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노트 / 김경희

  • 등록 2018.04.02 12:09:09
크게보기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6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나한테는 행복노트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 딸 란이가 어렸을 때부터 커온 과정을 기록한 성장노트이다. 열 달 만에 홀로 서기를 하던 그 시각의 기쁨, 2살에 아기코끼리 이야기를 한번 듣고 외우던 놀라움, 7살에 아빠 생일선물로 그린 카드,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성적표들,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오갔던 편지들현재 기업경영고문과 프로강사로 활약하는 우리 딸은 30대이지만 이 엄마가 보기에도 뿌듯한 많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전 미국대통령 부시, 세계경제포럼 주석 클라우스 슈바프 및 중국외교부장 왕의 등 국가리더와 유명인사들의 외교통역을 담당했는가 하면빅데이터(掘金大数据)의 번역저자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대학 발전관리학 석사, 청화대학 경영관리학 석사(MBA)를 졸업한 딸은 청화대학 경제학원 력사상 처음으로 조선족녀학생이 졸업대표강연을 하면서 력사의 한 페이지를 남겼고 요즘은 천진위성 유명프로그람 그대만이 할 수있다非你莫属의 인력자원고문으로 위임되면서 매체인지도도 꽤 높다. 프로필이 화려한 딸은 또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현재 북경애심녀성네트워크 차세대담당 부회장, 전국애심녀성포럼 차세대 위원장을 맡아 ‘80, 90차세대들을 이끌어 공익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조선족으로서 수도 북경을 발판으로 세계를 누비며 이만큼 성취를 거두고 있으니 엄마인 나한테도 덩달아 자녀교육경험담을 공유해달라는 초청을 보내주어 우리 딸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다시금 나의 행복노트를 번지면서 회억(回憶, 돌이켜 추억함)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딸애 란이는 어려서부터 독립성이 강한 아이였다. 나와 남편은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품안의 귀염둥이로부터 독립적인 인격체가 되도록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는 법을 배워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딸이 아주 어렸을 때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번은 시골에 계시는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그 때 우리 란이는 갓 돌이 넘어 한창 혼자서 수저를 쥐고 밥을 먹으려 매삼거리고* 있었다. 점심메뉴로 칼국수를 말았는데 애가 여기저기 흘리고 입에 묻히면서 서투르게 젓가락을 휘두르며 바로 먹지도 못하고 안달이 나했다.

 

손녀가 아까워 안타까운 마음에 시어머니는 보다 못해 화를 내시면서 자네들만 애를 키우오? 이 갓난 것을 뭣하러 힘들게 혼자 먹게 놔두오?”라고 우리 부부를 닦아세웠다. 우리도 부모인데 어찌 딸애가 아깝지 않으랴? 우리 부부는 그저 우리 나름의 육아방식을 지켰을 뿐이다.

 

성장노트를 펼쳐 돌이켜보니 딸애는 그 뒤로 3살부터 혼자 자고 7살에 소학교에 입학하여서부터는 목에 열쇠를 메고 6년간 혼자 학교를 다녔으며 10살에는 할빈과 장춘으로 겨울캠프도 혼자 다녀오고 12살에는 혼자서 조선으로 견학도 다녀왔다. 지금은 방학캠프나 려행을 많이 가지만 지난 세기 8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아이를 혼자 밖으로 내보내는 부모들이 극히 적었다. 란이 말로는 자기가 산 설고 물 선 영국땅에 혼자 두려움 없이 발을 내디딜 때도 그런 경험들이 류학중 온갖 난관을 스스로 잘 넘기는 기초가 되였다고 한다.

 

우리 딸 란이는 어려서부터 독서팬이였다. 지금은 성적 높은 아이보다 사고력과 창의력을 가진 아이가 더 훌륭하다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30년 전에는 창의력이란 단어조차도 못 들어봤고 시험성적순위 위주의 교육환경이 지배적이였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우리는 아이한테 과외서적을 많이 사주었으며 집에 오면 책을 쥐는 아버지 모습에 영향 받아 독서가 딸의 일상이 돼버렸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들어가 책을 읽는 데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나한테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 지금도 우리 집 서재는 부녀가 본 책으로 사면이 둘러싸여있으며 책장이 20여개라도 모자랄 판이어서 가족도서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딸 란이는 글을 알아서부터 동화명작, 세계문학명작들을 닥치는 대로 보아 어휘량을 넓혀갔고 또 느낀 소감을 엄마, 아빠와 대화하면서 동년배 아이들보다 더 깊은 사고력을 키우게 되였다. 덕분에바라는 마음, 라이라크등 우수한 작품으로 윤동주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받았으며 중한백일장 장원상을 탄 작품 언덕길은 중학교 조선어문교과서

에 수록되기도 했다. 성장하면서 그동안 썼던 일기와 작문들이 지금은 다 나의 행복노트에 간직돼있어 앞으로 편집, 출판할까 계획도 해본다.

