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임진왜란 때 중히 쓰였으면 어땠을까 싶은 인물이 둘 있다. 바로 이 책 《조선의 영웅 김덕령》의 주인공인 김덕령과 송구봉이다. 조선 중기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둘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눈과 신분의 굴레에 매여 높은 뜻을 못다 펼친 채 스러져갔다. 솔직히 역사에 밝은 이에게도 김덕령과 송구봉의 이름은 생소할 법하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그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우고도 반란 수괴 이몽학을 도왔다는 죄명으로 모진 국문을 받다 순국했고, 율곡 이이의 절친한 벗이었던 송구봉은 율곡을 능가하는 천재로 이름이 높았으나 미천한 출신 때문에 출사하지 못하고 재야에 묻혀 지냈다. 지은이는 먼지를 덮어쓰고 박제되어 있던 두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들은 둘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이 많았던 덕분인지 유난히 전설과 설화가 많다. 이런 이야기들을 얼기설기 엮어낸 지은이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전우치가 족자에서 뛰어나온 것처럼 두 사람이 책 밖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광주 무등산 기슭에서 태어난 김덕령은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지관이 무덤을 쓰려고 점찍어둔 자리에 김덕령의 부모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병신춤이라 부르지 마시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 장애자들 내 동생 어린 곱사 조카딸의 혼이 나에게 달라붙어요. 오장 육부가 흔들어 대는 대로 나오는 춤을 추요.” (p.14) 광대 공옥진이 춘다. 오장 육부를 뒤흔들며 춘다. 이른바 ‘병신춤’이다. ‘병신’이라는 말에 내포된 부정적 어감을 지우기 위해 ‘곱사춤’으로도 불리는 이 춤은,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이들의 한과 눈물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한판 굿에 가깝다. 한 시대를 풍미한 판소리 명창, 1인 창무극의 대가, 곱사춤 명인 공옥진은 아이돌 그룹 투애니원의 단원 공민지의 고모할머니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공민지 또한 집안에 면면히 흐르는 ‘예인의 피’를 입증하듯, 수많은 아이돌 그룹 가운데서도 예사롭지 않은 춤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은이는 이 책 《춤은 몸으로 추는 게 아니랑께 – 광대 공옥진》을 통해 명인 공옥진이 한평생 걸었던 예인의 길, 그녀가 남기고 떠난 소중한 유산을 딸에게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어조로 풀어낸다. ‘우리 인물 이야기’ 시리즈의 일곱 번째 이야기로 나온 이 책을 읽다 보면 ‘공옥진’이라는 한 인간이 일궈낸 아름다운 유산을 오롯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고행록(苦行錄). 이 책의 주인공, 한산 이씨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한글 자서전에 붙인 제목이다. 얼마나 인생이 고단했으면 자서전에 ‘고행록’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당시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정경부인까지 올랐지만, 인생의 그림자와 거친 비바람에 눈물 흘린 날들도 참으로 많았다. 이 책 《고행록, 사대부가 여인의 한글 자서전》 지은이 김봉좌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근무하던 시절, 진주 유씨 모산종택을 방문해 두루마리 형태의 친필본을 직접 보았다. 당시 장서각에서는 한산 이씨 부인의 《고행록》 번역 작업이 한창이었고, 지은이는 한글문헌학 전공자로서 자료집 편찬을 주관하고 있었다. 이때 펴낸 자료집이 《고행록: 17세기 서울 사대부가 여인의 고난기》였고, 여기서 못다 한 이야기를 올올히 풀어낸 것이 이 책이다. 사실 한산 이씨는 남편의 정치적 부침은 전혀 기록하지 않았기에, 유명천의 행적과 한산 이씨의 고행록을 견준 지은이의 노고로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한산 이씨 부인은 아계 이산해의 고손녀로 1659년(효종10), 기해년에 태어났다. 한산 이씨 가문은 이산해와 그 아들 이경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은근히 친숙하면서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조선, 그러나 보면 볼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신기한 조선.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재밌는 사실도 많고, 이 책의 부제처럼 ‘민초의 삶부터 왕실의 암투까지’ 다양한 결의 역사를 두루 맛볼 수 있는 시기가 조선이다. 《조선 산책》 지은이 신병주 교수는 조선사 전문가로, 역사의 다양한 모습과 그것이 오늘날 지니는 함의를 꾸준히 전달해왔다. 