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전통종이 기술을 전한 경춘ㆍ도경 형제

2020.12.01 22:46:26

[맛있는 일본 이야기 577]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구마모토에 조선의 뛰어난 제지술을 전한 이는 경춘(慶春, 일본발음 케이슌)과 도경(道慶, 일본발음 도케이) 형제다. 이들 형제는 정유재란 때 포로로 끌려갔지만 뛰어난 제지기술을 갖고 있어 일본에서도 귀한 존재로 대우받았다. 경춘과 도경의 이름은 일본의 제지 관련 역사책이나 논문 등에서 ’바이블(성서)’처럼 인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전통종이(한지)의 고장이라고 하면 전주를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디를 꼽을까? 그곳이 바로 경춘과 도경 형제가 조선에서 건너가 살았던 구마모토다. 경춘과 도경 형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침략해왔던 장수 가등청정(加藤淸正, 가토 기요마사)에 의해 일본에 건너왔다. 이들은 다른 조선인 9명과 함께 구마모토로 건너가 당시 뛰어난 한지(韓紙) 기술을 전한다.

 

 

당시 에도시대(1602-1868)에 들어서면서부터 일본에서는 종이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나 질 좋은 종이를 보급해줄 공급처가 부족하던 때였다. 따라서 이들 형제의 제지기술을 전수한 구마모토에서는 번(藩, 에도시대 봉건영주가 다스리던 영역)의 주 수입원으로 제지기술이 급부상했다. 영주들은 형제를 특별장인(御紙漉役)으로 임명하여 이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특히 구마모토 지역에서 생산되는 닥나무의 질은 전국 최고 수준으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화지(和紙, 일본 발음 와시)는 최고의 상품(上品)으로 인정받았으며, 야마가우산(山鹿傘)과 야마가등롱(山鹿灯籠)은 수공예품으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그 기틀을 잡아 준 이들이 경춘과 도경 형제들 포함한 조선인 9명이었다.

 

 

 

이들 형제의 고마움을 기억하기 위해 마을에서는 해마다 12월 7일에 경춘과 도경 형제에 대한 마츠리를 열어왔으나 아쉽게도 근래에는 행사가 끊어졌다고 한다. 한편 구마모토 야마가시시(山鹿市)에는 이들 형제 중 형의 이름을 딴 경춘공원(慶春公園)이 있는데 이 공원은 마을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형제의 기념비 등을 모아놓은 곳이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서양의 종이가 물밀 듯이 들어오다 보니 전통종이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지역에서는 여전히 수작업으로 전통종이를 만들면서 조상들이 지켜온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구마모토 전통종이의 원조가 바로 경춘과 도경 형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참고로 경춘과 도경은 정유재란 당시에 포로로 건너간 경우지만 이보다 1천년전에 고구려 승려 담징은

일본 최초로 종이를 전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서기 610년(영양왕 21) 에 담징이 채색과 종이·먹·연자방아 등의 제작 방법을 전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본서기』 해당부분, 十八年春三月 高麗王貢上僧曇徵·法定曇徵知五經 且能作彩色及紙墨 幷造碾磑 蓋造碾磑 始于是時歟: (18년(610년) 봄 3월,고구려왕이 승려 담징과 법정을 보냈다. 담징은 5경을 알고 또한 채색및 종이와 먹을 만들었으며 연자방아를 만들었다. 연자방아의 시작은 이때부터인듯 하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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