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기자] 그는 게르만 계통이었을 것이다. 물론 미군장교니까 당연히 미국인이겠지만 블론드모발이라든가 벽안(碧眼)이라든가 매머드를 연상케 하는 그의 덩치를 보면 북 게르만 핏줄이 아닐까 추측된다.
세차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잦아들던 날이었다. 그동안 적막하던 기지촌이 갑자기 활기가 넘쳤다. 외박 나온 미군병사 하나가 연탄가스에 중독돼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사건으로 인해, 한 달 가까이 내려졌던 ‘타운’ 금족령이 해제된 날이었다. 클럽마다 초저녁부터 미군들의 웃음소리와 취성으로 소란스러웠다.
내가 근무하는 클럽은 주로 늙다리 장교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우리 클럽도 예외 없이 개점도 하기 전부터 미군들이 밀려들어와 음악과 술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복닥거리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을 즈음 늘 그랬듯이 산 그림자 같은 실루엣이 출입문을 꽉 채웠다. 그가 온 것이다. 게르만인 같고 매머드 같은.
그는 늘 혼자였고 나를 자기 아들이라 불렀다. 그는 독점욕도 강해서 나를 독차지 하려하였다. 자기 옆에다 두고 자기와 술을 마시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 들려 달라 하였다. 그의 계급이 높아서인지 아니면 모든 술값을 그가 책임지기 때문인지 다른 미군들도 별 거부감 없이 흥겨워하며 휩쓸려주었다.
그는 컨트리음악을 좋아하였는데 특히 Johnny Horton을 사랑했다.
그는 조니 허튼 노래를 한곡 틀 때마다 지폐를 내 주머니에 쑤셔 넣어 주었다. 그가 다녀간 다음날 뒤져보면 앞주머니 뒷주머니 상의 주머니며 양말 속 심지어 팬티 속에서까지 지폐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늘 “All for the love of a girl”로 그날의 흥청거림을 마무리 하였고 그때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떤 때는 조그만 구슬 같은 게 조명을 받아 눈가에서 반짝이는 게 보일 때도 있었다.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
▲ 조니 허튼의 음반 표지 |
오늘은 무척이나 서글프고
우울하네요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아요
이게 다 당신 때문이지요
그동안 내 인생을 달콤했어요
마치 노래 소리 같았죠
하지만 당신이 떠나고 나니
앞이 캄캄하네요
이게 다 한 소녀를 사랑한
까닭이겠죠
갈피를 못 잡는 내 마음이
오로지 당신에게만 향하는 것은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나는 사랑하는 사람 위해서라면
내 생명도 이 세상
모든 기쁨 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어요
그러던 그가 어느 날은 클럽 전체를 빌려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동료들과 밤늦도록 마시고 또 마시며 시원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몇 번이고 까칠까칠한 구렛나루를 내 뺨에 부비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All for the love of a girl”을 듣고 또 들으며.
이 노래는 조니 허튼이 작고하기 직전인 1959년에 발표하여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이다.
조니 허튼은 1925년에 태어나서 1960년에 자동차 음주사고로 유명을 달리 할 때까지 35년이란 짧은 생에서 큰 족적을 남기고간 힐빌리 컨트리의 거장이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