이 책은 2015년 10월부터 <세계일보>에 ‘역사의 창’이라는 이름으로 약 3년 동안 격주로 연재한 칼럼을 시의에 맞게 적절히 재구성한 것이다. 칼럼에 연재한 글이니만큼 각 꼭지가 재미있으면서도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책의 어느 부분을 펴서 읽어도 술술 읽힌다. 이 책의 제목이 ‘산책’인 것에서 알 수 있듯 각 꼭지가 그렇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말랑말랑한 주제가 많다. 그 가운데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꼭지를 발췌해보았다. # 선비의 육아일기, 《양아록》 그렇다. 근엄할 것만 같은 ‘조선 남자’, 선비도 육아일기를 썼다. 16세기 학자 이문건(1494~1567)이 쓴 《양아록》이 바로 그 일기다. 그럼, 누구를 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책도, 글도 많은 시대다.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블로그와 같은 1인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같을 때는 독서도 글쓰기도 참 쉬울 것만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대부분 정보를 영상과 이미지로 흡수하면서, 오히려 읽고 쓰는 활동은 뜸해져 간다. 짧은 글과 이미지, 영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긴 글을 읽어내는 문해력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평가다. 이 책, 다이애나 홍의 《세종처럼 읽고 다산처럼 써라》는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독 군주 세종과 다작 선비 다산의 사례를 통해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활활 불타게 하는 책이다. 세종과 다산의 사례를 풍부히 인용하면서도 다른 역사적 인물이나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도 함께 녹여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세종은 조선 임금 가운데 그 누구보다 독서를 즐겼다. 게다가 즉위하고 처음으로 한 말이 “의논하자.” 일 정도로 토론 또한 즐겼다. 특히 일종의 독서 토론인 경연(經筵)을 워낙 좋아해, 태종이 30회의 경연만 참가한 것에 견주어 세종은 1,898회나 참가했다. 경연은 임금과 신하가 함께 고전을 읽으며 현안을 풀어가는 조선의 독특한 정치 방식이었다. 이 토론에서는 거의 계급장을 떼다시피 한 격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고 가격이 아주 비싼 상표의 제품.” 국어사전에서 찾은 ‘명품(名品)’의 정의다. 아무래도 요즘 많이 쓰이는 쪽은 후자다. 백화점 문을 열자마자 명품관으로 달려가는 것이 유행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명품은, 그 자체로 뛰어나기도 하지만 ‘쓰면 쓸수록 값어치가 새록새록 느껴지는 물건’에 가깝다. 그냥 휙 보고 지나가기보다, 생활 속에서 곁에 두고 썼을 때 더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이 책, 《생활명품》의 지은이 최웅철은 예(藝)와 맛의 고장 전주에서 종가의 장손으로 우리 문화를 흠뻑 느끼며 자랐다. 한옥에서 한지와 나무 냄새를 맡으며 자랐고 마루와 구들을 놀이터 삼아 놀았다. 전주에서 규모가 큰 한식당을 운영할 정도로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 덕분에 맛있는 우리 먹거리도 많이 맛보았다. 지은이는 그 시절이 자신을 지탱하는 그리움이고, 양분이고, 열정이라고 회고한다. 그래서 지혜롭고 아름다운 전통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한 나머지, 우리 문화의 미감과 매력을 차곡차곡 담은 책 한 권을 펴냈다. 그가 엄선한 한국의 공예와 회화, 건축, 음식을 따라가다 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글’. 우리가 우리말을 ‘한글’로 부른 것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언문’, 또는 ‘훈민정음’이라 불려오다가, 주시경 선생이 ‘위대하고 큰 하나의 글’이라는 뜻을 담아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부터 한글은 민족의 마음속에 크고도 높게 자리 잡았다. 이 책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은 1443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때부터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까지, 한글이 우리 역사에 스며드는 과정을 28대 사건으로 풀어냈다. 그 가운데는 허균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펴낸 것처럼 익숙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이야기가 많아 한글을 둘러싼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를테면 하급 관리들이 한글 벽서를 써 붙여 고위 관료를 비판했다든지, 《훈민정음》에 관한 시험을 보아 고위 관료를 선발했다든지, 종로시장 상인들이 한글 투서로 호조판서를 비판했다든지… 한글이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쓰였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쉽고도 재미있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28대 사건 중 가상 인상적인 5대 사건을 골라 보았다. 1. 