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이태원 부군당 의례는 고사와 굿으로 나뉜다. 이 의례들은 사람에 따라서 치성, 당제, 묘제, 당굿 등으로도 불리고 있으며, 부군당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기적 행사들이다. 고사와 굿은 계절과 때가 각각 다르고 소요되는 재정도 차이가 있지만, 이태원 지역 주민의 대동단결을 모색하고 무사태평을 비롯한 부귀공명, 수명장수 등 축재초복(逐災招福)을 위한 목적은 같다. 주민들은 이 의례를 통해 부군당이 존속할 수 있게 하는 당위성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의 이태원 부군당 의례는 한 해 네 차례에 걸쳐 치러졌었다. 그것들은 정월 , 4월, 7월 그리고 10월 상달 가장 좋은 날을 택일하여 행해졌었다. 이 가운데 정월과 4월 의례는 하주들이 당고사를 지낸 뒤 무당이 주관하는 큰 굿으로 치렀고, 7월과 10월 상달은 하주들이 주관하는 당고사로만 치렀다. 정월의 큰 굿은 초순쯤에 택일하여 지냈으며 4월 큰 굿은 초하룻날 지냈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큰 굿을 일주씩이나 행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부군당의 정기적 의례 횟수는 줄어들었고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의례 규모나 형식이 더욱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1980년 후반이 되면서는 한 해에 두 차례만 의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봄에는 큰 굿을 하고 가을에는 간단하게 당고사로 행하게 된 것이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는 이마저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봄․가을 의례 모두를 간단하게 치를 수 있는 당고사로만 지내게 되었다.
이태원 당고사는 매년 음력 9월 말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음력 10월 초하루 새벽 1시 무렵까지 약 2시간 정도에 걸쳐 치러진다. 의례 주관자들은 남자들로만 구성된 화주들이다. 제물 장만은 당지기의 부인을 중심으로 서너 명의 동네 부인들이 담당한다. 이들은 2~3일 전부터 의례에 사용될 제물은 물론이고 주민들이 먹을 음식들을 준비한다. 모든 음식은 하주당 옆에 딸린 부엌에서 준비한다.
당고사를 시작하는 날 오후가 되면 모든 하주들이 화주청으로 모여 화주청 내부 장롱 안에 보관하여 둔 제관복을 꺼내 입는다. 제관복으로는 흰 바지저고리 행전 두루마기 술띠 흰 양발 신발 갓 등이다. 과거에는 봄가을에 입는 제관복이 각각 달리 갖추어져 있었으며 화주 각자의 집에서 보관하였지만, 지금은 한 벌로 봄가을 의례를 치르고 있으며 행사가 끝나면 다시 장롱에 넣어두곤 한다.
제관복을 갖춰 입은 화주들은 시간이 되면 맨 먼저 화주청 앞마루에서 화주청 고사를 지낸다. 먼저 제관복을 차려입은 화주들이 화주청 앞마루에 화주청상을 차려놓고 제를 지낸다. 화주청 고사가 끝나면 부군님에게 올릴 제물을 전각 내부 마루로 옮긴다. 전각으로 옮겨온 제물들을 하주들이 정성껏 제기에 담아 제단으로 올린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당고사를 지낸다.
수하주가 먼저 부군할아버지와 부군할머니에게 술잔을 올리고 세 번 절을 한다. 다른 화주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다 함께 절을 두 번 한 다음 초헌관이 중앙의 부군님에게 잔을 올린다. 나머지 화주들이 나머지 신령님 앞에 놓여있는 잔에 술을 따른다. 모든 화주가 엎드리면 집사가 축문을 낭독한다. 모두 일어나서 두 번 절한 후 밥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는다. 수화주가 술을 추가해서 첨잔한다.
그리고 추렴에 동참한 사람들의 성명을 낭독하는데 인원수가 많아 양쪽에서 동시에 두 사람이 한다. 과거에는 한사람이 낭독하였다. 낭독이 끝나면 모두 밖으로 나간 뒤 전각문을 닫는다. 2~3분 후에 수화주가 기침을 두서너 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화주들이 뒤 따라 들어간다. 제단에 국을 물리고 숭늉을 올린 뒤 물그릇에 숟가락으로 밥을 세 숟가락 떠 넣는다. 수화주가 마지막으로 절을 하고 술을 따르면 다른 화주들도 동시에 모든 신령님에게 술을 따른다. 그리고 모두 두 번 절 한다.
