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후여이, 시절 좋다 냇버들 잎새 돋고 이쁜 각시 물오르니 옆구리 날개 단 듯 하늘로 오르는데, 노세 좋다, 젊어 놀아,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인생 일장춘몽이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어허야 흥타령이야 여기 잠시 쉬어갈까 마당쇠야, 이놈 마당쇠! 허리춤이 그게 뭐냐 하도 마렵기에 똥 누다가 왔습지요 그것 참, 똥 한 번 누기 생원시보다 더 힘드요 뒤보는 놈 불러다가 술상 차려 올리라니 이런 개발새발! 군부독재가 이만할까. 조진사댁 갑분이는 연차 월차, 생리수당 꼬박꼬박 챙기는데, 상여금은 고사하고 새경마저 떼어먹는 우리 샌님. 뒤 닦을 새도 없이 이리 오라 저리 가라 우로 좌로 가라 마라. 오냐, 모르것다 주전자 속 탁배기는 손가락으로 저어 주고, 돈냉이, 취나물, 산채나물은 조물조물 무쳐주니 나물 간 짭짜름하니 한맛이 더 나리라 <해설> 이제 벼슬이고 학문이고 다 안중에도 없다. 까짓거, 낙방거사라 낙담할 것도 아니고 천천히 양반 본분대로 살아보자. 봄 되니 시절도 좋다. 냇버들 물 오르니 마을마다 이쁜 각시들 봄이로구나, 희롱이로구나. 얼씨구, 인생 일장춘몽이 아니더냐. 늙어 몸져눕기 전에 놀 수 있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머리엔 고깔 쓰고 어깨엔 붉은 가사 그 땡중 춤사위 한번 활달하다. 봉긋한 가슴 잘록한 허리, 두 여인을 사이에 두고 장삼으로 휘감으며 오락가락 앉았다 섰다 어르고 달래는 듯, 연못가의 붕어보단 덩더꿍 선이 굵고, 지족선사 유혹하는 황진이 자태치곤 춤사위 거만하다. 끊지 못할 인연에 대한 번뇌인가 파계인가. 아무리 좋게 보아도 난봉꾼이 분명하다. 이 각시가 내 각신가 물 건너 온 꽃각신가 이쪽을 취할라니 저쪽이 서운하고 남 주긴 더 아까우니 셋이 함께 놀아보자 <해설> 이제 사설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승무를 놀아보자. 이 오광대 승무 추는 이의 굿거리장단이 활달하다. 장삼 휘날리며 이리 얼쑤, 저리 얼쑤. 이 여인 한 번 보고 저 여인 한 번 보고, 에라 모르겠다. 둘 다 취하면 어떨꼬? 난봉꾼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내 팔자 학승도 못되고 선승도 못되니 팔자대로 살다 가면 될 것이니. 아, 저 꽃각시 아름다운 자태도 서럽다. 이 밤 다 새도록 춤이나 추다 한세상 살다 가자.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보다시피 이 몸은 심심산골 중놈이오 내가 자발적으로다가 온 것이 아니라 박하분 냄새가 날 인도하였으니 이해들 하더라고. 밤낮없이 용맹정진(勇猛精進) 초의채식(草衣菜食) 하였더니 몸이 영 부실하여 약 삼아 개장국에 뒷다리 수육 두어 접시, 목메니 물 삼아 탁배기 한 동이 먹고 보니 아랫도리 뻐근하여 몸 좀 풀러 온 길이오. 뭣이여? 날 더러 부도덕? 차라리 돌로 치소 저잣거리 가득 메운 군자님들 들어보소 갑자기 부도덕 부도덕하니 이빨 뽀드득 갈리면서 설사 뿌드득 나올란다. 식첸가 급첸가, 아이고 속이야! 더럽고 메스껍다. 우리 불자들은 밥보시, 돈보시 보다 육보시를 중히 치니 불제자 된 도리로 못 본 체할 수 없음은 당연지사 툭 까놓고 얘기해서 나는 잡놈에 땡중이요. 그래도 출퇴근 버스 대절하여 남의 신도 가로채고 면죄부 팔고, 부적 팔아 살진 않소. 아미타불도 하다 보면 재미타불이 되기도 하고 그 짓도 심심하면 니미기씨불이 되기도 하니 부처가 별거든가 깨치면 성불이지. 이미 나는 도(道) 텄응께 시방 예가 도솔천이요 미륵세상이로구나. 쯧쯧쯧 법문 들었으면 불전이나 내놓아라 내가 자발적으로다가 온 것이 아니라 박하분 냄새가 날 인도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 스님 들어온다 목탁은 어데 두고 고깔에 덩실덩실 장삼자락 휘감으며 왕년에 놀아본 솜씨 예사내기 아니신데? 얼씨구 저 춤사위 큰물에서 놀아본 듯 부잣집 외아들로 권번 섭렵 하였던가 과거도 사연일랑도 묻지 말고 덮어두자 < 해설 > 2수로 된 평시조다. 특별한 시적 장치를 하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시조로 춤판을 그려 보았다. 스님 등장한다. 장삼에 길게 늘인 옷소매의 우아한 춤가락이 춤판을 휘젓는다. 