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저놈 누구냐 저놈 이름을 적어라 그년은누구냐 그년 이름도 적어라 이놈은... 더러운 블랙리스트 그 꼬리가 오늘 잘렸다 밝은 해 아래 천지 개명된 민주동산의 나무에 주렁주렁 달렸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겨레의 얼을 사랑하는 이들의 순수한이름을 더럽힌 자들이 오늘 법의 심판을 받았다 더 이상 더러운 이런 놀음 더는 이런 해괴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대한민국이길 국민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간절히 빌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이는 65살의 나이에 폭탄 의거로 순국의 길을 걸은 강우규(1855-1920) 의사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남긴 말이다. 나라를 빼앗은 흉악한 일제에 온몸으로 저항한 것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이지만 강우규 의사는 겸손하게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청년들의 교육’을 걱정했다. 그러한 강우규 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실천 행동 뒤에는 탁명숙(1900-1972)이라는 여성독립운동가가 있었지만 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런가하면 핏덩이 갓난아기를 남겨두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박치은(1886-1954)애국지사도 있다. 박치은 애국지사는 남편 곽치문(1882-1922)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감옥에 들어갔는데 핏덩이 갓난아기를 둔 몸이었다. 철창 밖에서 젖이 먹고 싶어 우는 아기를 일제는 끝내 면회시켜주지 않아 눈앞에서 아
[우리문화신문=심순기 기자] 일장춘몽(一場春夢), 남가일몽(南柯一夢), 한단지몽 등은 모두 같은 말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도 역시 같은 말이라 할 수 있다. 권력은 오래 가지 않으며, 봄에 잠깐 꾼 꿈같은 것이다. 호화 권력도 부귀영화도 “한낱 꿈” 중국 당나라 현종 때 하북성 한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도사 여옹은 노생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노생의 신세타령에 여옹은 도자기 베개를 건넸다. 노생이 베개를 베자 도자기로 빨려 들어가 커다란 집에 사는 명문가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과거에도 급제하여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나 역적으로 몰려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 다시 복권되어 가족들과 장수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노생이 죽는 순간에 눈을 뜨게 되는 데, 일어나보니 주막에서 잠이 들어있었다는 것. 도사 여옹은 잠에서 깬 노생에게 “인생은 그런 것이네.”라며 웃으며 말했고, 노생은 부귀영화라는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사(古事)다. 일은 못하지만 지독히도 운이 좋고 잘 나가던 이가 바로 박근혜다. 하지만 최고의 권력을 잡은 지 2년이 지나면서부터 “레임덕이 올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심순기 기자] 대한민국에도 ‘개혁’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개혁을 부르짖고, 우리 민족이 잘 살아야 한다며 외치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매우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일이다. 혹자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개혁이 이루어졌고, 긍정적인 측면도 강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단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러한 주장이 올바를 수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1만년 스펙트럼 속에서 살펴보자면 우리 민족을 위하는 개혁은 실패한 것이 전부다. 역삼각형 한국사…권력집단이 역사왜곡 주범 대부분의 개혁은 일부 지역을 위주로 그 지역 인사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재력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적 개혁이었다. 그로 인해 연암 박지원선생은 “우리 민족의 영토는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줄어들었다.”고 한탄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거꾸로 된 역삼각형 형태의 역사를 써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대하고 찬란한 역사에서 작고 슬프고 창피한 역사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발전이 아닌 퇴보의 길을 걷는 것이다. 4350년의 새해가 밝았다. 수탉의 고요를 깨는 함성은 새 시대의 희망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전 국민이 같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로 쓰일 때가 됐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은 47살 때인 음력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상한(1일-10일)에 《훈민정음》이란 책을 통해 새 문자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1443년 음력 12월은 훈민정음 28자가 세상에 공개된, 그야말로 훈민정음 28자의 기적이 일어난 달이다. 그 기적은 세상에 57자의 단출한 기록으로 드러났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자(세종실록 온라인판 영인본에 의함) (번역)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본뜨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한자에 관한 것과 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간결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창제한 날을 남한은 반포한 날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분단의 아이러니이지만 이제는 남북이 연계하여 창제한 날과 반포한 날을 함께 기려야 한다. 필자는 창제한 날은 문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만세불러 그대를 보내는 이날 임금님의 군사로 떠나가는 길 우리나라 일본을 지키랍시는 황송합신 뜻 받들어 가는 지원병 .... 총후 봉공 뒷일은 우리 차지니 갈데마다 충성과 용기 있어라 갈지어다 개선날 다시 만나서 둘러둘러 일장기 불러라 만세 - 이광수 ‘지원병 장행가’ 삼천리- 위는 변절자 춘원 이광수가 일본을 ‘우리나라’라고 추켜세운 시의 일부다. 