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끊어진 압록강 다리, 6.25때 폭파된 한강인도교와 철교에 관해선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또 다른 끊어진 다리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중국과 북한을 잊는 압록강에 놓인 다리들이다. 몇몇 다리는 지금도 끊긴 체 남아 있고 어떤 다리는 왕래는 하되 북한 경제제제 조치로 시간제한이나 검열을 받으며 가끔 차가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어떤 다리는 완공은 했으나 개통하지 않은 체로 남아있었다. 한ㆍ중합작으로 건설된 압록강 신대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 까닭은 명확치 않으나 개통 되지 않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어 한강대교를 지나 북한땅을 거쳐 압록강 신대교를 넘어 대륙을 달릴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원하며 이번 여행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유적지를 보고 난 뒤 경관 좋은 압록강변을 따라 이동했다. 압록강 상류의 어느 지점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북한 쪽에 근접해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끊어진 다리 하나를 보았다. 다리의 끊어진 부분 사이로 유람선이 통과하면서 운행했다. 북한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가고 강변에서 물놀이를 하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단둥시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향하는 중간에 랴오닝성 통화현 환인시를 통과했다. 입담이 보통이 아닌 가이드의 얘기를 귀로 들으며 눈은 줄곧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짙은 녹색의 우리나라 6~7월 산악풍경과 비슷했다. 다만 하얀 피부의 자작나무를 자주 볼 수 있고 들판엔 논은 보기 힘들고 옥수수밭이 많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고구려의 땅이었고 발해의 땅이었으며 독립운동가의 애환이 서린 땅이다. 갑자기 "창밖을 보세요."라는 가이드의 목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저 멀리 나타난 신비롭게 생긴 직사각형 탁자 모양의 '오녀산성'! 해모수의 아들 주몽이 부여를 떠나와 고구려를 건국하며 첫 도읍지로 세운 졸본성! 아름다웠다. 천혜의 자연요새였다. 사진 한 장 남기고 일정상 먼발치에서 조망하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였던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국내성'에선 시간 여유를 갖고 걸었다. 국내성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한쪽으론 압록강이 흐르는 도읍지로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주몽의 첫부인 예씨부인이 낳은 유리왕자가 단검 반쪽을 갖고 아버지를 찾아와 2대 임금이 되고 도읍지를 국내성으로 옮긴 때가 기원후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북백두산 천문봉에 올라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보았다. 화산 대폭발로 산꼭대기가 날아가고 움푹 패여 생겨난 거대한 칼데라호! 백두산 천지! 사방 기암괴석 절벽으로 둘러쳐진 듯하다. 저 건너편이 북한 쪽이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면 호수로 내려오는 긴 계단이 보이고 삭도(로프웨이)도 볼 수 있다. 북한쪽 능선에도 관광객들이 온 듯 북적이는 듯하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삭도를 타고 내려와서 한라산물과 백두산천지물 합수식을 했던 곳이 바로 저기다. 통일을 염원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고 짙푸른 천지의 물에 흰구름이 그대로 비춰보였다. 정상에 서서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북백두산 기슭 관광안내소에서 관광버스를 내려 바라본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답게 아름답고 또한 신비로웠다. 관광객들도 넘쳐났다. 입장과 안전을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전용버스를 타고 오르는데 두 시간은 족히 걸렸다.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내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백두산 천지를 보고 하산 길에 '장백폭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점심시간을 넘기고 땀에 젖어가며 한 시간 정도 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나는 걸어갑니다. 이제는 사뿐사뿐 걸어도 좋고 타박타박 걸어도 좋아요. 이제는 나쁜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 마구 달리지도 않고, 일본 경찰에게 쫓기면서 허겁지겁 도망치지도 않아요. 