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보 <청자 참외모양 병>은 고려청자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병입니다. 제17대 임금인 인종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황통육년(皇統六年)'(1146)이라는 정확한 연대가 있는 시책과 함께 전해져 고려왕실의 청자에 대한 심미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려의 비색을 대표하는 병 여덟 잎의 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주둥이(구연)와 긴 목, 여성의 치마 주름처럼 생긴 높은 굽다리, 농익은 참외 형태로 만든 병의 몸통이 유려하면서도 우아합니다. 참외 모양의 몸통은 상하 수직선으로 눌러 오목하게 골을 표현하였고, 각각의 곡면에는 팽팽한 양감이 드러나 있습니다. 높직한 굽의 예리한 직선과 몸통의 곡선이 대치를 보이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 긴장감과 함께 경쾌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을 줍니다. 몸통을 중심으로 목과 굽다리의 연결부위에서 확인되는 돌대는 금속기에서 빌린 듯하며, 병목에 가로선이 세줄 오목새김(음각)되어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오직 형태와 유색으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굽바닥에는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 받침을 일곱 곳에 받쳐서 구운 흔적이 있습니다. 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요즈음 한국문화가 다양한 방면에서 세계적으로 화려하게 꽃피고 있다. K-POP으로 시작된 한류는 드라마, 영화, 패션, 화장품, 음식 등 한국인이 생활하는 모든 분야에서 환영받고 있다.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선조들이 오늘 다시 태어나서 본다면 천지개벽이라도 된 듯, 아니면 별천지에 온 듯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 현재 한국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이룩하였던 옛 문화를 하나 하나 살펴보면, 오늘의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것은 어쩌면 우리 내면에 고이 고이 쌓여 내재된 유전자적 능력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되어 새싹이 돋아나듯 시기가 잘 맞아서 이렇게 발현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보는 고려청자 주전자들은 중국의 송나라 시대와 같은 시기의 작품들이지만, 기법도 뛰어나고, 아름다움도 독특하며, 조화와 균형상으로도 시대를 초월하여 완벽한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당시에는 손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별로 대접도 받지 못하던 시대였지만, 우리 조상들은 아름다운 생활용품들을 이렇게 잘 만들었다. 그들이 잘 만든 만큼 대접을 잘 받았더라면 얼마나 훌륭한 문화예술을 꽃피웠을지 생각하면 찬사에 앞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청자 기법을 중국의 도자기에서 받아들여 이를 투각과 삼감기법등으로 발전시키고, 고려인들만의 미적감각을 표현하여 천하의 명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던 고려시대 상감청자들이다. 전시품들을 보면서 황홀함을 느꼈으며, 선조들이 이룩하였던 문화유산들이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또 고려시대와 더불어 발전하였지만, 후기에는 전성기와는 다른 변형되거나 쇠퇴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여길만한 것이 없이 고귀한 작품들을 이렇게 한데 모아 볼 수 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고쳐청자 모듬전시회였다. 청자전시회는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3층에서 현재 전시중에 있다. 아울러 조선시대 명품이었던 백자전도 함께 본다면 한국의 청자와 백자에 대하여 제대로 볼 수 있는 전시일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독자님들의 관람을 추천하며 시리즈를 마친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려청자로는 주전자, 정병, 찻잔, 항아리, 매병, 등 상당히 큰 작품 뿐 아니라, 작지만 귀하게 여기던 귀중품이나 화장품 등을 보관하던 '합' 선비들이 벼루에 먹을 갈기 위한 물물을 담았던 '연적' 등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청자는 전체적으로 비색(비취색)으로 만들고자 하였지만, 고려시대 만들었던 모든 청자가 비색인 것은 아니었다. 또 청자가 유행하던 시대에도 다양한 색깔의 자기들이 만들어졌으며, 때로는 흑색, 적색, 황색 등의 자기들도 있으며, 고려 후기에는 백자와 비슷한 색깔의 자기들도 만들어졌다. 고려시대에도 비색청자를 만들기 위하여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특별한 물감을 개발하여 자신들만의 기법으로 매우 비밀스럽게 전수하였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유교문화가 함께 경쟁과 조화를 이르는 시대였기에 차문화와 술문화가 같이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그에 맞게 사용할 그릇들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고려시대가 지난 뒤에는 차문화는 차츰 기울고 술문화만 남게되어 고려시대 발달하였던 다양한 청자 다기(茶器)도 사라지고 말았다. 고려시대에는 차를 마시면서도 운치를 느낄 수 있도록 향을 피웠다고 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이전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들던 것들을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물건을 쓰는 입장에서 보면 깨지기 쉬운 청자는 다루기도 훨씬 조심스러웠을 것이나, 만들기도 어렵고 다루기도 어려운 물건들을 굳이 청자로 만든 까닭은 귀한 곳에 쓰는 물건을 더욱 귀하게 대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청자의 시작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청자의 기법을 더욱 발전시킨 것은 고려였다. 고려청자는 중국에서 더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한국인의 뛰어난 손재주를 마음껏 보여주는 고려청자의 모습을 보면서, 요즈음 세계에 펼쳐지는 한국의 문화상품들이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문화유산 중에 그 아름다움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는 이전시대에 토기를 제작하던 기법을 발전시켜 이룩한 그릇으로,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청자는 당시 불교의 스님들에서 유행하던 차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중국의 청자가 들어오면서 이를 더욱 발전시켜 중국의 청자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청자를 만들었다. 고려청자는 강가를 중심으로 가마가 발달하였는데, 주로 경기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생산되었다. 이는 가마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풍부한 땔감이 필요하였고, 또 생산한 뒤에는 이를 배에 싣고 운반해야했기 때문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고려청자는 시대별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 중으로 고려청자의 발전사를 잘 알수있는 전시이다. 이에 전시중인 작품들을 몇 차례에 걸처 사진으로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