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김동하 작가] 아버지는 물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신 분이다. 마시는 물이건, 목욕물이건, 좋은 물과 그렇지 못한 물을 구별해 내는 수준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아토피 증상이 있으셔서 그런지 피부가 무척 건조하셨는데, 나이가 드셔서는 피부에 단백질이 부족하셨던지 자주 갈라지고 예민해지셨다.
그래서 물이 좋다는 목욕탕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셨는데, 덕분에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좋다는 목욕탕이나 사우나, 온천 등은 수없이 다녔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리에 눕게 되신 뒤, 나는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 같은 곳에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물에 관한 관심 때문에 아버지는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당하셨다. 팔순이 넘어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실 만큼 당신의 열정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항상 5리터, 10리터짜리 물통을 몇 개씩 오토바이 뒤편에 싣고 물이 좋다는 산에서 약수를 떠 오시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많이 내셨다.
물이란 것이 사실 가만히 있을 때보다, 출렁거리기 시작하면 실제 무게의 몇 배나 되는 힘으로 좌, 우를 흔들어 댄다. 그래서 아버지는 오토바이에 실어 나르시던 물통과 함께 넘어져서 병원에 실려 가시는 고초를 여러 번 겪으셨다.
약수를 떠 오실 수 없으면서부터는 아버지는 ‘삼다수’만 드셨다. 그 물만이 잡맛이 없고 좋은 물이라고 하셨다. 아무리 비싼 생수를 사다 드려도 오로지 삼다수가 최고라고 하셨다. “아버지, 평창도 물이 좋다는데... 한번 드셔봐요.”라고 권해 드렸지만, 오로지 물은 ‘삼다수’만 찾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 병원에 계실 때, 나는 항상 약수를 길러 가시던 그 오토바이를 영원히 치워버렸다. 혹여나 퇴원하시면 또 타시겠다고 우기실까봐....
하지만 아버지는 치매 때문인지 내 염려를 알고 계셔서인지, 당신의 오토바이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무척 다행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더는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손녀를 태우고 마트에 가시던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손녀를 태우고 마트 가실 때마다 행복해하시던 그 모습은 내가 아버지를 알고 지낸 세월 속에서 가장 즐거워하시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