독립이 된 우리나라에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뚜벅뚜벅 나는 걸어갑니다. 일본 경찰에 쫒기면서 허겁지겁 도망치지 않아서 좋단다. 바로 위 글은 담벼락에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글을 쓰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심한 고문을 받아 숨진 김용창 독립지사가 한영미 동화작가의 입을 통해서 한 말이다. 어제 화성시 향남읍 상두리에서 있었던 김용창 애국지사 추모제에서 한영미 동화작가는 올초에 펴낸 자신의 동화책 《낙서 독립운동》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을 낭독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화성시 작은마을 상두리에서 태어난 김용창 지사는 15살에 상경하여 낮엔 우체국 사환으로 일하고 밤엔 덕수공립상업학교에 다니며 공부했다. 직장에서 일본인들이 행하는 차별과 일제의 노골적인 식민지 정책에 분노하여 스스로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44년 5월 종로 거리와 건물들의 담벼락에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글을 쓰다가 일본 경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푸르던 청보리밭이 황금물결 보리밭으로 변신했다. 보리알곡이 까맣게 드러나 보이고 짹짹이는 참새소리에 귀가 따갑다. 보릿고개얘기는 상상하기 힘들다. 머잖아 보리 수확하는 콤바인소리 요란하겠지. 다음엔 어떤 작물을 심을지 궁금하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당연시 했던 푸른 하늘인데 오늘 따라 반갑고 감사하다. 모내기 끝난 논물에 비친 푸른 하늘도 아름답다. 더불어 오월의 아카시아향기와 찔레꽃 향기도 더 짙게 느껴진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요즘 농촌은 모내기 전 흙덩이를 부수어 논바닥을 고르는 써레질이 한창이다. 해가 떠올라 더워지기 전에 일을 끝내려는 듯 열심히 트렉터를 움직이고 있다. 예전엔 저벅저벅 이랴이랴 소를 몰아 종일토록 써레질을 했을 터이다. 하지만 요즘엔 뾰족뾰족한 철로 만든 써레를 붙인 트렉터로 한 시간이면 족하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오월 아침에 빛나는 보리밭 지난해 가을 들깨 수확 후 씨 뿌린 보리밭 겨울 매운바람 이기고 씩씩하게 자라났다네 오월 아침 산들 바람과 햇살에 일렁이며 빛나는 보리밭이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제암ㆍ고주리 학살사건 100주년 추모제'가 어제(4월15일) 화성시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에서 열렸다. 23인 합동묘역 참배 및 헌화가 있었고 뒤이어 공식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졌다. 정치인 내빈소개는 따로 하지 않고 자막으로 대신했으며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에 이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참여한 어린이들과 함께 목청껏 애국가 4절을 모두 불렀다. 유족대표 안소헌 광복회 화성지회장은 “왜놈은 망하고 인민의 나라 섰으매 거친 밤 촉새되어 울던 노래 그치라.”라는 제암리 마을에 어귀에 서있던 3.1운동순국기념비에 적혀진 박세영 시인의 추도시를 잠시 읊는다. 그리곤 “세월이 묵묵히 흘러 어언 100년. 해마다 3월 1일이 오고 4월이 오면 순국하신 29선열을 생각할 때면 불현듯 그 비문 내용이 떠올라 절절한 심정으로 홀로 읊조리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친 밤 촉새되어 울던 노래 이제는 그쳐야 합니다. 흘러간 세월의 아픔, 질곡의 삶이 지워진 두께가 무척이나 두텁고 무겁기 때문입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안소헌 유족대표의 인사에 이어 추모사와 추모시 낭송이 있었고 추모 및 평화 메시지 작성식과 추모공연이 있었다. 특히 평
[우리문화신문= 양인선 기자] 미국 헌팅턴비치에 자리한 윤패트리셔(차인재 애국지사의 외손녀) 씨의 집은 주위 다른 집들 보다 앞마당이 더 깔끔하고 넓었다. 노란 오렌지와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정원수가 기자 일행을 반기는 가운데 집안에 들어서자 화장기는 없지만 건강미 넘치는 얼굴을 한 윤패트리셔 씨가 달려 나와 우릴 껴안으며 반겨주었다. 기자는 지난해 8월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책을 쓰는 이윤옥 시인과 함께 차인재 지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대담을 하고 나서 이윤옥 시인은 차인재 지사에 관한 글을 《서간도에 들꽃 피다》 (9권)에 실었고 이번에 LA방문 시에 이 책을 전달하려고 차인재 지사의 외손녀 집을 방문한 것이다. 거실에 앉자마자 윤패트리셔 씨는 랄프안(안필영, 안창호 선생의 막내 아드님) 선생께 조언을 구해 차인재 지사님이 어떤 경로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남편인 임치호 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이윤옥 시인이 사인해 준 《서간도에 들꽃 피다》 (9권)을 전해드렸더니 고마워하시면서 기뻐하셨다. 뿐만 아니라 아끼는 두 장의 사진(이화학당 사진과 본인이 들어가 있는 한복 입은 한글학교 사진)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