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식사 때에 보니 인원이 많이 줄었다. 주말에는 방문객을 받지 않고 이미 들어와 있는 방문객도 특별히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모두 낮 12시까지는 떠나야 한다. 아침 식사 뒤에 나는 오거스틴에게 물어서 공동체 식구 중에서 학부형을 소개받았다. 내가 만난 사람은 이솔로몬이라는 사람으로서 매우 착해 보였으며 얼굴에서 평화로움이 배어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중학교 3학년생과 초등학생, 이렇게 두 아들이 있었다. 중학생 아들은 지금 황지중학교를 다니는데, 고등학교는 간디고등학교로 보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큰아들은 예수원 입구의 큰길 가에 있는 하사미 분교를 졸업하였고 작은아들은 아직 다니고 있다고 한다. 대천덕 신부님의 두 딸도 하사미 분교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두 딸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한국말과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고 전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 진학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하니, 그분은 대뜸 “기도해 보시오. 어떤 필요가 생기거든 1차적으로 기도해 보시오.”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해 준다. 기도해 보면 길이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그 말을 듣고도 마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저번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훈민정음은 반포 58년 뒤 연산군 때 (1504년) 지하로 쫓겨 들어가 20 여 년을 지내고서 중종조의 어문학자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한자 학습의 보조역할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훈몽자회는 어린이들의 한자 학습을 위해 만든 교재였는데 한자의 음과 훈을 언문으로 써 주었던 것이지요. 최세진은 언문을 모르는 사람은 배워서 쓰라고 범례를 만들어 훈민정음을 간략하게 소개했는데 여기서 기역, 니은 등 자모의 이름이 처음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디에서도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없었으므로 이 범례야말로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한 동안 언문 공부의 유일한 교재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언문은 편지나 일기를 쓴다든지 혹은 언문 소설을 읽는다든지 하여 민간사회로 깊숙이 번져나갔으며 궁궐에서도 대비, 중전을 비롯한 내명부에서는 흔히 언문으로 교지를 내렸습니다. 이렇게 언문이 널리 전파됨에 따라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 선조는 언문교지를 써서 길거리에 내붙였습니다. 이후에도 숙종의 계비였으며, 경종의 대비였던 인원왕후는 1726년 언문교지를 내려 영조임금을 즉위시켰고 아버지 김주신과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일상에서 가장 빈번한 질환이 감기(感氣)와 체기(滯氣)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스스로 치유되기도 하며 한약이나 양약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치료되지만 소홀하게 대처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시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감기 증상은 되도록 초기에 해결해야 하는데 가장 바람직한 것은 스스로 3일 이내에 정리되는 것이다. 그다음은 한약이나 양약의 도움을 받아서 3일 이내에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치료 능력이 부족할 때 자연치유력으로 치료하려고 버틸 때 3일이 지나면 몸에 부담과 생체리듬이 흐트러져서 자연치유가 되었다 하더라도 약으로 치료된 것보다 후유증이 커진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노출된 지 1~3일 뒤에 증상이 나타난다. 증상은 감기 바이러스가 상부 호흡기계에 어느 정도 침투했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인데 콧물, 코막힘, 목 부위의 통증, 기침과 근육통이 흔하게 나타난다. 성인에게서 열이 나는 경우는 드물거나 미열에 그치지만, 어린이에게서는 발열 증상이 흔하게 나타난다. 결막염이 동반되어 눈물이 날 수도 있다. 환자의 나이, 기존에 앓고 있었던 질환, 면역상태 등에 따라 증상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감기의 경과 중에 다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누리(세상)를 세로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백제사람, 고구려사람, 신라사람. 