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동지섯달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이면 어린 학생들이 엄마손을 잡고 학교로 가는 모습을 본다.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로 전신무장한 애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나는 넋 없이 이런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어느덧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우리 집은 오빠와 언니 둘 그리고 남동생과 녀동생에 나까지 모두 여섯남매였다. 어머니는 장기환자였고 아버지의 한분의 노동력으로 꾸려가자 보니 매우 가난하였다. 어릴 때 나는 언니들이 물려주는 옷을 기워 입었고 새옷은 언제 입어봤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70년대의 겨울은 어찌나 추웠던지… 소학교는 마을에서 5 리나 떨어진 곳에 있어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입김에 눈썹이 어느새 할아버지 눈썹으로 되고 살을 에는 추위에 입이 얼어 말도 더듬거리게 된다. 또한 불어치는 눈보라를 피하려고 뒷걸음치며 걷다가 넘어지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귀가 얼어서 벌겋게 부어나니 어머니가 눈밭에서 가지대를 가져다 끓여서 그 물로 씻어줄 때도 있었다.
소학교 3학년 때, 우리반 담임선생님으로 김련숙 선생님이 오셨다. 항상 웃음 띤 얼굴에 인자한 모습인 선생님을 우리들은 모두 좋아했다. 선생님께서는 얇은 옷을 입어 항상 옹송거리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난로 곁에 앉히었다. 나는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만 같아 정말 행복했다.
어느 하루, 공부가 끝나 집에 오려고 수건을 쓰는데 곁에서 지켜보시던 선생님이 “춥지 않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추워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주저 없이 자신이 두르고 있던 토색(흙색)목도리를 나의 머리에 포근히 감싸주시면서 “추운 겨울이니 꽁꽁 잘 감싸고 다녀라. 잘 견디다보면 어느 샌가 따뜻한 봄이 온단다.”라고 하셨다. 나는 무슨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글썽해졌다.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의 토색목도리의 온기는 추위에 떨고 있는 가냘픈 나에게, 가난하게 살아 주눅이 들어 움츠리고만 있던 나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가장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여 꼭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다짐하였다. 목표가 있게 되자 나는 열심히 공부하여 학기마다 우등생이 되였다. 토색목도리는 언제나 나의 몸을 감싸 주었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그런데 문화대혁명이 닥쳐오자 나의 꿈은 산산이 짓부셔졌다. 오빠, 언니처럼 대학에도 가고 담임선생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건만 모두 헛수고였다. 나는 그 후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비록 나의 꿈은 이루지 못하였지만 토색목도리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자녀들을 눈뜬 소경으로는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 살았는데 여섯 살. 일곱 살 된 두 딸을 일학년 한반에 입학시켰다. 학생이 모두 여덟 명이였는데 선생님 한 분이 어문, 수학, 한어를 가르치었다. 마을엔 소학교도 졸업 못한 애들이 수두룩하였다. 이곳에 계속 살다간 애들을 눈 뜬 장님으로 만들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맨 주먹으로 큰 언니가 사는 도시로 이사를 했다. 도시에 와서 닥치는 대로 일하였으나 커가는 애들의 뒷바라지 하기는 너무 힘들었다.
새벽별을 맞으며 나아가고 달을 지고 돌아오면서 일하여도 도저히 애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여 우리 부부는 ‘러시아장사길’을 택하였다. 시베리아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담임선생님의 사랑의 토색목도리의 온기는 나를 감싸주었고 “잘 견디다보면 어느 샌가 따뜻한 봄이 온단다.”라는 말씀은 시베리아 허허 벌판에서 다시 우뚝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하여 큰애와 작은애의 학비를 모두 마련하였다. 큰 딸은 공부를 잘 해서 연변사범학교에 붙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선생님이 주신 토색목도리가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나의 큰 딸도 나의 담임선생님처럼 따뜻한 사랑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의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작은 애는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류학 가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은 추위에 떨고 있는 제자를 따뜻하게 감싸주신 선생님의 토색목도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나는 내 딸들에게 들려주던 토색목도리에 깃든 사랑이야기를 손자손녀들에게 들려준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이 깃든 토색목도리의 온기를 느끼며 애틋한 추억 속에 빠지기도 한다. 파란만장한 인생길에서 등불이 되어주신 선생님, 사랑합니다. 영원히. 나는 석화시인님의 시 ”선생님 사랑합니다”라는 시를 참 좋아한다. 이 시의 몇구절로 이 글을 맺는다.
“이 세상 가장 고운 말로 / 꽃다발 엮고 / 이 세상 제일 아름다운 가락으로 / 노래 짓는다고 한들 / 어찌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 선생님,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