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어린 단종이 나라를 다스리던 1453년, 궁궐 안에는 ‘중비’라는 궁녀가 살았다. 중비는 별감인 ‘부귀’를 좋아했다. 하지만, 궁녀는 임금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 큰 벌을 받았다. 중비는 몰래 한글로 편지를 써서 부귀에게 자기 마음을 전했다. 부귀도 한글로 답장을 써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했다. 두 사람은 서로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싹틔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궁궐 안에 소문이 퍼지고 들통이 나고 말았다. 중비와 부귀는 곤장을 맞고 궁궐 밖으로 쫓겨나 평생 노비로 살았다. 비록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한글 연애편지 사건으로 당시 한글이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었으며 일상생활에서 한글을 친숙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The Unknown Court Lady’s Hangeul Letter: The Seed of Hangeul’s Spread [Women and Events That Shined a Light on Hangul] Par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김슬옹 문학박사ㆍ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정의 공주는 세종과 소헌 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이다. 어릴 적부터 지혜롭고 총명해서 사랑을 듬뿍 받았다. 세종은 1443년 《훈민정음》창제 전까지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고 홀로 새 문자를 만들어야 했다. 당시 사대부 양반들에게 중국 한자가 아닌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쓰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연구할 수는 없었다. 비밀리에 소리와 문자 연구를 하면서 늘 가까이했던 자식들과 신하들의 간접 도움을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정의 공주는 시집을 간 뒤에도 궁궐 밖에 살면서 소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버지 세종을 닮아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었고 실록에 사관이 기록에 남길 만큼 수학과 천문에 밝아, 세종이 문자를 연구하다 막힐 때면 함께 토론하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 Princess Jeongui Helps Her Father,
[우리문화신문=김슬옹 문학박사ㆍ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소헌 왕후는 열네 살이 되던 1408년에 당시 충녕대군이었던 세종과 혼례를 올렸다. 금실이 좋아 8남 2녀를 낳았고 많은 후궁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돌봐야 했지만, 세종이 한글 창제를 비롯한 나라 운영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내조를 잘했다. 그러나 친정아버지가 누명을 써서 사약을 받아 죽고 광평대군과 평원대군까지 먼저 떠나보낸 뒤 자리에 몸져눕더니 《훈민정음》 해례본 반포 6달 전인 1446년 3월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종은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에게 아내의 명복을 빌고 어려운 불경을 쉬운 한글로 옮겨 부처의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엮은 한글 불경책 《석보상절》을 펴내게 한 뒤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을 손수 펴냈다. 소헌 왕후의 안타까운 죽음은 성리학을 중시하는 조선시대에 불경책을 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사대부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구실을 하였다. --------------------------------------------------------------------------------------------- Publishing Seokbosangjeol and W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