또 신라 안에서는 공주님을 따르는 이, 이 미실을 따르는 이들. 하지만 누리를 가로로 나누면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두 손을 가로지어 양쪽을 벌리면서) 부리는 이와 부림 받는 이. 누리를 가로로 나누면 공주와 저는 같은 편입니다. 우린 부리는 이입니다. 미실에게서 신권을 뺏으셨으면 공주님께서 가지세요.(드라마 <선덕여왕> 30회, 2009) 마소나 다른 사람을 시켜 일하게 할 때 ‘부리다’란 말을 썼다. 누리를 가로로 나누면 부리는(지배하는) 이와 부림 받는(지배당하는) 이, 두 가지밖에 없다는 말이 와닿는다. 씨알(국민)에게 천기운행의 지식을 돌려주려고 첨성대를 세우자고 월천 대사가 제안한다.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미실과 변화를 이룩하려는 덕만 사이에 나눈 마주이야기(대화)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민주주의’를 묻게 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두산백과사전》, 고등학교 《정치와 법》 교과서에서는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1446년 9월 10일 훈민정음을 반포하자마자 세종대왕은 이를 공식적으로 사용합니다. 10월 10일에는 신하들의 죄목을 직접 언문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냈으며 다른 궁내 공문을 언문으로 작성하여 훈민정음의 사용을 널리 알렸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과거시험에 언문을 포함하도록 하여 훈민정음을 모르면 출세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언문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언문은 훈민정음을 비하하여 쓰던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쓰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종은 첫째 아들 문종과 둘째 수양대군, 그리고 정의공주를 훈민정음 창제 과제에 깊이 참여시켜 훈민정음이 자연스럽게 후대로 넘어가도록 포석을 깔아 두었습니다. 창제 후인 1444년에는 신숙주 등에게 운회(韻會)를 언문으로 번역하게 했는데 두 왕자를 감독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1446년에 세종비 소헌왕후가 죽자 수양에게 《석보상절》을 짓도록 하고 1449년에는 이 책을 바탕으로 손수 500여 수의 노래를 지어 《월인천강지곡》이란 책을 냈습니다. 《석보상절》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뽑아 언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단순 소박한 삶. 이러한 삶이 내가 환경을 공부하면서 결론 내린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70억 인류가 다 같이 행복하기 위해서 따라야 할 삶의 모습이다. 종교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한경직 목사님과 법정 스님이 보여 주었듯이 단순 소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의 간디 역시 단순 소박한 삶을 보여 주었다. 근래에 한비야라는 야무진 한국 여성이 세계의 두메를 여행하면서 쓴 4권의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한비야가 여러 나라를 돌아본 뒤에 내린 결론도 ‘단순한 생활이 행복하다’라는 것이어서 내심으로 흐뭇한 적이 있다. 정오가 되어 종이 울려서 삼종(三鐘)시간을 알렸다. 삼종이란 천주교 용어인데, 하루 세 번 종을 치면 종소리를 듣고서 교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기도문을 외우며 기도를 한다. 그런데 예수원에서는 기도문을 외는 대신 침묵으로 삼종 기도를 한다. 이것은 매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의 신앙을 철저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아마도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자리를 깔고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제도 때문일 것이다. 이슬람의 이러한 전통은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코와 목을 포함한 상부 호흡기계의 감염 증상으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흔한 급성 질환 가운데 하나다. 재채기, 코막힘, 콧물, 인후통, 기침, 미열, 두통 그리고 근육통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개는 특별한 치료 없이도 저절로 치유된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항상 우리 주위에 있는데 인체의 면역기능 덕분에 쉽게 발현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방어력이 취약한 부위에서 감염증상이 나타난다. 보통 호흡기를 통한 콧물 기침감기, 피부를 통한 오한 발열의 몸살감기, 요로를 통한 감염으로 오한, 오줌 눌 때 통증이 드러나는 감기 등으로 나타난다. 1. 