1460년, 《훈민정음》으로 고급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74) 사람들은 왜 내 겉만 보고 어쩌다 내 진면목이 숨겨진 채 괴롭힘을 당한 난쟁이로만 인식되어온 걸까? 사람들이 우리를 가까이 하도록 우리를 아끼는 이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사랑을 주고 길러온 것인데...... 자연의 풍광을 정원으로, 정원에서 집안으로 들여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이 있었는데 괴롭혀온 것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오해투성이의 말들만 난무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흔히 분재에 대해 갖는 편견이 있다.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잘 자랄 나무를 괜히 못살게 굴어 성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분재는 그런 억압과 왜곡의 예술이 아니다. 나무가 가장 좋은 조건에서 자랄 수 있도록 고도의 기술을 발휘해 균형과 절제의 미학을 구현하는 것이다. 사람의 타고난 본성을 교육해 순화시키듯, 분재 또한 나무의 본성을 적절히 다듬어 천 년을 가는 나무로 탈바꿈시킨다. 이 책 《분재인문학》의 지은이 성주엽 실장은 제주도 서북쪽, 한경면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에서 아버지 성범영 원장을 도와 1991년부터 나무와 정원을 돌보고 있다. 이 책은 분재에 대한 항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나무를 통해 깨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북한은 미지의 세계다. 북한을 가본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북한을 잘 모른다. 북한 전반에 대해서도 그러할진대 북한 유물에 대해서는 더더욱 접할 기회가 없다. 그저 옛날 고구려 땅이었으니 고분에 그려진 벽화가 있겠고, 개성이나 평양에도 유물이 좀 있겠거니…하고 짐작하는 정도다. 북한 유물이 궁금하면서도 알아갈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이 책, 《미리 가본 북한유물박물관》이 반가울 법하다. ‘세계 유명 박물관 여행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으로 나온 이 북한 유물 입문서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지만, 성인 독자도 책장을 넘겨보며 북한에 있는 유물을 빠르게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것처럼, 평양의 중심부에도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조선미술박물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책에서는 북한에 있는 문화유적과 유물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무덤벽화는 벽화관, 조선미술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은 회화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은 유물관으로 묶어 선보인다. 책에 수록된 유물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다섯 가지 유물을 골라보았다. &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57-58) 가시리 가시렵니까 버리고 가시렵니까 나는 어떻게 살라고 버리고 가시렵니까 붙잡아 둘 것이지만 싫어지면 아니올까 서러운 님 보내오니 가시는 듯이 돌아오소서 높고 고운 나라, 고려(高麗)에는 노래가 참 많았다. 이 노래들을 우리는 ‘고려가요(高麗歌謠)’라 부른다. 지은이는 고백한다. 학창시절, 높고 고운 노래(高麗歌謠)를 접하자마자, 간절함 아래 흐르는 짙은 슬픔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그때는 삶도 문장도 서툴기만 하여 공책에 노랫말을 옮겨 적고 서랍 깊숙이 넣어뒀지만, 지금도 그 영혼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 자신하긴 어렵지만, 더 미루면 영영 그 노래들을 이야기하지 못할 듯싶어 용기를 냈다고. 선유가 쓴 이 책 《가시리》는 입에서 입으로, 750년 후인 오늘까지 전해진 고려가요를 실타래 삼아 한 가인(歌人)과 그녀를 둘러싼 두 무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고려시대 악사들이 소속되어 있던 기관 팔방상(坊廂)의 으뜸 가인 아청(鴉靑)과 좌별초와 우별초를 대표하는 무사로 이름 날린 좌(左), 우(右)가 그 주인공이다. 셋은 원나라가 고려를 침공하여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 고려가 원을 피해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