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는 그녀 아버지의 의뢰로 혹시 정보기관의 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체 없이 서울을 벗어나기로 하였습니다.
계절은 벌써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었습니다. 야간열차는 우리의 앞날만큼이나 캄캄한 어둠속을 달려 부산역에다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남국이라고는 하지만 늦가을 새벽바람은 사정없이 우리 몸을 파고들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도피 길에 올랐기에 아침밥을 사먹고 나니 벌써 주머니가 바닥이 났습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굶으며 무작정 거리를 헤맸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피로와 허기에 지친 우리 몰골은 영락없는 노숙인이었습니다. 나는 주민등록증을 꺼내들고 상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여행 왔다가 여비가 떨어져 그러니 차 삯을 빌려주면 나중에 우편환으로 꼭 보내드리겠노라고 통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전 몇 닢도 아닌 돈을 선뜻 내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후덕하게 생긴 약사분께서 속는 셈치고 천 원짜리 지폐 열장을 금고에서 꺼내 주었습니다. 우리는 허기를 때우고 다시 새벽열차에 몸을 싣고 나의 외가로 향했습니다. 절망이 비구름처럼 몰려와 객차 안을 덮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손을 꼭 잡았습니다.
여행 중이라고 둘러대고 외가에서 며칠을 묵은 우리는 추적의 불안감에 또 다시 유랑 길에 올랐습니다.
어머니 갖다 드리라고 싸준 마늘이며 마른고추를 시장에서 팔아가지고 도피자금에 보태서 친척집 순례에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가급적 서울에서 멀리 도망가고 싶었으나 현실은 그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촌수가 가까운 친척집을 다 훑고 나서 또 다시 막막해진 우리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먼 친척을 찾아가던 중 어느 검문소에서 검문을 당하게 되었고 헌병장교가 이 핑계 저 핑계로 우리를 검문소 안에 붙들고 있는 사이 그녀의 오빠들이 닥쳤습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울부짖으며 오빠들의 우악스런 팔에 끌려가던 그 모습이. 그리고 몇 달 뒤 “내 동생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니 이제 깨끗이 잊으라.”는 그녀 오빠의 통보가 그녀와 관련된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꼭 한번 만나서 차라도 한잔 나누었으면 합니다.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생이별이 못내 한으로 남았기에….
얼마 전 나 혼자 비 오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습니다. 그녀와 처음 데이트 하던 날을 떠올리며. 그때 우리는 비 오는 날 그곳에서 데이트를 하면 헤어지게 된다는 속설을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간절해지는 노래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을 신청합니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 최헌 ‘가을비 우산 속’ 수록 음반 표지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진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 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잊어야지 언젠가는 세월 흐름 속에
나 혼자서 잊어야지 잊어봐야지
슬픔도 그리움도 나 혼자서 잊어야지
그러다가 언젠가는 잊어지겠지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