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저런저런! 양반님들 떼로 몰려 나왔구려 명색이 양반인데 탈바가지 덮어쓰고 꼴깝을 떠는 양이 한심도 하다마는 귀엽기도 하네그려. 모름지기 양반이면 육법전서 읽은 대로 세상주름 살펴주고, 가슴에 나라 국(國)자 붙였으면 국가대사 바로 읽어 옳은 처신 바랐더니, 남의 집 곳간 털어 지져먹고 볶아먹고 하나당 두나당 너거당 우리당 짝짜궁 궁합 제대로 맞춰 돌고 도는 모양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어 소인놈 대들보 들어 올려 호박에 말뚝 박고 똥 싸는 놈 까뭉개는 저 잘난 놈들을 향해, 메방을 놓아나 줄까 똥침을 콱 찔러나 줄까 <해설> 어떻소? 오늘 말뚝이의 눈으로 보니 양반들 그 속셈과 허풍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소? 양반탈 속에 감춘 허세와 거드름, 뒷짐 지고 걷는 팔자걸음도 우리가 불쌍히 여겨 줌세. 하도 내세울 게 없다 보니 떠는 꼴값이 아니겠는가, 그리 보면 또 한편 귀엽기도 한 것이지. 우리가 가슴에 나라 국(國)자 붙여줬으면 국가 대사 바로 읽어 옳은 처신 흉내라도 내야 할 것인데, “남의 집 곳간 털어 지져먹고 볶아먹고 하나당 두나당 너거당 우리당 짝짜궁 궁합 제대로 맞춰 돌고 도는” 당리당략이 참 볼만하다. 벼슬 준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여보시오 소인놈 말뚝이 아뢰오 들에 가면 나무말뚝, 옥에 가면 강철말뚝, 과수집엔 공이말뚝, 고런 말뚝이 아니오라, 언 가슴 녹이는 민심의 어사또 말뚝이라 불러주오. 상전 잘 못 만나 분하고 억울하여 미치고 환장할 땐 지체 없이 기별하소. 내 이놈을 득달같이 쫓아가서 묵사발 만든 후에 자빠뜨리고 깔고 앉아 석달 열흘 삭이고 썩힌 지독한 방귀 한 방을 콧구멍에 정조준하여 피시시식! 푸하아아....통쾌하고 고소하다. 갓끈도 풀어버리고 반상 굴레 벗겨놓고 고쳐야 할 법(法) 있거든 버꾸 들고 버꾸 치고 버꾸 치다 꼴리거든 벗고 치고 벗고 치고 냇갱변 포강배미 허물 벗듯 활씬 벗고 놀아보세 <해설> 하이고, 우리 양반님들, 잘나고 잘났구려! 그렇다면 이놈 말뚝이는 어떤 놈인지 한 번 들어나 보실라우? 세상에는 참 쓰임새 있는 말뚝이가 많다오. 들에 가면 나무말뚝, 옥에 가면 강철말뚝, 과수집엔 공이말뚝이 있는데, 다 요모조모 필요한 말뚝들이오. 하지만 인간 세상, 아니 오광대 마당엔 이보다 더 중요하고 요긴한 말뚝이 필요한 법, 바로 이름도 거룩한, 오늘의 주인공 말뚝이 되시겠소. 이래저래 할 말 못 할 말 많은 세월 살다 보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양반 타령 내가 바로 양반이시다 붓 잡은 책상물림 동반 서반 중에서도 동편에선 동반 문인, 내 비록 시골양반 육간대청 떵떵 울리는 벼슬은 못 했다만 오대조께옵서는 관찰사와 기방동기, 이조판서 영감과는 동문수학 막역지간, 위로는 임금 상제에 통하고 아래로는 내 알 바 아니라서 들은 적 본 적도 없다 알아 묵것냐 이놈들아 길일 택해 씨 뿌리고 씨 골라 낳았으니 애초부터 근본이야 유별함이 당연지사 웃것은 사인교 타고 아랫것은 땅을 긴다 방석 밑에 깔고 앉아 공맹자 사서오경 읽고 또 깨우치니 삼정승 육조판서가 내 손 안에 있느니라 <해설> 이제 양반님네들 자랑이 가관이다. 손에 흙 한 번 안 묻힌 책상물림이 무에 그리 자랑일까. 