경을 외거나 참선을 하는 스님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승무 가락을 보니 필시 저잣거리 춤판을 전전하며 놀아본 솜씨가 예사가 아니다. 어쩌면 저 옷 벗어버리면 권번에라도 뛰어갈 태세다. 묻지 마시라. 태생도, 신분도, 고향도. 어차피 이곳에선 춤 잘 추는 이가 주인공이니 춤사위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던가. 오광대에 꽃각시 유혹하는 승무 없으면 무슨 재미있으리오.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불빛에 날라리 울고 징소리 애잔하다 감는 듯 감기는 듯 여인 둘 마주 보며 살포시 코고무신 들어 나울나울 춤을 춘다 속살은 인절미 맛 찰지고 쫄깃쫄깃 도화살 낀 년이라면 복상사 조심조심 문단속 서방질 단속 자나 깨나 다시 보자 못 보던 색신데 어디서 왔다던가? 니가 아나 내가 아나 달포 전에 왔다는군 갓 따온 애호박같이 무쳐먹기 딱 좋구만 언뜻언뜻 스쳐가는 불빛에 비친 눈물방울 흰 장삼 휘감아 올려 얼굴을 훔치고는 먼 하늘 용마루에 걸린 별빛을 바라본다 슬픔인지 교태인지 우수인지 화냥낀지 이 밤 남정네들 돌아갈 집은 없다 춤사위 흐드러지니 밤은 자꾸 깊어가고 <해설> 무대는 특별한 장치 없이 마당에서 연희하며, 악사는 놀이마당 가장자리에 앉고 관객은 그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구경한다. 조명은 놀이마당 가운데 두서너 곳에 장작불을 놓아서 밝힌다. 놀이 내용은 그날그날 따라 조금 다르지만 대체로 원형은 변하지 않는다. 첫째마당은 ‘중춤’이 시작되기 전에 이 시집에선 각시를 먼저 조명한다. 중과 각시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추는 장면인데 각시에 눈길을 주는 작품이다. 중은 넌지시 춤추는 두 각시를 바라본다. 날리는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느덧 해는 뉘엿 산 그림자 내려온다 마음 둔 청춘 남녀 스리슬쩍 다가서고 저만치 횃불 그림자 사람들은 너울너울 거, 앞에 키 큰 양반 고개 좀 숙여보소 섬에 나고 섬에 자라 이런 구경 처음이오 막걸리 동이 째 내온 객주집 인심도 좋아 어디서 두런두런 쇠판 돈 털렸다네 먼 곳 악다구니 괭쇠 소리에 잦아들고 춤판은 무르익는데 돌아갈 집은 멀다 <해설> 드디어 제4과장 승무과장까지 달려왔다. 이쯤이면 오광대 구경도 슬슬 절정으로 치달을 준비를 한다. 이 시는 오광대놀이를 쓴 것이라기보다 광대놀이 벌어지는 장마당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햇볕이 제법 따가울 때였는데 이제 뉘엿뉘엿 해가 기운다. 오일장은 파장이지만 놀이마당은 이제부터다. 제 물건 팔기에 여념 없던 장꾼들도 이곳에 눈길 주고, 한가득 한가위 대목장을 본 사람들도 이 판에 몰려든다. 제법 술맛도 나고 흥타령도 구성지다. 으레 이 바닥에선 청춘남녀 간 스리슬쩍 사랑의 불꽃이 싹트기도 한다. 객주집 전등 켜지고, 싸움도 일어나고, “거, 앞에 키 큰 양반 / 고개 좀 숙여보소” 하며 본격적인 놀이 즐길 준비를 한다. 문제는 꼭 이즈음에 사달이 나기도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춤판을 놀아보니 양반이 동네북이다 권세에 으름장 놓아 미안코 미안네만 비비야 말뚝이야 양반에게도 할 말 있다 인물 좋고 집안 좋고 돈 많으면 죽일 놈인가 강남에 땅 부자면 일단 한 번 조져본다. 학벌 좋고 품 넓어도 일단 한 번 조져본다. 그물에 걸려들면 마당에 끌어내어 털어서 먼지 내기, 강냉이 튀밥 하듯 밀가루 폭탄 터뜨리기, 잘난 놈 먼지에 숨어 제 잇속 차리는 속셈, 네놈이 알고 남이 안다. 탈 쓰고 외치지 말고, 중언부언하지 말고, 패거리 지어 매질 마라. 맨가슴 맨얼굴로 저자에 나와 외쳐보라. 제 허물 먼저 깨닫고 남 허물 들추어라 <해설> 그래, 말뚝이한테도 당하고, 비비한테도 당했으니 양반님 억울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양반도 할 말 있다고 외친다.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인물 좋고 집안 좋고 / 돈 많으면 죽일 놈인가” 아니다. 분명 그렇다고 뭐 죽일 놈은 아니다. 그런데 ‘있는 놈은 나쁜 놈, 인물 좋은 놈은 나쁜 놈’이라며 누가 돌 던지면 함께 우르르 돌팔매질하는 게 세상인심이다. “강남에 땅 부자면 일단 한 번 조져본다. 