그런가 하면, 최남선은 “대동아 전쟁의 세기적 성업에 이바지하게 됨은 실로 남자로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감격이며 청년 학도들은 두 어깨에 짊어진 특별한 의무와 책임을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대동아 전장에 특별지원병으로서 용맹한 출전을 하여 일본국민으로서 충성과 조선 남아의 의기를 바로하여 부여된 영광의 이 기회에 분발 용약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전해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 1943년 11월 20일 매일신보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가운데 일부 - 최근 이 두 사람의 문학성이 위대하다고 하여 한국문인협회가 문학상을 제정한다고 발표 한바 있다. 바로 지난달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가결하고 내년부터 우수 작품활동을 한 문인에게 시상하기로 했던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요즘 한글 전용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으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이 있었고 이에 많은 논란이 일었다. 그런 때 농촌진흥청에 들어온 새내기를 대상으로 우리말 바로쓰기 교육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서 헌법소원에 대한 얘기를 해주고 새내기들이 교육 들어올 때 받은 공문을 보기로 들어 설명해주었다. 먼저 이미 보냈던 한글로 쓴 공문을 보여주었다. ▲ 농촌진흥청의 한글로 쓴 공문 그리고 한자를 써야한다는 주장처럼 한자로 바꿔 쓴 공문을 예로 들어주었다. ▲ 한글 공문을 한자로 바꿔 쓴 공문 예 이어서 한자로 써서 못 읽는 사람도 많을 테니,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한자를 한글로 다 풀어준 공문도 보여주었다. ▲ 한자를 한글로 다 풀어준 공문 예 이렇게 공문 세 장을 보여줬더니, 새내기들이 입을 쩍 벌리면서 한자를 써서 공문을 만들면 절대 안 된다고 한결같은 소리로 다짐했다. 이를 보면 한글전용에 대한 헌법소원은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 것 아닐까?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시는 날로 팽창하고 있다. 2030년까지를 도시 건설 완공 목표로 착착 진행됨에 따라 실제 거주 인구가 2015년에는 전년대비 30%이상 증가하여 2016년 3월 현재 인구 227,025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양적 발전에 걸맞은 세종시의 위상을 세우는 일을 좀 더 고민할 때이다.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도시다운 세종 정신으로 내실을 다지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세종과는 아무 관계없이 ‘세종’이 들어간 수많은 상호들과는 격이 다른 ‘세종’의 이름값을 해야 할 의무가 세종시에 있다. 사실 세종시는 처음부터 한글 디자인과 우리식 건물명 등을 통해 세종 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세종 정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침 이춘희 세종시장과 이충재 행복건설청장 모두 세종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물론 이 문제는 지도자 의지만으로 이뤄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세종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여 세종시의 위상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종시에 세종학 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제안한다. 세종학은 세종대왕에 대한 인물론부터 그가 남긴 업적과 계승 문제를 연구하는 일종의 융합학문으로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어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아무도 내다보지 못한 결과를 낳고는 조용히 끝났다. 우리 국민은 국회의원 300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123자리, 새누리당에 122자리, 국민의당에 38자리, 정의당에 6자리, 무소속에 11자리씩 나누어 제20대 국회를 만들었다. 이런 결과를 보고 가장 놀란 집단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겠고, 가장 놀란 사람은 대통령임에 틀림없을 듯하다. 섬겨야 마땅한 국민의 마음에는 눈과 귀를 막은 듯이 하더니 선거철이 다가오니까 국회를 손아귀에 넣어서 다음 대통령도 차지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안간힘을 다하는 노릇이 나 같은 사람 눈에도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저들의 욕망을 모질게 꺾고, 저들과 다른 생각으로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에게 국회를 이끌어갈 힘을 맡겼다. 이들이 앞으로 국민의 마음에 얼마나 눈을 열고 귀를 기우릴 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우선 대통령은 앞으로 남은 스무 달 쯤의 임기 동안 어떻게 새로운 국회와 손잡고 국민이 맡겨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떠날지 자못 궁금하다. 나는 정치를 모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스무 달 남짓 남은 대통령의 앞날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제넘은 생각을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에서 27년간 독립운동을 해왔습니다. 독립운동의 가장 큰 의미는 대한민족이 불요불굴의 정신과 일본 제국주의에 결코 투항하지 않겠다는 정신을 보여준 것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해외 중국에서 하루라도 존재할 수 있었고 분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본이 시종 한국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요. 위는 대만국립정치대학 후춘혜 교수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의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일제에 강제로 나라를 강탈당하고 앉아서 한숨만 쉬고 있지 않았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나라안팎에서 불굴의 투지로 일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했으며 1919년 4월 13일(원래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한 정확한 날은 11일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구성하여 광복의 그날 까지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무겁도다 국민의 혼이여/ 굳세도다 국민의 혼이여! 국민의 혼이 살아있으면 된다. 나라가 외세에 눌리면 산하는 유린될 수 있으나 그 국민의 혼은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국민의 혼이 어찌 무겁지 않으며 어찌 굳세지 않으랴. 자극을 받아 격동함이 심할수록 더욱 국민의 혼은 크나큰 힘으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