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설악산 대청봉으로부터 시작된 단풍소식이 이제는 필자가 살고 있는 동해시 인근의 두타산에서도 들려온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단풍 곱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 강원도 단풍이 으뜸임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하리라.
‘꽃은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 이더군’ 이란 시구처럼 나뭇잎도 그렇게 우리들 애를 태우며 돋더니만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가 버린다. 전천강가를 거닐다 맞은 편 산을 바라보니 아직 만산홍엽(滿山紅葉)이 이른데도 성질 급한 낙엽은 벌써 소슬바람에 표표히 산책로를 나뒹군다.
갑년(甲年)이 가까우면 가을이 더 쓸쓸하게 다가서는 것인가? 저녁노을 비끼는 강물을 바라보니 마음이 바람 든 무처럼 성글어진다.
오늘은 장현이 부른 <마른 잎>을 들으며 가을정취를 만끽해본다.
<마른 잎>은 신중현 사단 가수들이 무대에서 즐겨 부르는 단골 메뉴였다. 그 가운데서 임아영 장현 박광수가 음반에 실었는데 장현의 노래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신중현 사단이 언급된 김에 우리 가요 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음악 집단이기에 그 실체를 한번 들여다보기로 한다.
마른 잎 떨어져 길 위에 구르네
▲ 장현 ‘마른 잎’ 수록 음반 표지
바람이 불어와 갈 길을 잊었나
아무도 없는 길을
너만 외로이 가야만 하나
누구를 못 잊어 그렇게 헤매나
누구를 찾아서 한없이 헤매나
아무도 없는 길을
너만 외로이 가야만 하나
마른 잎마저 멀리 사라지면
내 마음 쓸쓸하지
바람 불어와 멀리 가버리면
내 마음 쓸쓸하지
‘한국 록 뮤직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은 미8군 쇼에서 ‘재키 신’ 또는 ‘히키 신’이란 닉네임 으로 1950년대 중후반부터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1959년에 ‘히키-신 기타 멜로듸 선곡집’이란 음반을 발표하면서 일반무대에도 선을 보였다.
그 당시 가요계는 미 8군 무대와 일반무대로 양분하여 불렀다.
신중현의 첫 앨범은 대중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그러다 62년에 에드 훠를 결성하였고 2년 뒤 <빗속의 여인>을 취입하며 비로소 본격적인 음반활동에 들어간다.
이 그룹에서 장미화와 서정길이 배출된다. 그 뒤 신중현은 ‘블루스 테즈’ ‘조커스’ ‘덩키스’ ‘퀘스쳔스’ 등의 록 그룹을 양산해 냈으며 72년에 ‘더 맨’ 이란 그룹을 탄생시켰는데 그 그룹의 보컬리스트가 바로 장현과 박광수였다.
신중현은 그 뒤에도 ‘엽전들’ ‘뮤직파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룹을 조직 했다가 해체하기를 반복했다. 한때는 3층짜리 빌딩 전체를 신중현 사단이 사용할 만큼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
장현은 장준기라는 이름으로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1970년에 ‘기다려주오’로 데뷔하였고 ‘미련’ ‘나는 너를’ ‘석양’ ‘오솔길을 따라서’ 같은 히트곡을 남기고 2008년 늦가을 마지막 잎새가 지던 날 낙엽과 함께 떠나가 버렸다.
박인수(봄비), 박광수와 함께 우리나라 소울 가수 트로이카 시대를 이끌었던 장현!
가을날 마른낙엽처럼 수분기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나라 가수 중 아직도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