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 최영숙

  • 등록 2017.05.16 1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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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5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지난 1970년 여름날에 있은 이야기이다. 우리 마을은 해란강이 굽이돌아 흐르는 오붓한 동네였다. 그때 하방호로 왔던 딱친구 옥주네가 시내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졌다. 옥주와 친하게 보내던 친구들은 일요일, 시내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나는 걱정이 앞섰다. (돈은 어쩌지? 차비 20 , 사진값 20, 점심값 10, 적어도 50전은 있어야 하는데. 이 돈을 누구와 달라지?)


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침침해 났다. 우리 집은 아홉 식구에 로동력이라고는 아버지와 엄마뿐이어서 일년 수입이 얼마 안 되였다. 다른 애들 같으면 의례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할 것이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엄마가 계모였던 것이다. 세상물정 좀 알기 시작해서부터 다시 말해 우리 엄마가 나를 낳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눈치생활을 해왔다.

 

물론 우리 엄마는 나를 잘 대해 주었다. 우리집에 오셔서 낳은 내 아래 두 동생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호되게 꾸짖었지만 전처 자식인 나와 오빠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이야기와 동화책속에 나오는 못된 계모들에 비해 더없이 착하고 인자하여 난 참 다행이야.”라고 혼자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때 문뜩 머리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도리머리질 했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뭘 해달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할수 없지. 그래도 엄마와 말하자. 엄마가 기분 좋을 때 말하면 줄지도 모르니깐.)


하지만 저녁에 일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기색을 보니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고 피곤기만 력력하다. 내 속은 바질바질 타 들어갔다. 후회하기 시작했다. 공연히 친구들과 약속해 놓고 이렇게 속이 탈 줄이야!


이튿날은 토요일이였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 부리나케 집으로 왔다. 절반은 달음박질했다. 해지기전에 마을뒤편 버들방천에 가서 버들버섯을 캐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며칠 전, 버섯을 한광주리 캐오니 할머니가 감자와 함께 넣고 찌개를 끓였는데 온 집 식구들이 매우 좋아하였다. 특히 엄마가 제일 맛있게 드시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인지 버들방천을 샅샅이 훑었지만 버섯은커녕 버섯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나는 또 엄마와 연길 가는 일을 말하지 못했다. 온 밤 자지 못하고 끙끙 랭가슴만 앓았다.


일요일 아침, 애들과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지금 말을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관건적인 시각이 닥쳐왔다.


"엄마, 오늘 일요일인데 시내마다매네 집에 가서 옥수수국수 바꿔오람둥?"


나는 끝내 용기를 내어 어제저녁 잠을 설치며 궁리해낸 리유를 말했다. 온집 식구들이 밥술을 들고 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국수!? 아직 있어. 바꿔 올 때 안 됐다."
엄마의 단호한 대답이다. 나는 맥이 탁 풀렸다.

"왜 시내에 가려고? 무슨 일 있니?"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반 옥주네가 이사 가서 친구들과 사진 찍으러 가자 했씀다."
나는 구세주가 나타난 것 같아 무슨 정신이었던지 얼결에 실토하고 말았다. 이때 아버지는 곧바로 일어서더니 벽에 걸려있는 웃옷의 호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란 눈길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걸 가지고 가거라."


아버지는 불그스레한 오십 전짜리 지페 한 장과 넉 량짜리 량표 한 장을주셨다. 나는 너무 기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녕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될 것을, 내가 왜 이걸 몰랐지?)


허나 기쁨도 잠깐, 얼른 떠나려고 내가 웃방에 들어가서 미닫이를 닫고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정주칸에서 벼락치듯 하는 아버지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니? 다시 말해봐!"
"왜 그 애만 줌둥. "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당탕 탕!"
뒤이어 무엇이 마구 뒤번져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닫이를 열었다. 눈앞에 상상도 못할 정경이 안겨왔다. 아버지가 두 손으로 엄마의 멱살을 잡아 쥐고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이였다.


"내가 어쩌다 걔한테 돈을 한번 줬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 됐니? "
"이보게 아애비, 말로 하오. 이 손 좀 놓고 말로하오."
할머니가 울면서 아버지의 왼손을 잡아당기는데 두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했다.


"아부제, 이 손 놉소. 제발 이 손 놓읍소."
오빠도 이렇게 애원하면서 아버지의 오른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구들바닥을 보니 밥상이 뒤번져지고 그릇과 음식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있었다.

 

"아부제, 내 아이 가겠쓰꾸마. 내 안 가믄 되잼둥. 제발 엄마를 그러지맙소."
이 광경을 보고 울먹거리며 겨우 이렇게 말을 마친 나는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돈과 량표를 구들에 확 내던지고 주저앉았다.


할머니는 얼른 엄마를 밀고 웃방에 들어가 미닫이를 닫아 버렸다. "지지 잘하다 오늘은 어째 이래우?"
웃방미닫이 너머로 할머니의 타이르는 목소리와 엄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렸왔다. 나는 친구들이 이 광경을 볼까봐 벌떡 일어서 뛰어나갔다. 눈물은 그쳐지지 않았다.


"너 웬일이야?"
눈물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본 옥주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급히 물었다.
", ? 배 아파, 너무 아파 이렇게 눈물이 자꾸 난다."
다른 애들도 놀란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약속 못 지켜서. 너희들만 가!"
말을 마치고 나는 홱 돌아섰다. 친구들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나는 고개를 들어 애들이 떠나간 동구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뜨거운 눈물이 또다시 흘렀다.


"뚜벅, 뚜벅."
문득 무거운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집을 나선 아버지가 내가 있는 골목쪽으로 천천히 걸어오시고 있었다. 내 곁에 가까이 와서 걸음을 멈춘 아버지는 두 손으로 나의 어깨를 잡고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셨다.

 

나는 서러움이 북받쳐 저도 모르게 "아부제."라고 부르며 아버지 품에 와락 안겼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내 등을 가볍게 다독이다가 천천히 돌아 서시였. 순간, 나는 아버지의 눈가에 뭔가가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아버지의 눈물이였다. 바자굽을 지나 고개를 푹 숙이고 맥없이 걸어가는 아버지, 구부정한 아버지의 뒤잔 등이 조금씩 들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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