서편에 서면 서반문인, 동편에 서면 동반문인인가? 양반이란 조상 덕에 착실히 공부는 못했으니 과거시험에 붙을 일을 없을 터. 하지만 부친, 조부, 증조부, 고조부 위의 오대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관찰사를 잘 아는데, 그 우정은 학문으로 맺은 인연이 아니라 기방에서 술깨나 사 바치며 맺은 인연이고, 이조판서와는 어릴 적 동문수학했으나 그저 서당을 같이 다닌 인연이 전부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자랑질이 눈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쉬이, 물렀거라 양반님 나가신다 비질하고 물 뿌려라 쌍것들 밟은 마당 재갈 고삐도 탈탈 털어 뫼시란다 비단길 서역만리(西域萬里) 물 건너온 명주 버선 봄 햇살 얼굴 탈라 합죽선(合竹扇)으로 해 가리고 백로야 인물 비견 마라 옥골선풍(玉骨仙風) 눈부시다 <해설> “비질하고 물 뿌려라 / 쌍것들 밟은 마당 / 재갈 고삐도 / 탈탈 털어 뫼시란다” 슬슬 갈등의 주인공인 양반 납신다. 나으리님 걷는 길엔 먼지도, 자갈돌도 있으면 안 된다. 비질하고 물뿌리며 깨끗이 신작로 닦아놓아야 한다. ‘고삐도 탈탈 털어’를 요샛말로 바꾸면 번쩍번쩍 광택 낸 고급차가 아니겠는가. 차에서 내리는 품새를 보니 가히 우리 같은 아랫것들과는 다르긴 다르다. 의복은 저 태평양 건너온 것이고, 구두는 이름만으로 날아갈 듯한 상표를 붙었나 보다. 헌헌장부, 옥골선풍에 팔자걸음으로 걷는다. 속에 무엇일 들었는지는 알 바 없으나 일단 꾸밈새만으로도 기가 죽는다. 오방색 옷 입고 춤사위 근사하다만 가난한 이들, 억울한 이들에겐 더 먼 곳, 잡히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이다. 어쩔거냐? 말뚝이에겐 흙냄새, 땀냄새가 더 좋은걸. 광대놀이 어찌 진행될지 자못 궁금하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젯밤 자고 나니 코뼈에 눈썹 하나 오늘은 또 어디가 문드러져 사라질까 남산도 허리가 잘려 내 꼴인 듯 서러운데 양반아 군수님아 공방살 낀 연놈들아 대곡산 넘다 보니 문드러진 꼬라지 이 몸만은 아니더라. 찢고 이기고 조져놓은 산세가 가히 장관이다. 날라리야 꽹과리야 한도 눈물도 상관 말고 뛰놀아라. 코 하나 달아나니 빗물이 들고나고, 귀 하나 떨어지니 세상 잡소리 안 들린다. 소고에 북채 흔들며 굿거리 한 장단에 시름도 한숨도 쏟아내고, 앉거나 서거나 아프거나 마르거나 밟히거나 뒤지거나 나 몰라라 나는 몰라라. 엇장단에 덧뵈기로 춤판을 돌아간다. 어깨춤 한 번이면 고대광실이 내 것이요, 얼쑤 장단을 넘다 보면 나랏님도 발 아래니 돌아라 부러진 어처구니 이빨 빠진 맷돌들아 <해설> “어젯밤 자고 나니 코뼈에 눈썹 하나 / 오늘은 또 어디가 문드러져 사라질까 / 남산도 허리가 잘려 내 꼴인 듯 서러운데” 이제 시는 조금씩 세상 이야기를 담아 간다. 내 몸 어디가 문둥병으로 몽그라지고 사라지듯 우리네 강토 곳곳도 잘리어 사라져 간다. “양반아 군수님아 / 공방살 낀 연놈들아” 춤판에서 양반은 현실에선 정치 일선에 선 지도자들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패랭이 눌러쓰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자줏빛 흔데자국* 이리 씰룩 저리 씰룩 날라리 장고는 울고 춤사위 시작된다 노방초 모진 목숨 고향이라 찾아드니, 돌팔매에 몽둥이찜질, 나물 삶은 물 퍼붓는 인심도 서러워라. 