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복위 계획이 발각되어 처형당한 성삼문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연구 작업 도와 성삼문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크게 도왔다. 창제 시에도 도왔지만 세종 25년 청제 이후 언어학적인 구성체계를 확인하기 중국의 학자와 만나 음운 법칙을 검증하게 했다. 세종 27년(1445) : (집현전 부수찬 신숙주 등에게 요동에 가서 운서를 질문해 오게 하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행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을 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실록 27/ 1/ 7) 이런 작업은 그 활용에서도 오류가 없게 하려고 세종 28년 반포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세종 32년, 1450년 성삼문ㆍ신숙주ㆍ손수산 등에게 명하여 운서를 사신에게 묻게 하다) 직 집현전 성삼문(成三問)ㆍ응교 신숙주ㆍ봉례랑 손수산(孫壽山)에게 명하여 운서(韻書)를 사신에게 묻게 하였는데, 삼문 등이 관반(館伴)을 따라 뵈니, 정인지가 말하기를, "소방(小邦)이 멀리 나라 밖에 있어서 바른 음(音)을 바로 잡으려 해도 스승이 없어 배울 수 없고, 본국의 음(音)은 처음에 쌍기학사(雙冀學士)에게서 배웠는데, 그 역시 중국 복
- 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 2023-02-23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