 

딸 란이는 공부도 잘하고 다재다능하지만 사실 지력이 뛰어난 천재라기보다는 꾸준한 의지력을 가진 아이였다. 부모인 우리도 점수를 높이는 방법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실패를 이기는 방법을 습득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딸이 초중을 다닐 때 일이다. 수학써클에 참가한 딸이 하루는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알고 보니 시험에서 탈락되어 올림픽수학경연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튿날, 딸의 손을 잡고 선생님을 찾아가 아이가 수학공부를 너무 하고 싶어하니 그냥 교실 제일 구석에라도 앉아 아이가 강의만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간곡히 사정했다.

 

우리의 열정과 구지욕*에 감동되어 선생님은 란이한테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기초가 약하고 머리도 별로 비상하지 않았던 딸애는 2년이 지나도록 빼어난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들 포기하고 고중입시에 몰두하라고 권고를 했지만 딸애가 나를 보면서 엄마, 반년만 시간을 더 주세요. 제가 그 때도 안 되면 포기할게요.”라고 간곡히 부탁하는데 차마 딸애의 요구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딸애는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매일 열심히 노력하였고 난제에 부딪치면 며칠이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풀이방법을 짜내곤 했다. 그러더니 끝내는 전국올림픽수학경연에서 1등상을 받으면서 연변1중에 추천받는 영예를 지녔다.

 

행복노트의 일기를 보니 란이는 8살에 피아노 한곡을 잘 치기 위하여 8시간을 꼬박 앉아 있은 적도 있고 12살에 줄넘기 련습을 한다고 아랫집 전등이 떨어지도록 뛰었는가 하면 15살에 탁구련습을 한다고 집의 벽을 구멍천지로 만든 적도 있었으며 24살에는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몸무게를 75킬로그람으로부터 50킬로그람으로 감량한 놀라운 기록도 있었다. 공부나 취미, 모든 일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끈질기게 이겨나가는 정신력이 아마 오늘의 성공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사실 성공한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로서 더 뿌듯한 건 딸 란이의 훌륭한 덕목과 성품이다. 어렸을 때부터 예쁘다는 말보다 좋은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란이는 집에서 부모님들한테 효도하는 것은 물론 나가서도 사랑과 베풂을 아는 아이였다. 소학교 1학년 때부터 해마다 소풍 갈 때면 도시락을 하나 더 싸달라고 해서는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나의 노트에도 보면 명절 때 받은 용돈을 재해지구나 불우이웃돕기에 지원한 기사들이 기록되어있다.

 

지금도 차세대 리더로서 전국애심녀성포럼, 북경애심녀성네트워크를 통하여 우리 민족 사회의 자선공익, 전통문화살리기, 차세대리더양성 등 분야에서 재능기부도 하면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세계한민족녀성네트워크의 포럼에서도 우리 중국조선족차세대녀성의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딸 란이는 어느 취재중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인생은 바로 자아창업이다. 나 자신이 바로 나의 작품이며 끊임없는 성장을 거쳐 뛰어난 자아가 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가치를 창조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다.”

 

어찌 보면 딸은 또한 우리 부부의 최고의 인생작품인 것 같다. 그 작품이 이뤄지기까지의 30여년의 행복노트를 보면 딸애가 우리한테 준 영광과 행복은 말하자면 끝이 없다. 딸바보 엄마의 신난 수다겠지만 딸자랑보다는 딸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행복노트를 통해 독립성과 강인함으로 세상을 보고 창의력과 사랑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딸애의 모습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다.

      

* 매삼거리다 : "서성거리다"의 연변말

* 구지욕 : 求知欲, 지식을 구하려는 욕심


석화 시인 shihua@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