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임 명창, 2025년 방일영국악상 받아

  • 등록 2026.03.24 11: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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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7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남사당놀이>의 지운하 명인이 입문(入門) 70돌을 기념하는 공연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우정 출연한 남기문의 <비나리>, 김덕수와 함께하는 <앉은 반 사물놀이>, 유지숙의 <서도 민요창>, 오은명의 <살풀이춤>, 장사익의 <소리판> 등등이 객석의 분위기를 띄워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남사당의 예(藝) 기능(技能)을 유감없이 발휘해 온 지운하는 인천에서 남사당패를 재창단하고, <꼭두쇠> 역할을 하면서 공동체의 중요성이나 단체생활의 질서를 강조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 쇠를 치고, 상모를 돌리며 걸어 온 그 길은 절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자랑스러운 길,“ 숨 쉬는 한, 지속적으로 가야 할 길”임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2025년,《방일영 국악상》의 주인공이 된, 정순임 여류 명창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판소리를 부르며 판소리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85살의 정순임 명창, 그는 어떤 인물인가? 판소리 명가(名家)의 명맥을 이어가는 주인공으로, 80여 년 판소리 인생의 외길을 걸어 온 여류 명창이다. 그는 스스로 어머니 장월중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판소리, 춤, 가야금 병창, 아쟁 산조 등 기악 연주에도 뛰어나 스스로 독자적인 유파를 형성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 밖에 여성국극에 참여하면서 연기 분야도 익혔으며 기존의 음악을 편곡하거나 새롭게 악곡을 만들고 짜는 작곡의 능력까지 지녔던 실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온, 만능 예능인이었다.

 

 

정순임의 어머니 장월중선은 경상북도, 특히 경주가 고향처럼 그곳에 터를 잡고,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국악인으로 살았다. 경상북도에서는 그를 <가야금 병창> 부분의 문화유산 보유자로 인정했던 명인이다.

 

조선조 고종 때, 판소리로 이름을 날리던 장판개라는 유명한 명창이 바로 장월중선의 큰아버지, 정순임에게는 외가의 큰할아버지가 되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장판개로 시작해서 장월중선, 정순임으로 이어지는 판소리 3대의 명인을 배출해 낸 집안이어서 문화관광부로부터 판소리 3대 명가(名家)로 지정을 받기도 했다.

 

정순임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2007년 1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다만, 그가 인정받은 예능 종목은 어머니가 지니고 있던 <가야금병창> 부문이 아닌, 판소리 종목의 <흥보가>로 그 예능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도 지역에서의 판소리 전승활동이나 공연활동을 해 온 결과라 할 것이다. 실로 그는 경북 지역의 판소리 공연이나 보급 활동에 전력을 기울였고, 이와 함께 젊고 어린 제자들을 다수 키워왔던 것은 국악계가 잘 알고 있다.

 

그동안 경주를 중심으로 활동해 오던 공연이나 전승활동도 점차 확대해 오면서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가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흥보가>의 보유자로 인정(2020년 6월)을 받게 된다. 그의 <흥보가>는 명창 송만갑으로부터 -김정문-박록주-박송희를 거쳐 정순임으로 이어지는 계보다.

 

정순임 명창에게는 남동생(정경호)과 여동생(정경옥)이 있어 이들도 함께 경주에 살았는데, 이들 또한 어머니 장월중선의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어머니로부터 아쟁 산조를 익힌 남동생과 가야금 산조와 병창, 판소리 등에 능해 국립국악원에서 활약해 온 여동생이 바로 그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두 동생의 자녀들도 대를 이어 전통음악에 종사하고 있다.

바로 남동생의 아들, 성룡은 고모인 정순임에게 판소리를 배워, 경상북도 문화유산 판소리 <흥보가>의 전승교육사로 활동하고 있고, 여동생 정경옥의 아들, 규용은 고법(鼓法)분야를 전공해서 대를 이어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실로 4대를 이어가고 있는 국악 집안인 셈이다.

 

정순임은 경주 지역에서 활발한 공연 활동을 하는 한편, 어린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였다. 글쓴이가 경상북도 문화재 위원으로 있을 때였다. 전승 현장을 살피기 위해, 정순임 명창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마루며 방마다 초, 중 고등학생들이 판소리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학생들이 몇 년 뒤에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게 될 것임을 확신한 바 있다.

 

정순임 명창은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한편, 틈틈이 경주에 있는 동국대 한국음악과를 비롯해서 주위의 영남대나 서라벌대, 부산대, 경북대 등에 출강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가 무대 위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해 온 대표적인 작품들을 보면, 박록주제 <흥보가>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장판개의 동편제 <수궁가>도 보이고, 1990 -2000년대에는 <유관순열사가>와 같은 창작 판소리 발표회도 여러 차례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창작 발표회는 특히, 종로 탑골공원에서 자주 올렸던 단골 곡명이었고, 그 외 국립극장이나 국립국악원, 남원 국악원에서도 불렀던 곡명이다.

 

무엇보다도 정순임의 공연 기록에서 보이는 특징이 있다면 자신의 문화유산 종목인 <흥보가>의 완창발표회는 물론이고, 이에 못지않게 <심청가>나 <수궁가>의 소리 발표회라든가, 또는 창극 발표회, 특히 눈에 띄는 <유관순 열사가>와 같은 창작 판소리 발표회가 많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구체적인 이유는 또 다른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어머니 장월중선으로부터 배워 익혔다고 하는 <심청가>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배경을 정병헌이 쓴 《판소리와 사람들》을 참고하며 이 난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정순임 명창은 장월중선의 따님이고, 그래서 이날치로부터 이어지는 박동실의 <심청가>를 이어받았다고 하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해마다 3.1절이 되면, 서울 탑골공원에서 <유관순 열사가>를 부르면서 그 말미에 태극기를 꺼내어 힘차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모습은 입소문이 나고 또는 뉴스 화면을 통해 전국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순임이 <흥보가> 이외에도 <심청가>를 잊지 못하고 자주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바로 족보가 있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소리는 그 유명한 명창, 이날치로부터 김채만을 거쳐 박동실로 이어진 소리다. 흔히 <서편제>라고 하는 보성소리와도 다르고, 당연히 송흥록의 <동편제>와도 구별된다. 그들 과거의 명창들은 서로 다른 소리를 인정하고, 각각의 소리가 가지고 있는 소위 <결>을 존중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큰 흐름만 남기고, 소소한 흐름은 무시하고 드디어는 소멸시키곤 하였다.

 

수많은 생명의 종(種)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결들이 그래서 사라지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지금의 인간문화재 지정은 그런 점에서 큰 흐름을 보존한다는 긍정적 면과 함께 각각의 소리가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소리결을 파묻고 말았다는 잘못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동실을 통하여 장월중선-정순임에게 이어진 심청가는 사라져가는 서편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소리이다. 박동실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소리꾼이 장월중선과 한애순이었는데, 지금은 정순임 밖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절박한 상황이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정순임의 <심청가>는 가슴 저 아래로부터 끓어오르는 한(恨)을 드러내되, 결코 슬픔 속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한다. 이 소리가 사라질까 두려워 정순임 명창은 열심히 발표도 하고,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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