조석지변(朝夕之變)하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한 인간사야 매양 그렇지만, 옥수골 내천이며 무량산 구름은 어이 외면하고 떠나는가. 내 일찍이 강산 두루미로 떠돌고 돌았지만 희다 검다 모의하고 도모한 적 없었는데, 세상은 저들끼리 어르고 달래며 희희낙락이다. 청산엔 봄꽃들 지천인데 내겐 아직 잔설만 남아 있다. 몽그라진 손으로는 코 풀기도 어려워라. 손가락 떨어진 곳에 파리는 왜 앉느냐. 찔레야 무성한 들찔레야 똥파리 좀 쫓아다오 * 흔데자국: 검은색의 문둥병 흔적 <해설> “날라리 장고는 울고 / 춤사위 시작된다.” 자줏빛 흔데자국(문둥병 흔적)만 봐도 고통은 알만하다.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이지러진 탈바가지 덮어쓰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노방초처럼 살아온 떠꺼머리총각은 고향에 와서도 찬밥 신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라는 농사는 안 하고 고작 배웠다는 것이, 문둥이 흉내나 내는 춤꾼이 되어 귀향했으니.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장마당 문둥이 등장 아따 올 농사 오지게도 실하것다 덕석 피고 차일 쳐서 어제부터 끓인 국밥 흥겨운 장구경 끝에 막걸리 한 사발 걸쳤는가? 넘사시런 몰골이라 나서긴 좀 그렇네만 문둥골에도 춤이 있어 춤 한 자락 배웠으니 어떤가 장마당 오달지게 이놈 춤 한번 놀아볼까? <해설> 옳거니, 오래도 기다렸다. 장마당 열리고 고사도 지냈으니 본격적으로 춤판을 벌여볼까. 그렇담 첫 번째로 문둥춤이겠다. 문둥탈 쓰고 쓰억 좌우 돌아보는 것이, 흡사 “흥겨운 장구경 끝에 / 막걸리 한 사발 걸쳤는가?” 하고 묻는 듯하다. 문둥춤 추는 사내의 사연이야 미뤄 짐작해도 알만하다. 문둥이 흉내 내는 잡기춤. 양손에 소고와 북채 들고 이리 들썩, 저리 들썩 마당을 호령하는 모양이 심상찮다. 오죽하면 문둥병을 천형이라 했을까. 그 슬픔과 비애를 무엇에 비하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들은 격리되어 살았다. 그러므로 그들 마을은 금이 그어진 금지된 마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문둥골인들 춤이 없겠는가? 슬픔 많고 고통 많은 그 몸짓 하나로만 씰룩대어도 춤사위는 절로 피어난다. 내 비록 문둥이는 아니지만, 그들 애환 내가 듣고, 나의 애환 구경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탈놀이 고하나니 깜부기도 목 타는 어느 해 어느 봄날, 정화수 한 그릇과 삶은 고기 제수(祭羞)하여 엎드려 한 장 축원문으로 선사님께 고하나니 소가야 장마당을 울리는 광대놀이 어허이, 비옵나니 올 농사 풍년에다 출항이면 만선이요, 아이 없는 아낙에겐 아이 점지 하옵시고, 병치레 달고 사는 이 고장 사람들 눈병, 속병, 울화병, 지랄병도 모두 모두 거두시고, 우리들 덜 여문 춤이어도 암팡진 여인네랑 걸판진 남정네들, 보트라진 바지게작대기와 거류요 벽방산도 더덩실 춤을 추게 신명은 물론이요, 불꽃에 달려드는 불나방이 남김없이 탈 때까지 얼쑤! 추임새로 얽힌 춤 풀어 주게 잔 들어 흠향하시어. 