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빛이 영롱한 어느 여름밤
▲ 진추하 ‘원 섬머 나잇’ 음반 표지
환상 같았던 어느 여름밤의 꿈
그 여름밤 나의 아성은 무너져 내렸어요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죽었을 거에요
나는 당신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요
내 마음은 당신을 위해 울겠죠
당신이 떠난 뒤론 태양은 다시 빛나질 않아요
매 순간 당신을 생각해요
내 심장은 당신을 위해 고동치겠죠
당신은 나의 유일한 사랑이에요
자유롭고 싶어요 나무위의 새들처럼
사랑한다 해 주세요 나 자신을 찾고 싶어요
한마디만 해 주세요
어디든 따르겠어요
내가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다시 한 번 주세요
벌써 10년도 훨씬 넘은 일인 것 같다. 먼지 냄새가 풀썩이는 가문 여름이었다. 사람들은 더위에 절여져 숨이 푹 죽어서 다녔다. 가마솥처럼 달아오른 대지는 밤에도 식을 줄을 몰랐다. 너도 나도 바다로 계곡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 부부도 탈 도시를 위해 그 대열에 합류했다.
마음이 들뜬 조수석의 아내에게선 콧노래가 연신 흘러나왔다. 가진 거라곤 음반밖에 없는 가난뱅이에게 시집와서 맞벌이 하랴 애 키우랴 정신없이 살아온 그녀였기에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가리산 계곡 가에 텐트를 치고 송진 내음으로 몸을 씻었다. 산속의 밤은 유난히 빨라 저녁을 먹고 나니 하늘엔 이미 검정벨벳이 쳐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수정들이 올라가 옹골차게 박혀 빛나고 있었다. 바람결 하나 별빛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우리는 모기장마저 걷어 올리고 턱을 괸 채 나란히 엎드렸다.
아내는 라디오를 켰고 때마침 흘러나온 ‘One summer night’은 어둠의 그윽함을 타고 우리를 먼 과거 속으로 이끌었다. 구구절절이 사랑의 애원이 담긴 ‘One summer night’이 끝나자 아내가 속삭였다.
“당신 말이 맞아요. 우린 별빛도 가물가물한 그곳에서도 부부였어요. 그래서 우린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꿈을 꾸고 눈빛만으로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예요.”
한때 ‘아시아의 연인’으로 불리었던 진추하는 1957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75년에 ‘홍콩 창작유행가곡 콘테스트’에 자작곡 ‘Dark side of your mind’로 참가하여 우승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녀의 나이 20살 앞뒤의 일이었다. 진추하의 천재적 기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듬해인 76년에는 영화계까지 활동영역을 넓힌다. 한·홍콩 합작영화 ‘사랑의 스잔나’에 당당히 주연으로 캐스팅 된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여주인공 스잔나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팬들의 손수건을 흠뻑 적셨다. ‘One summer night’은 ‘사랑의 스잔나’에 삽입되어 영화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남우주연으로 함께 출연했던 종진도(아비)와 듀엣으로 불렀다. ‘사랑의 스잔나’ 삽입곡은 ‘One summer night’외에도 ‘Graduation tears’, ‘Tommy tom’ 역시 우리들 뇌리에 깊이 각인된 노래들이다.
진추하는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81년 결혼과 함께 은퇴하였으나 팬들의 식지 않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25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에 해맑은 모습을 지닌 채 음악계로 되돌아왔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