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지상에 세운 관세음보살 궁전으로 알려진 포탈라궁을 고산증 때문에 힘겹게 올라가 보았고,힘겹게 내려왔다. 해발 4,000m에 이르는 높은 고산지에 지어진 거대한 궁전은 1,400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었고, 그저 사람의 원력만으로 지어진 건물들이라기 보다는 영원을 향한 신심이 아니고는 도저히이룰 수 없는 거대 구조물 같았다. 티벳인들은 서기 600년 초 처음으로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받아들인 후 지금까지 다른 종교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았기에 오직 부처와 보살에만 의지하여 살아왔다. 티벳인들은 자신들의 땅이야 말로 부처님과 보살이 살피는 곳으로 여겼고, 그런 믿음은 불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이 늘 있다는 '포탈락가산'이 바로 이곳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믿음으로 '관세음보살의 궁전'을 세워 그 이름도 '포탈라궁'이라 하였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은 지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위대한 보살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누구든 관세음보살은 진심으로 부르는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언제나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관세음보살은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한국의 석굴암 본존불 뒤에는 11면(정면 큰 얼굴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1,400년에 가까운 세월을 간직학 포탈라궁의 모습은 정말 장대하였다. 궁궐 아래 성곽문을 들어와 부속건물들을 지나고, 가파른 경사진 벽을 따라 수많은 계단길을 쉬엄쉬엄 올랐는데도 숨이 가쁘다. 고산병 때문에 쉬엄쉬엄 올라가라는 안내를 받고, 천천히 오르다 보니 30여분 거리 산중턱에 쉼터가 있었다. 그 쉼터에는 그늘막과 함께 따스한 물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누구나 쉬어갈 것을 권한다. 쉼터에서 10여분 숨을 몰아쉬고 또 다시 올라서 드디어 궁궐의 입구에 도달하였다. 포탈라궁은 티벳족의 왕이 거처하는 곳이기에 궁궐이지만, 또한 수많은 불상과 보살상들이 빼곡히 들어있는 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궁의 주 출입구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사천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비로서 여기서 부터 궁궐의 내부가 되는 것이다. 사천왕의 모습은 한국의 사천왕과 비슷하였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포탈라궁은 티벳의 상징과도 같은 궁전이다. 포탈라궁은 7세기 초티벳을 통일했던 정복왕 송첸캄포가 당 태종 이세민의 조카딸인 문성공주를 제2왕비로 받아들인 뒤 그녀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관세음보살을 자신의 본존불로 모셨다. 불경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상상의 산인 '포탈락가산'(=보타락가산)에 늘 거처한다고 하며, 그 보타락가산이바로 이곳이라는 의미로 궁전의 이름도 포탈라궁이라고 했다. 포탈라궁은 그 규모가 무척 거대한 건물군으로 궁전은 전체가 하나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건축되면서많은 건물들이 붙여진 것이다. 건물의 재료는 돌과 나무와 흙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내부에는 1,0000칸이 넘는 거대 구조라고 한다. 궁의 내부에는 수 없이 많은 방마다 부처와 보살들로 가득한데,한때 불이 나 일부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1645년 '락상가조왕'이 궁전을 재건하였고 하며, 이를 백궁이라부른다. 1653년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믿는 5세달라이라마가 입주한 이래 모든 달라이라마들은 이곳에 거주하였다. 그리고 현재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라마도 바로 이곳에 거주하다가 중국의 침략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포탈라궁을 떠났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 그늘 아래 부처를 우러르고,종교적 믿음으로 환생을 기원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 티벳.산 아래 사람들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산병으로 여행하기도 힘들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하염없이 삼보일배를 행하며 살아가는 티벳. 우리 신문 최우성 사진부장은 지난9월30일부터10월7일까지 티벳 답사를 다녀왔습니다.쉽게 접할 수 없는 티벳의 불교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줄 귀한 사진들을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 그늘 아래 부처를 우러르고,종교적 믿음으로 환생을 기원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 티벳.산 아래 사람들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산병으로 여행하기도 힘들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하염없이 삼보일배를 행하며 살아가는 티벳. 우리 신문 최우성 사진부장은 지난9월30일부터10월7일까지 티벳 답사를 다녀왔습니다.쉽게 접할 수 없는 티벳의 불교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줄 귀한 사진들을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 그늘 아래 부처를 우러르고, 종교적 믿음으로 환생을 기원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 티벳. 산 아래 사람들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산병으로 여행하기도 힘들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하염없이 삼보일배를 행하며 살아가는 티벳. 우리 신문 최우성 사진부장은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티벳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티벳의 불교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줄 귀한 사진들을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말) 티벳의 서울인 라싸에는 '달라이라마'가 있었던 포탈라궁과 또 하나의 큰 절인 조캉사원【大昭寺(대소사) 】이 있다. 조캉사원은 티벳을 최초로 통일했던 '송첸캄포'왕이 7세기에 지은 사찰로, 그는 당나라의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며, 그녀가 모셔온 당나라의 불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조캉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문성공주는 본래 당나라 황실가의 여인이지 공주는 아니었다. 그런데 티벳을 통일한 송첸캄포가화친하는 조건으로 당시 당나라 황제인당태종 이세민에게황제의 딸인 공주를 자신의 왕비가 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자 당태종 이세민은 처음에는 티벳왕 송첸캄포를오
