백관의 조복(朝服) 좌우에 늘여 차던 옥)ㆍ옥새(임금의 도장) 등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연회에 사용했던 그릇이 모두 백옥(白玉)으로 만들어졌다는 기록도 있으며, 조선 중종 때에는 옥장들이 몰래 옥을 캐어 옥기(玉器)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자한(自恨) 春冷補寒衣(춘냉보한의) 봄날이 차서 얇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사창일조시) 깁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低頭信手處(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 채 珠淚滴針絲(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 이는 매창(梅窓)이 연인 유희경을 오랜 세월 동안 만나지 못하여 애절한 속마음을 표현한 <자한(自恨)>이라는 시다. 아직 쌀쌀한 이른 봄, 갑창(甲窓, 추위를 막으려고, 미닫이 안쪽에 덧끼우는 미닫이)에 햇빛이 비치고 있지만, 머리 숙여 그저 손길 가는 대로 바느질만 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신다고 표현하여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애절한 속마음을 짐작게 한다. 매창(梅窓)은 부안의 기생으로 황진이와 더불어 시서화에 능한 조선 여류문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탕종(李湯從)의 딸로서 본명은 이향금(李香今)이며 매창은 호다. 계유년에 태어나 계생(癸生), 계랑(癸娘, 桂娘)이라고도 한다. 당대 문인이었던 유희경과 가슴 시린 사랑을 나누었고, 허균, 이귀 등과 교류하며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널리 알렸음은 물론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매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