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어른 – 역사 속 7인 성장 분투기

2021.11.29 11:43:13

《소년, 어른이 되다》 설흔, 위즈덤하우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청춘(靑春)!

푸르디푸를 것만 같은 ‘청춘’이라는 시절. 모두가 한 번쯤 거쳐 가는 그 축복 같은 시절. 청춘을 지나며 소년은 어른이 된다. 이 젊은 날들은 모든 것이 희망차고, 따뜻하고, 순조롭기에 ‘푸른 봄’이라 불리는 걸까.

 

그러나 청춘을 지나온 이라면 알 것이다. 그 시기가 그렇게 푸르지만은 않다는 것을. 현실과 이상의 괴리, 스스로에 대한 회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실망. 청춘은 이 모든 것이 점철된 채, 인생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문을 한껏 안고 힘겨운 발걸음을 떼는 시기다.

 

설흔이 쓴 이 책 《소년, 어른이 되다》에 실린 7명의 소년도 그랬다. 목차만 훑어봐도, 이 소년들을 수식하는 형용사는 범상치 않다. 홀로 바다를 건넌 소년 최치원, 과거에 거듭 실패한 소년 이규보, 학자와 관리 사이에서 방황한 소년 이황, 아버지를 원망한 소년 이이, 죽음을 일찍 깨달은 소년 허균, 부당한 차별에 눈물을 쏟은 소년 박제가, 신경증에 시달린 소년 박지원.

 

 

이들에게 청춘은 마냥 푸른 봄날은 아니었다. 아니, 푸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가까웠다. 어쩌면 인생을 겨울부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들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는 버거웠다.

 

시련은 영웅을 만들어낸다고 했던가. 지은이는 이들이 시련을 이겨내고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사료에 상상력을 더해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해냈다. 이들이 어린 나이에 마주쳤던 벽은, 자신의 작은 키에 견줘 너무 높아 보였다. 그 벽을 넘기 전까지는 모두가 갸우뚱했다. 벽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 저 소년은 그냥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닌가?

 

그러나 이들이 그 벽을 넘어서자, 사람들은 일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될성부른 싹’이었고, 어려서부터 워낙 비범해 잘될 줄 알았다고. 그러나 지은이는 이것이 결과론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또한 주위의 기대에 힘들어했으며,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고,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괴로워했다고. 이들도 성공하기 전까지는 그저 방황하는 청춘이었을진대, 지금 청춘을 보내는 모든 이 또한 예비 영웅 후보들이라고.

 

(p.5-6)

높다란 벽이 소년들 앞을 가로막고 있다. 벽의 구성은 조금씩 다르다. 어떤 소년은 가족의 죽음 앞에 서 있고, 또 어떤 소년은 무시와 차별 앞에 서 있고, 또 어떤 소년은 무기력한 자신 앞에 서 있다. 구성은 달라도 벽은 벽이니 결국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망치로 부수든, 뛰어넘든, 우회하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벽을 넘어서는 일이므로. 옛날 소년들이라고, 근본부터 잘난 소년이었다고 딴지를 걸 수도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벽은 여전하며, 잘났다는 건 결과론적 해석이라고 답하고 싶다. 성공한 소년의 삶은 영웅담으로 바뀌기 마련이기에. 긍정적으로 해석하자. 우리 앞에 선 소년들은 예비 영웅 후보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소년들이 온갖 괴물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는 ‘영웅 서사’에는, 세 가지 법칙이 있다. 첫째, 모든 것이 평화롭기만 했던 어린 시절은 없었다. 이들은 소년 시절부터 제각기 큰 삶의 무게를 떠안고 있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사랑받기도 했지만, 이런 소년들이 으레 보이는 자질 – 총명하고 영민한 자질 – 때문에 가문의 기대주로 어린 나이부터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했다.