이렇게 하여 당고사가 모두 끝나면 곧바로 북어 한 마리와 막걸리 그리고 간단하게 마련된 서낭상을 가지고 서낭당으로 이동한다. 서낭목 앞에 마련되어 있는 제단에 서낭상과 술잔을 올리고 두 번 절을 한 뒤 북어를 서낭나무에 매단다. 화주들이 다시 전각 정문 앞에 서 있는 비석 앞으로 이동하여 비석제를 지낸다. 비석 앞에는 이미 비석 시루를 놓아둔 상태이다. 여기에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축문)
유세차
계미 사월 정사사 초일일 갑술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거주하는 동민과 하주 고하나이다. 전주지신 후토지신 두 분께서 판단하시어 사방으로 분부하시어서 각각 터를 정하여 삶의 터전을 열어 주시어서 여기에 살고 저기에 살면서 선조를 받들고 후손에게 계승하는 것이다. 돌연한 질병으로 죽기에 이르는 것을 막아 주시고 우리 동민이 화합 단결할 것을 고하기 위하여 좋은 날을 가려 목욕재계하고 엎드려 빌면서 치성을 드립니다. 높고 높으신 부군 할아버지 할머니시여 우리 동민을 어루만져 주시고 편하게 살게 하여 주시고 자손을 잘 기르게 하여 주시고 재앙이 없게 하여 주시고 역질을 쫒아 버리시고 좋은 풍속은 모아들게 하여 주시고 때에 맞추어 단비가 내리게 하여 주시고 복록이 많이 들어오게 하여 주시고 수와 복도 함께 오게 하여 주시고 만사가 대길하여 하게 주시고 마음과 항상 즐거웁고 태평하게 하여 주시고 곡식이 마당에 가득하게 하여 주시고 더웁고 서늘한 것이 일치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 이태원동이 태평세월이 되게 하여 주시고 좋은 풍속이 되게 하여 주시고 어려웁고 쉬운 일이 한결같이 하여 주시고 일마다 마음먹은 되로 이루어지기를 삼가 제수를 경건하게 올리오니 부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음향 하옵소서
축문 낭독 뒤에는 종이에 써놓은 시주자 이름과 단체 이름을 부른다. 전각 내부 당고사가 끝나면 밖으로 나가 서낭당의 서낭제, 비석 앞의 비석제를 지낸 뒤 다시 전각 안으로 들어와 음복한다. 음복할 때는 화주들 모두가 술을 한 잔씩 마시고 제단에 오른 제물을 마음대로 골라 먹는다. 참여한 주위의 사람들에게 한잔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후, 전각 밖에 있는 당나무 아래로 나와 소지 올림을 한다. 이러한 형식으로 치러지는 의례는 모두 유교식 절차에 의한다.
❍ 1999년 시월 당고사 제차
(1) 화주청 고사 (화주청 앞마루)
화주들이 화주청 마루에서 화주청상을 차려놓고 제를 지낸다.
(2) 당고사 (전각 내부)
화주들이 전각 내부에서 제를 올리고 축문을 낭독한다.
(3) 서낭제 (서낭당)
화주들이 서낭당 앞에서 서낭제를 지낸다.
(4) 비석제 (비석 앞)
화주들이 비석 앞에서 비석제를 지낸다.
(5) 음복 (전각 내부)
화주들이 전각으로 돌아와 모든 고사를 마치고 술과 음식은 나누어 먹는다.
(6) 소지올림
화주들이 전각 밖의 당나무 아래에서 소지를 올린다.
이렇게 하여 시월 초하루가 되는 날 새벽 1시 무렵에 모든 의례를 마친다. 당고사가 끝나면 제단의 제물을 그대로 둔 채 전각문을 잠그고 나온다. 다음날 10월 초하루,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참배를 모두 마친 뒤에야 철수한다. 아침 일찍부터 주민들이 초와 향을 가지고 찾아와 부군당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원하는 바의 소원을 빈다. 부군님 전에 참배한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주청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한다. 부군당에는 오후 느즈막까지 동민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제단에 올려둔 제물들은 오후 늦게까지 그대로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