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제자리에서 밖을 보니 벚꽃 꽃잎이 바람이 흩날리는 게 보입니다. 참으로 멋있네요. ^^* 우리말에 '보라'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잘게 부스러지거나 한꺼번에 많이 가루처럼 흩어지는 눈이나 물 따위"를 뜻합니다. 그래서 '눈보라'는 "바람에 불리어 휘몰아쳐 날리는 눈을 뜻하고", '물보라'는 "물결이 바위 따위에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 물방울"을 뜻합니다. '꽃보라'라는 멋진 말도 있습니다. "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많은 꽃잎."을 이르는 말입니다. 바람에 꽃보라라 날리는 것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바람이 불자 마치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꽃보라가 참으로 멋있습니다. 그 꽃보라를 맞으면 “꽃멀미”가 날지도 모릅니다. 꽃멀미는 멀미나듯 꽃보라를 맞아 어지러운 것을 뜻합니다.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새로운 월요일 아침입니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탄핵...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는 작년 말부터 '탄핵'과 '인용'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탄핵은 뭔가 뜻을 알 것 같은데, 인용은 그 뜻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봐도 인용(認容)은 "인정하여 용납하다"는 뜻밖에 없습니다. 제가 아는 법률용어 '인용'은 법원이 소송을 건 쪽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그쪽 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므로 '인용'해서 국회의 손을 들어준 것이죠. 우리나라 법률 용어들은 독일어와 영어로 된 것들을 일본 사람들이 번역하면서 만든 한자가 많습니다.마땅히 한자어도 우리말 일부입니다. 그러나 지배자들의 담을 더 높이고자 보통사람들이 쉽게 알 수 없는 법률 용어들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만의 잔치를 위한 장벽 쌓기를 할 때는 지났습니다.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합니다. 얼마 전에 해남군청 직원 조회에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이 문서를 만들 때는, 지금 이 시간 명금리에 계시는 제 팔순 노모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밤사이 뜬금없는 눈이 내렸습니다. 3월에 보는 눈이라 느낌이 새롭네요. ^^* 오늘 자 신문에 보니 '혹은'이라는 낱말이 몇 개 보이네요. '혹은'은 한자 或을 씁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또는 그것이 아니라면.", "더러는"이라는 뜻입니다. 저라면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뜻인 '또는'을 쓰겠습니다. 한자를 쓰는 '오늘 혹은 내일'은 깨끗한 우리말을 쓰는 '오늘 또는 내일'이 더 어울립니다. 해남군청에 계시는 한 과장님은 '의거'라는 낱말을 무척 싫어하십니다. '의거'는 한자 依據입니다. "어떤 사실이나 원리 따위에 근거함."인데, '무슨 규정에 의거...'라고 하면 '무슨 규정에 따라...'로 바꿔주십니다. 당연히 '의거'라는 한자보다는 '따라'라는 깨끗한 우리말이 더 좋습니다. 눈이 내려서 그런지 온 세상이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말도 늘 이렇게 깨끗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어제저녁에 방송된 골든벨 프로그램에서 재밌는 우리말이 나와서 소개합니다. 바로 '홍두깨'인데요. 홍두깨에는 크게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다듬잇감을 감아서 다듬이질할 때에 쓰는, 단단한 나무로 만든 도구. 2. 소의 볼기에 붙은 살코기. 산적 따위에 쓴다. 3. 서툰 일꾼이 논밭을 갈 때 거웃 사이에 갈리지 아니하는 부분의 흙. 속담에서 “홍두깨 같은 자랑”이라고 하면 '크게 내놓고 말할 만한 자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홍두깨에 꽃이 핀다”라고 하면 '뜻밖에 좋은 일을 만남을 이르는 말'입니다. 저는 홍두깨 같은 자랑거리는 없지만 이번 주는 홍두깨에 꽃이 필 것 같습니다. 그밖에 홍두깨가 들어간 속담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는 ‘남을 해치려고 하다가 제가 도리어 더 큰 화를 입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홍두깨로 소를 몰면 하루에 천 리를 가나”는 ‘모든 일을 능력에 맞게 무리하지 아니하고 해야 한다는 말’이며 “홍두깨 세 번 맞아 담 안 뛰어넘는 소가 없다”는 ‘아무리 참을성이 많은 사람도 모진 처우에는 저항을 하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또 “홍두깨로 소를 몬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적합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즐거운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주는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서울 출장, 수요일은 삼일절, 목요일과 금요일은 해남 출장... 우리말에 '짊다'는 낱말이 있습니다. "짐을 가뜬하게 꾸려서 지게나 수레 따위에 올려 얹다."는 뜻으로 '짐을 지게에 짊어 옮기다, 달구지에 이삿짐을 짊었다.' 처럼 씁니다. 비슷한 말로 '짊어지다'가 있습니다. "짐 따위를 뭉뚱그려서 지다."는 뜻으로 '배낭을 등에 짊어지다, 볏섬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르다.' 처럼 씁니다. "빚을 지다."