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춘부장’으로 바꿔야만 점잖은 것인가?

2020.10.09 11:59:01

최현배, ‘한자는 우리에게 망국적 문자’

[우리문화신문=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구한 말 ‘한자-한문 폐지론’이 힘을 얻어갈 때, 그에 대한 중요한 반발의 큰 줄기 하나는 글이 도(유교)를 담고 있다는 사상이었다. 따라서 유교 교양을 가진 선비들은 한자-한문 폐지를 곧 유교윤리 철폐로 인식하였다. 대동학회의 여규형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한자라는 기표와 유교라는 기의가 단단하게 맺어져 떼어서 생각할 수 없었다. 한자-한문 폐지와 신식 교육의 도입, 유교적 인재를 선발하던 과거제도 폐지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관이 있었다. 그렇지만 서양 사람이 세운 배재학당에서도 한문은 주요 교과목이었다. 어쨌든 한문만 배우던 서당 교육에서 보면 큰 변화였다.

 

‘한자 폐지-한글로만 쓰기’ 운동의 주역이었던 외솔 최현배는 유학을 어떻게 보았을까? 1922년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우리말과 글에 대하야”에 유교와 한자에 대한 비판적 생각이 드러나 있다.

 

“(땅이름 등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고, ‘아버지’를 ‘부친, 춘부장’ 식으로 바꾸어) 무슨 말이든지 한어로 하면 점잖게 보이고 우리말로 하면 상되게 보인다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나쁘고 남은 훌륭하다 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저는 없애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려는 이 일이 무엇입니까. 이런 정신이 모든 방면에 동하여 우리 조선의 독특한 문화는 점점 쇠퇴하고 외국의 문화가 조선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1922.9.4)

 

 

“조신(朝臣)과 야민(野民)이 다 지나 문화에 빠져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세종대왕의 거룩한 정신을 도저하게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숭배하는 것은 공자, 맹자, 주자이오, 숭상하는 것은 한문이라 자국 문학에 대해서는 극히 경멸의 태도를 가졌습니다.”(1922.9.5.)

 

또 1926년에 <동아일보> 에 발표한 “조선 민족 갱생의 도”에서도 나라의 힘이 약해진 이유로 ‘문약정치, 조선 유교의 교조성, 자각 없는 교육, 한자의 해독, 양반계급의 횡포, 번문욕례(繁文縟禮)’ 등을 들었다. 모두 유교의 폐해에 관한 것이고 유교로 나라를 운영하던 선비층에 대한 비판이었다. 한자는 우리에게 ‘망국적 문자’(26.10.10)라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특히 사상의 독단과 교조성에 대한 평가는 단호하였다.

 

“참 이조처럼 사상이 단조하며 활기없는 시절은 없겠지. 정말 이조에서는 위험사상의 취체는 철저하였다. 요새에서도 어떤 사람의 사상선도에 모범이 될 만할 것이다. 조선 민족은 5백년 동안을 사상상으로 일종의 뇌옥생활을 하였다. ...사상의 활기가 없고 진보가 없는 사회는 침체하며 나산(懶散)하며 부패하여 추락하는 것은 필연의 세이다.” (1926년 10월 7일)

 

그러면서 조선과 달리 중국과 일본에서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한자 혼용을 이끌었던 이희승에서도 한자와 유교는 깊이 연관되어 나타난다. 1958년에 발표한 수필 <딸깍발이>에서 조선 시대 선비를 예찬하였다. 선비야말로 ‘독서인’, ‘식자인’으로서 한자 문화의 주역이 아닌가. 선비의 현실에 대한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태도, 사대모화에 따른 한글 멸시, 한문 유교경전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내리외우는 교조주의, 주자학과 다른 모든 학문을 용인하지 못하는 독점, 독단 등은 간단히 외면해 버렸다. 구한 말 지배층 선비의 부패와 무능은 외면하고 일부 선비의 의기와 청렴, 염치를 예찬하였다.

 

현실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애씀은 보이지 않고 어려움이 닥친 뒤에야 이에 저항하는 모습을 예찬하였다. 비참해진 현실을 외면하다가 마음속에서나 찾는 ‘기개’, ‘예의염치’. 이것은 너무 쉬운 정신승리법이 아닌가. <딸깍발이> 뒤에는 한글문화의 확산을 막아보려는 엉큼한 계산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모자란 이 글이 자꾸 번져나간 게 아쉽다.

 

외솔 최현배의 한글 전용론이나 한자 폐지론은 바른 언어학-문자학은 물론이고 비판적인 한국 사상사 이해, 중국과 일본과 다른 조선문화에 대한 비교 문화론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일찍부터 형성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kyh@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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