[우리문화신문= 티벳 라싸 최우성 기자] 감단사(간댄사원, 甘丹寺)는 중국 티벳 자치구의 라싸시(市)로부터 4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겔룩파(Gelukpa) 3대 사원 중 한 곳이다. 4일 찾은 감단사는 해발 4200미터 고산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라싸서부터 시작된 고산병이 완전히 가시기 전이라 내심 걱정스러워 전날 김치와 고추장을 단단히 먹어둔 덕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한결 몸이 가벼웠다.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감단사 가는 산길은 포장도로가 생겨 편하게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지만 도로가 생기기 이전,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일 듯싶었다. 한국의 어지간한 절은 거의 다 가봤지만 티벳의 절들은 절벽과도 같은 고산지대에 지어놓아서 그런지 한국의 절과는 그 외형부터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공해로부터 아직 안전한 고산의 청정한 공기와 푸른 하늘,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태양빛에 반사된 짙은 밤색 지붕과 흰색 벽으로 칠해진 사원 모습은 한폭의 그림 같기만 하다. 감단사는 겔룩파의 창시자 총카파(宗喀巴) 스님이 명나라 초기 1409년에 건립한 겔룩파의 첫 사원이다. 겔룩파 3대 사원이라하면 곧 감단사(간덴사원, 甘丹寺), 색랍사(세라사원,
[우리문화신문= 티벳 라싸 최우성 기자] 티벳의 상징으로 꼽히는 라싸 포탈라궁의 웅장한 건축물에 앞에 서니 압도되는 느낌이다. 2일 10시(현지시각) 무렵 도착한 포탈라궁은 불보살을 모신 방이 3천개인 것은 물론전체 높이 117m, 동서 길이 360m, 총면적 10만㎡에 달하며, 거대한 법궁(法宮)으로 해발 고도 3,600미터에 자리하고 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고산증을 걱정해 물을 마시면서 쉬엄쉬엄 포탈라궁을 올랐다. 푸른 하늘 아래 웅장한 건축물이 하나의 성을 이룬 포탈라궁은 7세기 초 티벳 왕조 33대 왕 인 송첸캄포가 티벳을 통일하고, 637년 라싸의 홍산(紅山)이라는 언덕위에 포탈라궁을 짓게 된다. '포탈라'라는 이름은 ‘관음보살이 산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의 ‘포탈라카(普陀珞珈)’에 유래한다. 1642년, 제5대 달라이라마(1617-1682)를 왕으로 하는 티벳 왕조 간덴 왕국이 성립되는데 달라이라마는 오랫동안 훼손된 포탈라 궁전을 개축하기 시작한다. 이에 1648년에 백궁이 완성되어 티벳정부를 이곳 백궁으로 이전하게 된다. 공사는 그의 사후 1694년까지 계속되었고 1690~94년에 홍궁이 증축된다. 그러나 1959년 티벳 포탈라궁은 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오모리현과 아키다현에 걸쳐있는 아름다운 호수 도와다(十和田湖) 숲속에 있는 아주 작은 교회 이름은 성구주예배당(聖救主禮拜堂)이다. 어쩜 이 교회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예배당이라기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예배당일지도 모른다. 예배용 의자 서너 개가 전부인 이 교회는 1950년 미국인 선교사 봐이얼 주교에 의해 세워졌다. 봐이얼 주교는 1982년까지 여름과 가을에 도와다호수에 있는 자신의 별장(현재 봐이얼산장)에 와서 묵으면서 이 작은 교회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를 올리던 곳이다. 현재 이 작은 교회의 행정구역은 아키다현이지만 이 교회를 관리하는 곳은 일본성공회 소속 아오모리현의 성알덴교회(青森聖アンデレ教会)이다. 드넓은 도와다호수 한켠에 있는 프린스호텔에서 호숫가를 따라 한 10여분 걸으면 이 작고 소박한 교회가 나온다. 아주 작은 교회지만 처마에는 작은 종도 달려있고 내부에는 십자가 주변에 여러 성인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걸려있다. 말 그대로 귀엽고 깜찍한 호숫가의 작은 예배당이다. 호숫가를 산책하다 만난 이 작은 예배당에서 요우코 씨와 나는 작은 종을 쳐보았다. 뎅그렁 뎅그렁...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고요한 숲속을 깨운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그 마을은 허허벌판에 논 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마을이다. 그 유명한 아오모리의 사과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평야지대에 보이는 것은 끝없는 논 뿐이다. 이러한 마을에 관광버스가 연신 드나든다. 대체 뭘 보러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는 것일까? 기자도 지난 8월 8일 화요일, 오후 5시 무렵 관광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았다. 이곳은 이름하여 벼이삭을 이용하여 논에 예술작품을 만드는 논예술마을이다. 일본어로는 담보아트(田んぼアート)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담보(논),아트(예술) 이지만 우리말로 옮기기기 쉽지 않다. ‘논예술마을’ 이라고 해두자. 논예술마을은 일본 아오모리현(青森県) 중부에 있는 쓰가루평야(津軽平野)의 이나카다테마을(田舎館村)에 있다. 곡창지대의 논농사 지역인 이 마을 사람들은 1993년에 이 마을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벼 품종을 가지고 논바닥에 예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마을사람들의 논예술 작품은 올해로 24년을 맞이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인구 7,984명, 세대수 2,727(2017 현재)의 작은마을에 연간 34만명(2015년 통계)이 찾아온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 작은 마을이 논예술마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