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뛰어난 인재들 집현전에 모아

  • 등록 2026.02.13 14: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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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9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문신(文臣)을 선발하여 집현전(集賢殿)에 모아 문풍(文風)을 진흥시키시는 동시에, 문과는 어렵고 무과는 쉬운 때문으로, 자제(子弟)들이 많이 무과로 가니, 지금부터는 《사서(四書, 유교의 경전인 논어ㆍ맹자ㆍ중용ㆍ대학을 아울러 말함)》를 통달한 뒤에라야 무과에 응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는 《세종실록》 3권, 세종 1년(1419년) 2월 16일 기록으로 좌의정 박은이 세종께 아뢴 말인데 세종이 아름답게 여기고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세종 때는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고, 큰 학문적 성과도 이룩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과는 집현전(集賢殿)이 그 바탕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집현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문 연구기관인데 조선의 으뜸 학자들이 모여 연구와 책을 펴내는 등 활동을 했습니다. ‘집현전’이라는 이름은 고려 인종 때 처음 나왔고 조선 정종 때도 집현전이 있었으나 유명무실한 기구였지요. 그러나 세종은 집현전을 완전한 국가기관으로 승격시켜 학문 연구의 중심기구로 삼는 한편, 학문과 품성이 뛰어난 으뜸 인재들을 모았습니다.

 

 

집현전은 세종이 임금 자리에 오른 다음 해인 1420년에 설치되어 세조 2년까지 약 37년 동안 존속하였지요. 세종과 왕자ㆍ공주에 의해서 이루어진 훈민정음 창제를 빼고는 훈민정음 반포와 정착, 그리고 그와 관련한 사업인 《용비어천가 주해》, 《사서언해》, 《향약집성방》, 《삼강행실도》, 《자치통감》, 《국조오례의》 같은 책을 펴냄도 모두 집현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요. 집현전이 있었던 곳은 현재의 경복궁 수정전 자리로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과 가까웠는데 이는 세종이 학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했고, 집현전의 연구 성과를 나라 정책에 충분히 반영하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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