 

특히 최치원이 그랬고, 이규보가 그랬다. 최치원은 아버지 최견일이 육두품의 한을 풀고자 12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 보낸, 최씨 가문의 대표 기대주였다. 지금도 12살 나이에 홀로 조기유학을 떠난 아이가 엇나가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치원이 말도 통하지 않는 당나라에서 외국인으로 과거에 급제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최치원은 그 어려운 걸 결국 해냈다. 심지어 당나라로 간 지 6년만인 18살에 과거에 급제, 관직을 제수받고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부모와 떨어져 어린 시절을 강제 회수당하긴 했지만, 소년 최치원의 천재성과 절제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고려의 이름난 문신 이규보 또한 총명한 자질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이윤수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 14살에 사립학교 성명재에 입학했다. 그리고 요즘으로 치면 성명재 ‘전교 1등’을 몇 차례나 하며 모두가 과거에 금방 합격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이, 과거에 줄줄이 낙방했다.

 

마침내 간신히 붙기는 했으나 성적은 높지 않았고,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청춘으로 ‘참 안 풀리는’ 시기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결국 이규보의 과거 동기 가운데 가장 오랜 관직 생활을 한 사람도, 가장 높이 올라간 사람도 이규보였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일찍 겪는 경우가 많았다. 율곡 이이가 그랬고, 허균이 그랬다. 율곡은 16살에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고 한동안 방황했다. 아버지가 첩을 들이며 방황은 더 심해졌다. 결국 자신의 진로에 흠이 될 것을 알면서도 금강산에서 승려 생활을 할 정도로 마음을 잡지 못하다가 마침내 20살에 세상으로 귀환, 우리가 아는 천재 이율곡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허균 또한 명망 있는 가문의 귀한 막내로 유복한 환경에서 사랑받기도 했지만, 가까운 이들을 이른 나이에 떠나보내야 했다. 12살에 아버지 허엽이 세상을 떠나고, 20살에 친형제같이 지내던 벗 금각과 정신적 지주로 의지하던 작은형 허봉을 잃었다. 이듬해에는 누나 허난설헌을 잃고 곧이어 임진왜란으로 아내와 아이까지 잃으며 참으로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이 모든 죽음을 겪으며 삶의 허무함을 일찍 깨친 허균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연연하지 않는 율도국을 꿈꾸게 된 거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셋째, 자신의 처지와 주어진 환경 사이의 괴리로 심한 내적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자신은 누구보다 출중한 재능을 타고났으되 서얼이라 출사하기 어렵다면? 또는, 자신은 관직에 나아가고 싶으나 집안 분위기는 출사보다는 은거를 택하는 ‘처사’를 권한다면? 박제가는 집안의 가난과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고통받았지만,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같은 걸출한 인물들과 ‘백탑파’를 만들어 교유하며 허전함에서 벗어났다.

 

박지원은 조선 후기 사상계를 주름잡았던 노론, 그 가운데에서도 노론 청류라 불리는 집안의 인물이었다. 자신의 학문적 스승이기도 했던 장인 이보천은 영조 치세에 관직에 나아가는 것은 가짜 선비와 다를 바가 없으며 은둔하는 ‘처사’가 될 것을 권했다. 그러나 박지원은 출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출사와 처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으며, 이 갈등의 정도는 무척 심각해서 심각한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박지원은 이 갈등을 ‘문장가’가 되는 것으로 봉합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한 관료도 완벽한 처사도 되지 못한 것이 그를 더는 아프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아파하지 않는 초연함을 갖추며, 그는 소년에서 어른으로 거듭났다.

 

한 인간이 소년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는 데는, 자신을 둘러싼 아픔과 슬픔의 벽을 넘어뜨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벽이 아무리 높고 견고해 보일지라도, 한번 무너진 벽은 길이 된다. 더 큰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이 책에 나오는 7인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행하긴 어려운 그 일을 결국 해낸 인물들이다. 벽이 높아야 영웅이 된다. 저자의 흡입력 있는 서사가, 지금 아파하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도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왜냐면, 역사 속 그들도 그랬으니까.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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