학벌 좋고 품 넓어도 일단 한 번 조져본다. 그물에 걸려들면 마당에 끌어내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낭패다 낭패로다! 어쩌나 어쩔거나!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진퇴양난(進退兩難), 장량(張良)아 복룡(伏龍) 봉추(鳳雛)야, 계책을 알려다오. 비비님 앞에 서니 나는 왜 작아질꼬. 역발산기개새(力拔山氣蓋世)던 항우(項羽)도 못 당하고 여포(呂布) 관우(關羽) 장익덕(張益德)도 당할 재간 없다하니, 오냐 묵어라, 비우 상하나따나 앵꼽아도 할 수 없다. 내가 니 고조할애빈데 그래도 묵을라쿠모 퍼뜩 쳐묵고 사라져라. 아이쿠! 고조할배요? 그리는 못 합니더! 탐관오리 악덕 양반 징치하러 왔다지만 동몽선습(童蒙先習) 읽은 터에 장유유서(長幼有序) 모를 리가 아무리 헛헛증 심하기로 할애비를 어찌할까 살았다 살았구나! 내가 바로 제갈공명 조상님 은덕인가 부처님이 도왔는가 얼씨구 굿거리장단 한 판 춤을 놀아보자 <해설> 오광대놀이에서 양반을 겁박하는 최고의 등장인물은 비비임은 앞에서 누누이 말하였다. 이리해도 저리해도 도저히 당하지 못하는 상대인데 참 답이 없다. 양반체면에 계속 마당을 끌려다닐 수도 없고, 참 난감하게 되었다. 그 장면을 사설시조로 녹여 보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진퇴양난(進退兩難), 장량(張良)아 복룡(伏龍) 봉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쳐 죽일 비비놈아 비비야 비비선생 비비새, 비비추는 내 익히 들었다만 무신 책, 무신 장면에 등장하는 이름인고? 책만 잡았다 하면 눈꺼풀이 축 처지니 설령 읽었다 한들 기억이나 나겠느냐 인명 편 찢어진 부분에 살짝 나오고 없느니라 아하! 그 찢어진 책? 나도 전에 읽었다오 근데 참말로 무엇이든 다 잡아묵소? 생고기 썩은 고기도 안 가리고 잡수신다 자란만 갱물에 사는 치들도 잡아묵소? 치라쿠모 멸치 꽁치에 털치 준치 말하는가? 만난 것, 아작을 내어 비늘 째 먹고 싶다 펄펄 튀는 여치에 뻔득뻔득 산갈치 뿔 두 개에 다리가 넷, 꼬리 달린 송치*는? 육회든 숯불구이든 통째로 씹어보자 입은 욕바가지 마음은 놀부 심보 대가리는 꼴통에다 뱃거죽은 똥자루인 양반도 설마 묵겄나 이것만은 못 묵겄제? 쟁반 위의 양반이라!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딱 한 놈 모자라는 백 놈을 먹었으니 승천이 머잖았구나 고맙도다 횟감이여 ※송치: 송아지의 경상도 방언 <해설> 오광대놀이에선 주로 춤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런데 흥이 나면 간혹 재담을 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란만 갱물에 사는 / 치들도 잡아 묵소? / 치라쿠모 멸치 꽁치에 / 털치 준치 말하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이 몸이 누구인지 신분을 밝혀주랴? 앞의 비자가 성(姓)인지 뒤의 비자가 이름인지 나도 잘 모른다만 어쨌든 비비라 부르니라. 옥황상제 명을 받아 남도 땅 기찰 중에 새털구름에 새가 없고 양떼구름에 양이 없어 필시 무슨 사단이 난 듯하여 왔느니라. 마패는 구경도 못 한 한갓 먼지 같은 신세인데, 몸은 사람이요 머리는 괴물이라, 육간대청도 내가 붙으면 폐가가 되고, 화려 뽐낸 자개장도 내가 들면 헌 농이 되니, 아무 씨잘데기 없는 미물이기도 하고 넘볼 수 없는 놈 재판하는 판관이기도 하다. 찍히면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보느니라 <해설> 그렇다면 이번에도 신분을 놓고 재담하는 사설시조가 빠질 수 없다. 물론 이 역시 오광대 춤판에는 없는 장면이다. 마당에선 춤으로, 시에선 재담으로 각각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재담이란 말로써 말을 부리는 것이니 비비를 두고 말을 만들어 보았다. 비비, 혹시 성이 비이고 이름이 비인가? 말부림은 가락이 살아 있어야 재미있다. 그래서 산문처럼 쓰면 사설시조가 되지 않는다. 앞말을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을 주워섬기는 식이다. 요즘의 랩과 흡사하다. “새털구름에 새가 없고 양떼구름에 양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