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아침은 늦게 시작되지만 낮은 빨리 시작된다. 부지런히 설거지를 마치고 요사 채 앞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화사한 봄볕에 승복이 하얗게 보인다. 햇살이 가닥가닥 빨래에 부딪쳐 입자로 튕겨져 나가기도 하고 알갱이가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노 주지는 오수에 빠져 이미 이승을 떠나 코고는 소리가 거죽을 어르고 운판(불교의식에 쓰는 불구의 하나로 구름 모양의 얇은 청동판)을 치더니 범종 속을 맴돈다.
낚시 줄에 알밤을 꿰어 다람쥐와 꾀를 겨루는 장 처사 입에선 능글맞은 웃음이 새어 나오고, 그렇게 고즈넉한 오전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산 아래서 알록달록한 꽃잎 몇 장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 이 사장네구나”
당구풍월이라더니 장처사도 신통력이 생겼는지 어떻게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까?
“저, 매 바위로 가는 길이 험하다고 하던데 안내 좀 해주실래요?”
점심공양 후 뻐근한 허리를 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당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다보니 “이 사장”이란 신도의 딸이었다. 우리는 바윗길을 한참을 기어올라 매 바위 정상에 다다랐다. 바위에 걸터앉은 그녀의 어깨위로 봄볕이 살포시 내려앉았고, 호리병 같이 긴 목에 두른 스카프는 제비꽃처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왜 스님이 되고 싶으세요?”
“길을 찾고 싶습니다.”
“길이라면 평탄한 길도 많은데 왜 하필 험한 길로 가세요?”
그녀는 망치로 내 머리를 내려치는 한마디를 던지며 까르르 웃었다. 만약 제비가 잽싸게 채가지 않았더라면 앞산 너머에까지 웃음소리가 퍼졌을 것이다. 그날 그 한마디는 두고두고 나의 화두가 되었다.
오늘은 화사한 햇살이 비치는 날이면 늘 생각나는 노래를 한 곡 골라본다.
내 어깨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나를 행복하게 하고
그 햇살이 눈 속을 비출 땐
상쾌한 눈물이 나지요
물위에 비친 햇살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항상 나를 들뜨게 하지요
만약 당신에게 하루를
선물할 수 있다면
나는 오늘 같은 날을
선사 할래요
만약 당신을 위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면
당신이 이렇게 사랑스럽다는
노래를 부르겠어요
“내 어깨에 쏟아지는 햇살(Sunshine on my shoulders)”
존덴버(John Denver)만큼 자신의 노래처럼 살다가 간 가수도 없을 것이다.
록키산에서 태어나(Rocky mountain high) 시골소년인걸 감사드리고(Thank god I‘m a country boy) 햇살을 사랑했으며(Sunshine on my sholders) 고향을 사랑하고(Take me home country road) 노래하는 시인으로 기도하며 살다가(Poems, prayers, promises) 아내와 이혼하고 비행기로 각자 헤어진 뒤(Living on a jet plane) 미안하다며(I’m sorry) 1997년 10월 12일 경비행기를 몰고 영원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Fly away).
존 덴버의 우연이라 하기엔 참으로 절묘하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