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양인선 기자] 열아홉 나이로 순국한 김용창 선열을 추모하며 이윤옥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으면 아홉 형제 맏이로 줄줄이 동생들 챙기며 부모님께 효도했을 청년 김용창 식민지 땅에서 태어나 우편국 사환으로 뛰었지만 어찌 푸른 꿈까지 버렸을까? 조선은 독립의 때가 곧 온다고 힘을 모으자 동포에게 외치던 몸 왜놈에 잡혀 모진 고문으로 옥중 순국하던 날 산천초목도 울고 하늘도 울었어라 금쪽같은 아들 앞세운 아버지 피 토하며 뒤따르고 홀몸으로 아홉 형제 거둔 어머니 휘어 틀린 허리 사이로 무심한 세월만 흘러 모두가 떠난 상두리 고향 마을엔 오뉴월 고추잠자리 한 마리 저 혼자 맴도네. ▲ 열아홉의 나이로 순국의 길을 걸은 김용창 지사의 앳된 모습 열아홉 청년 김용창(金容昶, 1926.8.3~1945.4.3)은 경기도 향남면 출신으로 푸른 꿈을 안고 열다섯의 나이로 상경하였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 열다섯 소년의 할 일이란 사환 뿐이었다. 그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환을 거쳐 체신국 경성보험관리소 직원으로 근무하는 한편, 야간에는 덕수공립상업학교(德壽公立商業學校)에서 미래를 꿈꾸며 학업에 정진했다. ▲ 향남면 상두리 선영에 있는 김용창 지사 흉상
[한국문화신문 = 양인선 기자] 망종에 비 한 번 와 주시려나 / 一雨期芒種 텅 빈 연못 새벽에 물방울이 걸려 있네 / 空池曉滴懸 하늘에는 온통 먹구름 모여들고 / 雲陰渾已合 바람도 벌써부터 심상찮게 불어오네 / 風信早相傳 오랜 기도 효험 없어 마냥 부끄러웠는데 / 禱久慙無驗 희우시(喜雨詩) 짓게 되니 한량없이 기쁘도다 / 詩成喜欲顚 어떤가 이곳에 상객으로 머물면서 / 不妨留上客 뜻에 차게 좋은 시편 써 보지 않으려나 / 滿意寫佳篇 오늘은 망종이다.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 선생은 망종날 “기옹의 희우시에 받들어 화답하다[奉和畸翁喜雨]’ 라는 시를 지었는데 요즘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는 심정이 물씬 느껴진다. 우리 동네 화성시도 가뭄에 저수지 바닥이 드러날 지경이다. 보리 베기를 해야 하는 보리밭도 가물어 흉년 조짐이다. 옛사람들처럼 희우시(喜雨詩)를 지을 사람도 없는 반농반시(半農半市)의 망종은 어째 잘못 그린 수채화 같기만 하다.
[한국문화신문 = 양인선 기자] 지금 들녘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일찌감치 모내기를 마친 논도 눈에 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손질 해놓은 논둑 위에 귀여운 들오리 형제들이 나란히 거닐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그 옆에는 백로도 날아와 먹이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제 수도권은점차 농토가 사라지고 있다. 얼마 안 남은 논에 모내기를 위해 가둬논 물이 비닐하우스처럼 보인다.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을 거쳐간모내기 끝난 논을 보면서 어느새 성큼 계절이 여름으로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올해도 풍년이 오길 빌면서.... 경기도 화성 들녘에서.