나 "책임이나 의무를 맡다."는 뜻도 있어 '그는 빚을 잔뜩 짊어졌다, 중책을 짊어지다.' 처럼 쓰기도 합니다. '짊다'와 '짊어지다' 뜻이 거의 비슷합니다. 또, '짊어지다'는 '짊어 지다'로 써도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저는 요즘 시쳇말로 전문가라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제가 맡은 일이 정부 조직개편과 관련이 많아 그런 쪽 전문가들을 만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들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라고 하시고, 이러저러한 경험도 많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서 무슨 무슨 일을 잘 할 수 있다고도 하시고... 우리말에 '어섯'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사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아니하는 정도.'라는 뜻으로 '방문 틈으로 마당에서 벌어지는 굿의 어섯만 보았다.'처럼 씁니다. 요즘처럼 복잡한 사회에서는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모든 분야에서 다 잘 알지는 못할 겁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전체를 다 아는 체하거나, 작은 힘으로 책임못질 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말 한마디가 엉뚱한 데서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저는 아침을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먹습니다.밥상머리에서 친구 이야기도 들어주고, 거실에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 뉴스를 들으며 이야기도 나눕니다. 오늘 아침 7:52, SBS 방송을 들으며 아들이 몇 가지 묻더군요. "아빠, 비면식관계가 무슨 관계에요? 거주불명은요?"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 '이슈 다이빙'이라는 꼭지에서 제주도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낱말의 뜻을 알려주면, 아들이 저를 빙긋이 쳐다봅니다. 왜 이렇게 어려운 낱말을 쓰냐는 거죠. 그러면 저는 조용히 눈을 내리깝니다. 어른으로서 볼낮이 없는 거죠. 초등학교 6학년인 제 아들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아들이 공부를 너무 안 해서 문제인지, 어른들이 너무 어려운 말만 써서 문제인지는 모르나, 문제는 문제입니다.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오늘 아침 신문에 '에듀푸어'라는 낱말이 보입니다.'부모 부자면 공부 2시간 더해…가랑이 찢어지는 `에듀푸어`'라는 제목에 '학원 학습 못 받는 흙수저 명문대 진학 갈수록 힘들어' '빚내 자녀 키우는 에듀푸어…가구당 月평균 65만원 적자'라는 부제목도 붙어 있습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84963 '에듀푸어'는 교육을 뜻하는 에듀케이션(education)과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푸어(poor)를 합친 말로 도를 넘어선 교육비 지출 때문에 생활이 힘들어진 사람들을 이릅니다. 저는 이렇게 억지로 영어를 섞어서 낱말을 만드는 것을 반대합니다. 좋은 우리말을 찾아 쓰려고 애써야지, 억지로 비튼 이상한 영어를 써서 새로운 낱말을 만드는 것은 문제입니다. 위 기사에 제가 제목을 단다면, '갈수록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어'나 '지나친 자녀교육에 가랑이 찢어지는 부모' 정도로 뽑겠습니다. 이것도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자극적입니다.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오늘 자 어떤 신문에 보니'새만 보면 덜덜… 번지는 조류포비아'라는 제목을 단 기사가 있네요. http://news.donga.com/3/all/20170202/82694409/1 '조류포비아'... 마땅히 사전에 없는 낱말입니다. '포비아'는 영어 phobia로 병적 공포나 공포증을 뜻합니다. 요즘 조류독감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서 새만 보면 벌벌 떨게 된다는 것을 두고 그런 제목을 뽑았나 봅니다. 기사 제목이 '새만 보면 덜덜… 번지는 조류포비아'인데, 뒤에 오는 '번지는 조류포비아'를 빼도 멋진 제목이 됩니다. 굳이 이상한 '조류포비아'를 쓰지 않아도 되는 거죠. 언론에서 이상한 말을 만들면 안 됩니다. 좋은 우리말을 더 자주 쓰도록 앞장서야 할 언론에서 이상한 말을 만들어서 우리말을 괴롭히고 비틀면 안 됩니다.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어제는 새벽부터 눈이 내렸습니다. 예고된 눈이긴 하지만,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답게 내려서 그런지 출근할 때 좀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뉴스를 보니 ‘제설’, ‘이면도로’ 따위 낱말이 자주 나왔습니다. '제설'은 '눈 치우기'라고 하면 좋을 것이고, 사전에도 없는 '이면도로'는 뒤안길, 에움길, 뒷길 따위로 써야만 합니다. 저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제 셋째아이가 쓰는 말이 가장 듣기 좋고 편한 말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좋은 말이, 학교에 다니면서 이상한 말을 배우고, 한자말을 쓰면서 점점 어려워집니다. 중학생 딸아이만 되어도 벌써 '눈 치우기'보다는 '제설'이 더 익숙하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굳이 한자말이나 영어 같은 어려운 말을 쓰는 것 보다는 말하기 쉽고, 알아듣기 좋은 우리말을 자주 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