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뜬금없다'를 찾으면 "갑작스럽고도 엉뚱 하다."라고만 풀이해 놓았다.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속이 후련하지는 않다. 어째서 속이 후련하지 않을까? '뜬금'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뜬금을 알자면 먼저 '금'을 알아야 한다. 우리 토박이말 '금'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금'은 '값'과 더불어 쓰이는 것이다. '값'은 알다시피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적에 내놓는 돈이며, 거꾸로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건네주고 받아 내는 돈이기도 하다. 값을 받고 물건을 팔거나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사거나 하는 노릇을 '장사'라 하는데, 팔고 사는 노릇이 잦아 지면서 때와 곳을 마련해 놓고 사람들이 모여서 팔고 샀다. 그때가 '장난'이고, 그곳이 '장터'다.
닷새 만에 열리는 장날에는 팔려는 것을 내놓는 장수와 사려 는 것을 찾는 손님들로 장터가 시끌벅적하다. 값을 올리려는 장수와 값을 낮추려는 손님이 흥정으로 줄을 당기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실랑이도 불꽃을 튀긴다.
그런데 우리 고장같이 농사로 살아가는 곳의 장날 장터는 크게 둘로 갈라진다. 농사꾼들끼저마다 팔거리를 내놓고 서로 팔고 사는 '장터거리'와 장사꾼이 자리를 잡아 물건을 벌여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전포'들이 그것 이다. 그러나 이 두 곳에서는 흥정으로 불꽃 튀는 실랑이를 벌이지 않는다. 한쪽은 서로 빤히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라 실랑이를 벌일 사이가 아니고, 한쪽은 전포 장사꾼이 아쉬울 것이 없고 느긋해서 실랑이를 벌이지 않는다.
정작 불꽃 튀기는 홍정은 먹거리를 팔고 사는 싸전(쌀전), 입성을 팔고 사는 베전, 그리고 농사 밑천인 소를 팔고 사는 소전에서 벌어진다. 쌀과 베는 농사꾼이 장수가 되어서 팔아야 하고 장사꾼이 손님이 되어서 사야 하는데, 소는 농사꾼과 장사꾼이 서로 섞여서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해서 돌아가는 판세가 아주 다르지만, 어쨌거나 이 세 곳에서는 흥정의 실랑이가 뜨거워서 한낮이 되어도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서로 버티기만 하는 때가 흔히 있다.
이렇게 흥정을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는 말미가 다름 아닌 '금'이다. 금을 먼저 내놓고 팔고 살 사람이 밀고 당기다가 뜻이 한 곳에 모이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농사꾼들끼리 팔고 사는 장터거리나 장사꾼이 물건을 벌여 놓고 손님을 끄는 전포에서는 파는 쪽에서 먼저 금을 내놓으면 손님이 흥정을 벌인다. 그러나 싸전, 배전, 소전같이 값진 물건을 거래하는 곳에서는 거래를 붙이고 구전을 받아먹는 거간꾼이 따로 있어서 이들이 금을 내놓고 흥정을 부추긴다.
거간꾼은 장돌뱅이로, 이웃 장들에서 거래된 시세를 환히 알면서 금을 내놓는 것이지만, 파는 쪽이나 사는 쪽에서는 늘 마음에 차지 않아서 홍정은 실랑이로 불꽃을 튀기게 마련이다. 이때 거간꾼이 금을 내놓는 것을 '금을 띄운다.' 하고, 그렇게 띄워 놓은 금이 곧 '뜬금'이다. 뜬금이 있어야 홍정을 거쳐서 거래하는데, 금도 띄우지 않고 거래를 하려 들면 '뜬금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흥정이 끝나고 거래가 이루어져서 저쪽 것을 받으며 건네주는 돈이 바로 '값'이다. 그러니까 '뜬금없다'라는 말은 미리 풀어야 할 타래를 풀어 놓지도 않고 갑자기 일의 매듭을 지으려고 덤벼드는 짓을 뜻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속내를 알지도 못하는 일을 저만 혼자 안다고 마음대로 마무리하려 드는 노릇인 셈이다. 이럴 때 다른 사람은 누구나 '갑작스럽다' 또는 '엉뚱하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