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의 석화시인은 “연변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변이야기”는 중국조선족 민중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 모두 삶의 현장에서 있은 이야기를 본인들이 직접 쓴 글입니다. 따라서 연변에 사는 동포들의 정취와 민족정신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아들애가 여섯 살 무렵 나는 앞으로 우리아이를 조선족학교에 보낼가 아니면 한족학교에 보낼가를 고민하다가 끝내 한족유치원에 보냈다. 그덕에 지금 소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은 조선족이라는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대신에 조선말은 몇 마디는 알아듣지만 단 한마디도 번지지를 못한다. 나는 앞으로 애가 커서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조선말은 몰라도 중국에서 사는 데는 별 영향이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요즈음에 생겼다. 8월 2일날 한국에 있는 남동생네 여덟 살짜리 아들애가 중국에 놀러 온다고 해서 오후 4시에 남편과 같이 공황에 마중 나갔다. 조카애는 공항에서부터 형아랑 같이 만나려고 했는데 고모와 고모부만 마중 왔다면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사촌형이 무척 보고 싶었나 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애들은 서로 못 본지 벌써 3년이나 된다. 조카애는 잠시 후면 형아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들떠있었다.
우리를 태운 차는 천지교를 지나서 지금 한창 시공 중인 고층건물들로 즐비하게 늘어선 강뚝길을 달리는가싶더니 어느덧 집문 앞에 이르렀다. 조카애는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형아를 부르며 4층에 있는 우리집으로 곧추 달려올라갔다. 우리 아들도 그 시간에 학원이 끝나서 집에서 기다리던 차라 동생의 부름소리에 인차 문을 열고 반기였다.
둘은 만났다고 좋아서 서로 부둥켜안고 난리더니 금시 서로가 포갰던 팔을 풀었다.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둘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였다! 조카애는 한국에 살고 있으니 한국말만 하고 울 아들은 한족학교에 다니니 중국말만 한다. 그러니 서로 다른 두 "외국인"이 만난 거나 다름없었다.
두 애는 그렇게 서로를 한참동안 멍하니 낯선 사람 쳐다보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애들이 당황해하고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참, 이를 어쩌면 좋지?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아들애가 조선말을 몰라도 우리와의 대화에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조카애하고는 상황이 달랐다…
그날부터 몇 일간 나는 "두 외국인"을 위해서 통역 아닌 통역을 서주느라고 엄청 비지땀을 흘렸다. 그래도 애들이 총명하여 인츰 서로에게 맞춰가면서 같이 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애들이 노는 걸 가만히 들여다봤더니만 가관도 이런 가관이 아니었다. 둘이 몸짓, 눈짓, 손짓, 발짓에 소리까지 합세하면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면서 노는 것이 참 희한하였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애들이 피는 물보다 짙다는 말을 립증시켜 주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도로 조선말을 배우려니 아들애도 힘든가 보다. 하루는 나에게 "엄마. 난 조선족하기 싫어, 조선말 배우는 게 힘들어서… 그냥 한족하면 안 돼?"하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아들에게 우리는 조선족이고 중국에 사는 소수민족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조선족이라는 민족애를 아이에게 심어주고 자기 민족의 말과 글을 이어나가려면 우리 부모들로부터 관념을 갱신해야 한다. 사실 우리 조선족은 중국에서 우리의 언어가 외국어라는 우세를 가지고 태어났다. 지금은 지구촌이 한마당인 만큼 가지고 있는 우세를 충분이 살려야 한다.
최소한 조선족이라면 조선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자기 이름자를 쓰고 신문까지는 읽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여야지 않겠는가. 자랑스러운 내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려면 나부터 조선말과 글을 사랑하고 나의 아이에게 민족을 가르치는 게 응당하다고 본다.
요즈음 나는 당초에 아들을 한족학교에 보낸 후 우리조선말을 잊어버리게 방치해둔 자신을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른다. 한족학교에 보내는 게 문제인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우리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부모로서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어느덧 조카애가 돌아가는 날자가 되었다. 공항에 나가는 길에 조카애가 나에게 말한다.
"고모, 다음에 올 때는 형아랑 우리말 할 수 있겠지? 사실 이번엔 좀 유감이였어요~"
"그럼, 당연하지. 다음번엔 형아가 너랑 글도 같이 읽을 수 있을걸."
"와~ 신난다. 고모 약속해.“
그렇다. 여덟 살짜리 조카애의 말을 들으며 나는 부끄러운 자신을 반성했다. 차가 천지교를 지나고 있었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니 날아오르는 비행기가 눈에 띈다. 문득 아들의 말이 생각난다.
"엄마. 지성이랑 찬송이는 다음 일요일에 서울민속박물관에 간대요… 우리도 연변박물관에 가봐요"
그래, 아들아. 그 사이 더 잘 살려고 일에만 부대끼다나니 너에게 소홀했구나. 이번 일요일에는 만사 제쳐놓고 너랑 같이 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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