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김삿갓’[김병연, 金炳淵]은 삿갓을 지붕삼아 대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세월에 몸을 맡겼다. 비록 세상을 등지고 주유천하 하는 몸이라고는 하나 어찌 애틋한 사랑 하나 없었겠는가? 그에게도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 아리게 하는 애달픈 사랑얘기가 전해오니 바로 기생 가련(可憐)과의 사랑이다.
김삿갓이 금강산 일대를 유람할 때 하룻밤 묵은 불영암에서 그 인연이 시작된다. 암자의 주지 공허는 밤이 되자 심심했는지 김삿갓에게 시(詩)짓기 내기를 청하며, 지는 사람은 이(齒)를 뽑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내기 치고는 좀 과하다고는 느꼈으나 시 짓기 내기를 마다할 김삿갓이 아니었고 결과는 당연했다. 내기에 진 노승은 김삿갓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입에 넣어 이를 뽑아 주었다. 그리고는 “함흥 땅에 가시거든 ‘가련’이라는 기생을 꼭 찾아보시오”하는 것이었다.
공허와 작별한 김삿갓이 안변고을을 지날 때였다. 날이 저물어 어느 외딴 오두막을 찾아들었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파 혼자 살고 있었다. 초근목피의 궁핍한 살림이지만 노파는 정성스레 저녁밥을 지어냈다.
“어찌하여 이 산중에 홀로 사시오? 자식들은 없소?” 김삿갓이 밥상을 물리며 물으니 “자식이 열둘이나 되지만 애비 찾아 뿔뿔이 떠났다오. 열둘이 죄다 애비가 다르거든.” 김삿갓은 남정네들의 간청을 외면하지 못한 그 노파가 부정해 보이기는커녕 자비롭게까지 느껴져 살아있는 지장보살로 여겼다.
다음 날 아침에 하직을 하는데 그 노파 역시 “함흥 땅에 가시거든 가련이를 꼭 찾아보시오.”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이타 생각하며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함흥에 당도하여 가련을 찾으니, 그녀는 한 눈에 그의 비범함을 알아차리고 지아비로 모셨다. 알고 보니 그녀는 노승과 오두막 노파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삼년을 가련과 함께 보냈는데 그의 일생에서 가장 안온하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었기에 어느 날 가련 몰래 다시 방랑길에 오른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밤 그는 가련 꿈을 꾼 후 서둘러 함흥으로 발길을 돌렸으나 그를 맞은 건 잡초 무성한 가련의 무덤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기다리다 애가 말라 시나브로 사그라진 것이다. 김삿갓은 노승이 이를 뽑아준 까닭을 알았을까? 자식을 맡긴다는 속뜻을.
6ㆍ25 무훈용사 명국환은 1933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따라 남하하여 해병특공대에 입대한 뒤 여러 전투에서 무공을 세웠다. 1956년 ‘백마야 우지마라’로 데뷔하여 ‘아리조나 카우보이’, ‘학도가’, ‘희망가’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1958년에 발매되어 45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린 작품이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