탈놀이 무탈 무고하도록 널리 도와주옵소서 <해설> 드디어 고성장마당 오광대놀이가 시작된다. 놀이에 앞서 무탈 무고하도록 제를 지낸다. 돼지 머리에 온갖 과실이며 쟁여둔 술도 내놓고 정성껏 절을 올린다. 물론 이 제사 역시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감소고우...세서천역 휘일부림(維歲次 某年 某月 某日...敢昭告于...歲序遷易 諱日復臨)”식의 기존 제문 예법을 따르는데 시에선 좀 다르게 썼다. 축문인지 주문인지 “올 농사 풍년에다 출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문디 손, 문디 손아 담부랑은 와 타넘노 오입질 도적질도 팔자소관 분복인데 썩을 놈 양상군(자梁上君子)처럼 월담이 다 무어냐 어무이 고정하소 삽짝 밖에 다 듣것소 홀어미 버려두고 천형 짊어진 채 살포시 밤마실 와서 고하는 죄 볼 낯 없소 야반도주하였다가 문둥골에 숨어들어 나물국에 밥 말아 먹고 근근이 살아왔소 낼 아침 문둥춤 추는 놈이 아들이니 그리 아소 부디 잘 계시오 오늘이 막죽이오 고성장 한마당을 탈바가지 덮어쓰고 어허야, 덩더꿍 더꿍! 놀아나 보고 떠날라요 <해설> 아하, 이제 알겠다. 문둥춤 추는 놈이 누군지, 왜 그 한 많은 문둥춤에 젊음을 바쳐야 하는지. 들물댁과 정분이 난 얼금뱅이 총각은 소문이 나서 야반도주를 했구나. 아서라. 이미 소문 자자하여 갈 데도 없고 반겨줄 곳도 없었으니 고작 찾아간 곳이 문둥골이었다니! 문둥이들 나물국에 남은 밥 말아 먹고 하루하루 연명이나 하였구나. 문둥골에서 나와 어느 캄캄한 그믐날, 도둑처럼 담을 타 넘고 제집 찾아왔으니 어쩌것소. 몇 날 며칠, 탈바가지 얻어 쓰고 그들 몸짓 흉내나 내다보니 오광대 춤꾼이 되었구려. 그것도 문둥이 탈 덮어쓴 서러운 춤꾼! 오늘 이렇게 어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소 문 아무도 보리밭에서 날 보았다 하지 마소 지난밤 들바람이 왜 비리고 붉었는지 들물댁 속곳 푸는 소릴랑은 들었다 하지 마소 <해설> 오광대 춤추는 사내는 어째서 이곳으로 흘러와 춤꾼이 되었을까. 혹시 이런 과거를 갖고 있지나 않은지.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장터 떠도는 신세가 된 것은 아닐까. 작은 시골 마을, 얼금뱅이 사내와 과수댁의 정분은 금방 소문이 난다. 보리밭이건 방앗간이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아무도 몰래 보리밭에서, 물방앗간에서 만났지만 좁디좁은 마을에서 그 소문이야 둘만 모를 뿐 남들은 다 아는 비밀이 아니었을까. 제발 누가 보았다면 입 좀 닫아주오. 내놓고 혼인할 수 없는 두 남녀의 사랑이지만 돌아서서 비웃으며 말하지 말아주오. 비련의 사랑빛은 노을처럼 붉었고, 냄새는 비렸다. 사람들아. 내 사랑 들물댁 속곳 푸는 소리며 디딜방아 찍는 소릴랑은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냥 무심히 지나가다오. 3장 6구, 단시조에 이런 사연들을 엮어내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시조 쓰기가 어렵다. 긴 시는 긴 대로 어렵고, 짧은 시는 짧은 대로 어렵다. 재주 부족한 사람으로서 짧은 글 속에 생략된 이야기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