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성역의궤》, 화성 성역의 종합 보고서

2021.02.27 12: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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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화성성역의궤(華城城域儀軌)》는 정조(正祖)가 구상한 신도시인 화성(華城) 성역 조성 전 과정을 기록한 종합 보고서입니다. 화성은 정조가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 관아와 민가를 팔달산으로 옮겨 새롭게 조성한 신도시로, 1794년(정조 18) 1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9월까지 32개월 만에 완성하였습니다. 공사 기간은 원래 10년을 계획했지만, 정조의 각별한 관심과 조정의 적극적인 역할, 막대한 자금 투입, 치밀한 설계, 근대적인 공법 등 당시 국가의 역량이 총동원되어 공사 기간이 크게 단축되었습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이러한 공사의 계획, 운영 과정, 참여자, 소요 경비, 자재, 공법, 도면 등 화성 축성의 전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도설(圖說)」에는 건축 도면을 연상시킬 만큼 성곽과 부속 건물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으로 훼손된 화성을 실제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일괄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고, 《화성성역의궤》,는 2016년 보물 제1901-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조의 뜻에 따라 금속활자로 인쇄되어 널리 배포된 의궤

 

정조는 화성 건설에 큰 노력을 기울인 만큼, 《화성성역의궤》 펴냄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정조는 1796년 11월 《화성성역의궤》 초고가 완성된 뒤 “이 책을 펴내 널리 배포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이 책의 출간을 직접 보지 못하였고, 《화성성역의궤》는 순조 1년(1801) 금속활자인 정리자(整理字)로 인쇄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궤는 9부 안팎이 필사로 제작된 것에 견주어, 인쇄본인 《화성성역의궤》는 154건이 제작ㆍ배포되었습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다른 의궤에는 없는 권수(卷首)를 두었습니다. 권수에는 공사가 진행된 일자[時日], 공사와 의궤 편찬 및 인쇄에 관련된 관원 명단[座目], 화성의 건물ㆍ축성 기구ㆍ행사의 그림과 설명[圖說]을 수록하였습니다.

 

권1~권6은 본편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성곽 축조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축성과 관련한 임금의 명령과 신하들의 보고 및 건의, 각종 행사의 내용, 공문서, 규정, 참여한 장인들의 명단, 사업 경비 예산과 결산 내용을 실었습니다. 특히 권1의 맨 앞에는 ‘임금이 지은 화성 축성을 위한 기본 방법과 계획’이란 뜻의 「어제성화주략(御製城華籌略)」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조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올린 화성 축성 계획서인 「성설(城說)」을 토대로 작성한 화성 축성의 기본 계획서입니다.

 

마지막으로 부록[附編]이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화성 외에 행궁이나 군영 등의 관아 건물[公廨], 사직단(社稷壇)과 문성왕묘[壇廟], 영화정(迎華亭)과 만석거(萬石渠), 역관(驛館) 등의 위치와 규모, 건립 비용, 관련 문서 등을 담았습니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춘 「도설」은 수원화성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킨 일등 공신

 

권수의 핵심은 「도설」입니다. 첫머리에 관련 그림을 넣어 방대한 성역의 규모를 시각적 이미지로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도설」에는 건물도, 건물 세부도, 건축 부재도, 공사 기구도, 행사도가 설명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도설」의 첫 번째 그림은 화성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은 <화성전도>입니다. 이어 장안문(長安門)을 비롯한 성곽의 건축물들은 필요에 따라 외도(外圖), 내도(內圖), 이도(裏圖: 내부 도면)로 구분하여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서북과 동북공심돈(空心墩)에 그려진 이도는 투시도법으로 표현되어 삼차원의 공간감을 입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러한 풍부한 자료 덕분에 화성은 완벽한 복원이 가능했고 이로써 1997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랐습니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건축 부재와 공사에 사용된 기구, 행사 장면 등도 매우 세밀하고 자세하게 그려 시각적 이미지로 설명을 보충해 줍니다. 특히 성곽 축성법과 관련 기구들을 상세히 설명하여 당대의 건축술, 운반 수단과 도구 등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화성성역의궤》 기록으로 본 화성 성역 공사

 

화성 성역 공사는 1784년 1월 7일 석재 뜨는 공사를 시작으로 1786년 9월 10일 공사를 마치고, 10월 16일 낙성 축하 연회를 열었습니다. 화성 건설의 주역은 정조, 화성의 기본 도시 설계를 담당한 이는 정약용, 건설공사 총책임은 총리대신 채제공(蔡濟恭, 1720~1799), 현장의 실무 책임자는 감동당상(監董堂上) 조심태(趙心泰, 1740~1799)였습니다. 축성에 동원된 숙련공인 공장(工匠)은 21종에 1,80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화성 성역 공사에는 모두 87만여 냥[현재의 돈 값어치로 약 600억 원]을 물자 조달과 인건비에 썼습니다. 특히 돌을 다루는 석수는 가장 중요한 장인으로 매일 4전 5푼[약 3만2천 원]의 임금과 쌀 6되가 제공되었습니다. 당시 화성 성역에는 전국에서 비숙련 임금노동자[給價募軍]가 모여들었고 이들에게는 매일 2전 5푼[약 1만8천 원]의 임금을 주었습니다.

 

성벽을 쌓을 때는 자연지세를 그대로 살리고 축성 재료는 돌과 벽돌을 사용했습니다. 공심돈과 암문(暗門) 등에는 벽돌을 많이 사용하여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짐을 싣고 경사지를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유형거(游衡車)와 무거운 돌을 쉽게 들어 올리는 데 유용한 거중기를 제작하여 축성 작업의 효율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화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로 동쪽 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입니다. 남쪽 팔달문(八達門), 북쪽 장안문(長安門), 동쪽 창룡문(蒼龍門), 서쪽 화서문(華西門)의 4대문과 화홍문(華虹門)과 남수문(南水門)의 2수문을 비롯하여, 암문(暗門), 적대(敵臺), 노대(弩臺), 공심돈, 봉돈(烽墩), 치성(雉城), 포루(砲樓), 장대(將臺), 각루(角樓) 등의 군사시설 외에 성신사(城神祠), 사직단, 공자묘(孔子廟), 행궁과 부속 건물로 구성되었습니다.

 

정조가 건축을 통해 일군 개혁 정치의 종합 보고서 《화성성역의궤》

 

정조는 즉위 뒤 13년이 지난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花山)으로 옮깁니다. 1793년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킨 이듬해 화성 성역 사업을 시작하여 1796년 끝냈니다. 화성 신도시는 정조의 계획 아래 행궁, 성곽, 도로, 교량, 수문과 시장의 도시기반시설 및 저수지와 국영농장 등의 농업생산시설, 공격과 방어의 군사시설 등을 갖춘 계획도시입니다. 따라서 《화성성역의궤》는 단순한 건축 보고서가 아니라 정조의 개혁 정치의 꿈을 담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성성역의궤》는 오늘날의 화성이 있게 한 으뜸 공신이고, 18세기 정조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풍속, 예술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역사 문헌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윤희) 제공

 

 

이한영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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