[한국문화신문 = 양인선 기자] 학살의 현장은 언제나 붉은 핏기운이 흐르고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의 구슬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의 현장은 그래서 언제 봐도 가슴이 쓰라리고 아프다. 어제 3.1절을 맞아 화성시(시장 채인석)는제암리 학살 소식을 세계 만방에 전한 스코필드 박사를 기리기 위해스코필드 박사 동상제막식을 제암리에서 가졌다. ▲ 스코필드 박사 동상 캐나다 의사출신인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박사 동상은 화성시가 제96주년 31절을 맞아스코필드 박사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릴 만큼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이다. ▲ 동상 제막식 행사 스코필드 박사는 1959년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해 보육원 후원과 흥국 직업학교를 돕는 등 사회봉사 활동에 헌신해 대한민국 문화훈장ㆍ건국공로훈장을 받았으며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화성시는 그동안 스코필드 박사의 넋을 기리고 제암리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해 6월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화성시, 국가보훈처 등의 기금으
[한국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79주기 추모기념 행사가 어제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 단재 영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신흥우 독립유공자유족회 수석부회장의 개회선언에 이어 김원웅 (사)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의 기념사가 있었다. 김원웅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국토를 잃은 민족은 희망이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희망이 없다 는 요지의 추모사를 했다. 이어 김대훈 청주보훈지청장의 추모사 등 내빈들의 추모사와 광복회 김원진 지부장의 헌화가 있었다. ▲ 단재 신채호 선생 추모기념 제전 기념식모습 추모에 이어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신채호 선생과 부인 박자혜 여사의 묘소에 뫼절을 올렸다. 아쉬운 것은 기념관 안에 박자혜 여사의 독립운동에 관한 것은 훈장외에 그 어떤 기록도 없어 아쉬웠다. 박자혜 여사 역시 여성독립운동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뛰었던 분이다. ▲ 단재 신채호 선생 추모식을 마치고 기념관 앞에서 살아서는 언제나 불꽃처럼 뜨거웠고/ 죽어서 더욱 꼿꼿했던 당신/ 살아서 한번도 비굴하지 않았고/ 죽어서 더욱 형형하게 빛나던 님/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할지 가르치신 당신/ 내 모든 것 이 나라에 바쳐/ 영원히
[한국문화신문 = 양인선 기자]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 -조문기 어록 가운데서- 오늘 오전 11시, 서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별관) 폭탄 의거의 주인공인 독립지사 조문기(19272008) 선생의 추모식이 경기도 화성에서 조촐히 열렸다. 추모식은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지부장 이호헌)와 광복회 화성지회 (지회장 신창우) 주최로조문기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화성시 화성매송초등학교에서 신용승(민족문제연구소 전 수원지부장)등 지역원로와 선생의 뜻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선생의 독립의지를 새기는 자리였다. ▲ 추모식에 묵념하는 참석자들 조문기 독립지사는 경기 화성(華城) 사람으로 1943년 5월 일본 가와사키(川岐市)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 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의 민족차별 반대시위에 참여하여 이를 주도하였다. 그리고귀국 후인 1945년 5월 서울 관수동의 유만수(柳萬秀)의 집에서 유만수우동학(禹東學) 등과 함께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국내에서의 대일투쟁을 결의
[그린경제/얼레빗 = 양인선 기자] 거 미 줄 이고야 누굴 홀리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누굴 잡으려고 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안의 파도치는 그 어떤 것 내 안의 솟아 올라 어쩌지 못하는 그 질긴 인연의 끈 그것이 나를 옭아매듯 내 피중의 피 살중에 살로 나오는 그 어떤 것일뿐.
[그린경제/얼레빗= 양인선 기자] 버리고 떠난 뒷간에도 어린시절 정겨운 웃음이 가득했던폐가에도 가시관 쓴 성자의 모습 같은 길모퉁이 바윗돌에도 피어나는 풀꽃 돌보지 않아도 피고지는 풀꽃들!
[그린경제/얼레빗 = 양인선 기자] 지난해 가을 번잡한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남편의 고향 화성시 향남읍에 내려와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필자로선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뒷동산을 한 바퀴 도는 산책길에 만나는논두렁 밭두렁도 정겹고 집 근처 길가에서 주인 모를강아지나 들고양이까지도 반갑다. 아이들은 훌쩍 커 각자 짝을 맺어 떠나니 늦게나마 퇴직한 남편과 어머님 모시고 자연을 벗 삼으며 사는 삶이 즐겁다. 아이들은 저마다 치열하게 제 몫의 삶을 살고 있으니 나도 내 몫의 삶을 살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 최상의 정보기술(IT)기술 덕분에 산 속이나 지구 끝 어디에 가 있어도 실시간 사연을 보낼 수 있고 사진을 전송 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농촌의 자잘한 일상과 철따라 변해가는 자연을 사진에 담아 가끔 [향남일기]에 글을 올리려 한다. 기자가 되었다고 하니 친구 하나가 인선인 지금이 '화양연화' 인가보네?라고 한다. 그 뜻이 인생에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란다. 글쎄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라고 답했다.요즘 세월호 사건을 보며 내일 우리가 어찌 될지 모르는데. 오늘
[그린경제/얼레빗 = 양인선 기자] 겨우내 찬서리를 견뎌낸마늘 싹이 텃밭에 예쁘게 올라왔다.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제법 튼실하다. 올 마늘농사 풍작 예견! 뒷 산 진달래는 겨울눈 상태로 혹독한 겨울추위를 이겨 내고 이제 꽃망울을 틔우려 하고 있다. 아파트 앞 공원에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보통 산수유 나무가 그리 크지 않지만 이곳 산수유는 왕산수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