우리 몸은 완전무결한 방어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존재를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안에서는 스스로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하여 발전하고, 바깥으로는 끊임없이 소통하여 방어하고 흡수, 방출하고 있다. 이렇게 외부와 교류할 때 자신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인간의 활동이 호흡ㆍ소화ㆍ면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활동은 무수한 세월 속에 자연과 적응을 마쳤으며 현재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XX 앞에 ‘국민’을 꼭 써야 할까? 한국방송(KBS)은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을 들려주고 국민과 같이 가는 국민의 은행인 국민은행은 주택은행과 통합하고 다시 *kb[국민]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요즘은 가수, 배우, 사회(MC), 여동생, 애니메이션 등 ‘국민 XX’라는 표현을 꽤 많이 쓴다. 1996년 한 연예주간지에서 신승훈에게 국민가수라 불렀다. 그 뒤로 높은 인지도나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나 큰 인기를 끄는 인물의 직업이나 호칭 앞에 ‘국민’을 붙인다. 흥행보다 전 세대를 아우름이 잣대이다. 박찬호가 나라 밖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국민투수'가 되더니 이승엽이 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국제 경기에서 크게 활약하자 '국민타자'가 되었는데 이처럼 ‘국민 XX’라 부르는 것이 가수나 배우가 아닌 다른 쪽에도 널리 퍼졌다. ‘대한민국헌법’에 쓰인 ‘국민’은 어떤 뜻인가? ‘국민연금’, ‘국민대학’, ‘국민일보’, ‘국민의 정부’ 등에서도 보듯이 ‘국민’을 널리 쓰고 있다. 구한말 당시에도 ‘국민교육회’에서처럼 쓰였고 광복 뒤 정치사에서 대한민국 숱한 정당 이름에서도 국민을 달았고 현재도 여당인 국민의힘이 그러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횃불은 사위고 광대놀이 끝났건만 신명은 신명대로 취기는 취기대로 흥타령 사랑타령에 삼삼오오 몰려간다 봄밤은 깊어가고 달은 이지러진다 광대놀이 끝나고 나니 개구리만 청승인데 멀리서 별똥별 하나 벽방산을 넘어간다 < 해설 > 이제 하직 막죽*이다. 언제나 끝에 이르면 미진한 것에 눈길이 간다. 부족한 부분도 많고, 다 못한 얘기도 많다. 하지만 재능이 그 정도이니 어쩔 수 없다. 광대놀이 끝나고 파장이 되면 그동안 놀았던 신명은 찾을 길 없고, 집에 갈 걱정, 두고 온 식구들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달아올랐던 취기도 차츰 가라앉고, 달도 저만치 이지러진다. 연재를 마치면서 나도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선다. 구부려 앉은 무릎이 아프다. 고성오광대를 주제로 한 시집 《말뚝이 가라사대》, 그 다섯 과장을 허위허위 달려오다 보니 숨은 턱에 차고 발목은 저려온다. 단시조와 연시조, 사설시조를 혼용하여 오십 네 수로 엮은 시조 작품에 해설이랍시고 붙이다 보니 더러 허튼소리도 많았다. 이런 노래일수록 사설시조가 제격이란 생각으로 넋두리나 흥타령 등 중요한 부분은 사설시조로 구성했다. 사설시조란 앞말이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을 주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을 도와 세종르네상스를 만든 인물들을 살피고 있다. 몇몇 신료들을 요약ㆍ정리해 본다. 신숙주(申叔舟 태종 17, 1417~ 성종 6년,1475) 조선 전기 문신이다. 저서(작품)에 《보한재집》, 경력으로는 집현전응교, 우부승지, 도승지, 병조판서, 대사성, 좌의정 등을 지냈다. 아버지는 공조참판 신장(申檣)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세종 20년 (1438) : 사마양시에 합격하여 동시에 생원ㆍ진사가 되었다. 이듬해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농시직장(典農寺直長)이 되고, 세종23년 (1441) : 집현전부수찬을 지냈다. 세종 24년(1442) : 나라에서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게 되자 서장관으로 뽑혔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참가하여 공적이 많았다. 중국음을 훈민정음인 한글로 표기하기 위하여 왕명으로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유배 중이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의 도움을 얻으러 요동을 열세 차례나 내왕하였는데, 언어학자인 황찬은 신숙주의 뛰어난 이해력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세종 29년(1447) :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응교가 되고, 문종 1년(1451) : 명나라 사신 예겸(倪謙) 등이 당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