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국민가요 이정숙의 “낙화유수”

  • 등록 2015.08.29 10: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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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53] 훗날 신카나리아 ‘강남 달’로 불러 인기

[한국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요행히 사고를 당하지 않고 몹쓸 병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나도 이러겠지. 전신마취 할 때처럼,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들다나다 하겠지. 사랑하는 나의 딸은 동공 풀린 애비 눈을 바라보다가 혹시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떨리는 입술에 귀를 갖다 대겠지. 애비가 눈을 감을 때마다 맥박을 짚어 보다 지쳐 잠이 들겠지. 나의 친구들은 나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위해 다녀갈까? 어쩌면 나와 비슷한 시간에 내 친구 하나가 이 푸른 별을 떠날지도 모르지.” 

1부 방송을 마치고 광고가 나가는 틈에 잠시 전화기를 켰을 때였다. 

형님. 이모할머니께서 위독하답니다. 당숙께서 꼭 좀 연락 달라고 하십니다.’ 사촌이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우리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땐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뵈었는데, 이젠 기억에서 지워지다시피 한 이모할머니 소식이었다. 몇 십 년 만에 들려오는 소식이 임종소식이란 말인가? 혈연의식이 희미해지고 전통이 무너져 내린다며 개탄을 하던 내가, 나도 모르게 시류에 휩쓸려 버린 것을 자책하며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젠 길에서 그냥 지나치면 못 알아보겠구나.” 

당숙과 겸연쩍은 인사를 나누고 침대로 눈길을 돌리니, 이 세상 사람이라 하기엔 너무도 민망한 백발노파의 몰골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을 못 알아보셔. 내가 조카를 찾은 건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 좋아 하시던 노래나 들려드리려고. ‘강남 달말이야.” 

이모할머니의 모습을 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숙의 이야기는 귓전에서 어른거릴 뿐 내 귓속으로 들어오지를 않았다. 저 모습이 나의 죽을 때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운 채 밖으로 나왔다. 며칠 뒤 유성기에서 녹음을 떠 가지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이모할머니가 깔끔한 용모로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오늘 자네가 강남 달을 들려 드리러 온다 하니까 저렇게 기운을 차리셨네.” 

당숙의 설명을 듣고 보니 옛 모습도 살아나고 얼굴에 혈색마저 돌고 있었다. 일찍이 홀몸이 된 뒤 세상살이가 힘들거나 남편 생각이 간절해질 때마다 강남 달을 눈물 훔치며 따라 불렀다는 당숙의 귀 뜸이 있었다. 

   
▲ 낙화유수 유성기판 표지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울까 

멀고먼 님의 나라 차마 그리워
적막한 가람 가에 물새가 우네
오늘밤도 쓸쓸히 달은 지노니
사랑의 그늘 속에 재워나 주오 

강남에 달이지면 외로운 신세
부평의 잎사귀엔 벌레가 우네
차라리 이 몸이 잠들 리로다
님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낙화유수 가운데 

다음날, 나는 이모할머니가 고운 모습으로 아주 편안히 떠났다는 전갈을 받는다. 훗날 신카나리아가 불러서 국민가요가 된 강남 달의 원제목은 낙화유수이다. 변사인 김영환이 김서정이란 이름으로 작사, 작곡하였다.  

노래를 부른 이정숙은 동요가수로 인기가 높았으며 전설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하였다. 오빠인 영화감독 이구영의 권유로 낙화유수를 취입하여 전 조선인의 사랑을 받았으며, 동명의 영화 역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녀가 중앙고보에 다니던 1929년의 일이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ccr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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