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마지막 10달 동안의 삶

2022.02.17 12:24:52

한국근대문학관,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육첩방의 시인> 행사 열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은 스물일곱 청년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숨을 거둔지 77주기를 맞는 날이다. 어제(16일) 저녁 6시 30분,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 본관 3층 다목적실에서는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육첩방의 시인> 행사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모두 2부로 구성했는데 1부는 윤동주의 마지막 유학시절을 보냈던 교토를 중심으로 만든 손장희 감독의 다큐영화 <타카하라(高原)> 상영이 있었고 2부에는 다큐영화를 만든 손장희 감독과 심원섭 (와세다대학 교수 역임) 교수의 대담 그리고 참석자들과의 질의 문답 시간이 있었다.

 

 

입춘이 지나 한동안 푹하던 날씨가 어제는 갑자기 영하 10도로 떨어져 몸을 움츠리게 하는 가운데 열린 윤동주 77주기 추모회 모임에서 사회를 맡은 심원섭 교수는 “윤동주 시인이 숨져간 후쿠오카 형무소의 추위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라는 말로 이날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후쿠오카 형무소, 추위, 돌아갈 수 없는 북간도 고향, 어머니, 도시샤 대학, 다카하라 하숙집, 가모가와강변, 정든 친구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기자는 유달리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던 윤동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아마 이러한 정경을 아스라이 그리며 숨져갔을 청년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이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일곱!

 

 

화면 가득히 윤동주의 유학시절 하숙하던 타카하라(高原) 주변과 무심한 사람들의 발걸음, 신호등, 기찻길, 자전거탄 인물, 골목길 등이 조용한 효과음 속에 잔잔하게 펼쳐진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어디선가 유학생 윤동주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듯한 묘한 분위기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 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가운데 일부-

 

육첩방(六疊房)이란 다다미방의 크기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의 평수로는 3평 크기다. 그가 이 시를 쓴  것은  도쿄 유학시절이다.  육첩방 밖, 남의 나라 일본, 조국을 침략한 일본땅에서 어릴 때 동무를 죄다 잃어버리고 과연 자신을 무얼 바라고 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졌을 청년 윤동주의 삶이 45분 동안의 다큐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사실 저는 윤동주 시인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제가 유학하던 교토조형예술대학에 서 있던 윤동주 시비(詩碑)를 날마다 보고 다녔지만 큰 감동은 없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새로 만나게 된 계기는 졸업작품을 통해서였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윤동주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전문가적인 시각보다는 나처럼 윤동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윤동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는 윤동주 시인을 다룬 다큐영화 <타카하라>를 만든 교토조형예술대학 영화과 출신의 젊은 감독 손장희 씨 말이다. 손장희 감독은 이제 사회의 첫발을 내디딘 햇병아리 감독이다. 그런 그가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이 있던 그 자리에 들어선 교토조형예술대학 영화과에 입학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손장희 감독은, “영화과에 한국인 유학생은 저 혼자였습니다. 유학생의 입장이라 윤동주의 유학시절을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혼자 고립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윤동주 다큐영화를 만들면서 큰 변화를 느꼈습니다. 우선 영화과 교수님들의 많은 격려가 있었으며 일본인 친구들의 적극적인 협조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인터뷰에 응해주었던 전문가들을 통해 완성도 높은 다큐영화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윤동주 시인은 한국과 일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하나의 가교적인 역할을 해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윤동주 시인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라고 심원섭 교수와의 대담에서 말했다.

 

 

 대담을 맡은 심원섭 교수는 “이번 다큐영화의 특징은 윤동주 시인 마지막 10달 동안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이 타카하라의 하숙집에서 도시샤대학까지 걸어 다니면서 마주쳤을 풍경들, 그리고 유달리 산책을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의 일상을 짐작할 수 있는 주변 환경, 더 나아가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증언자들의 상세한 증언 등은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든 유익한 내용이었다.”고 다큐영화를 평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참석한 도다 이쿠코(관동갤러리 관장) 씨는 “윤동주 시인 하면 떠올랐던 식민지 청년의 안타깝고 슬픈 이미지가 컸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큐영화를 보면서 윤동주 시인의 교토에서의 삶을 새삼 반추해 보게 되었다. 아울러 손장희 감독이 교토 지도를 펴 놓고 윤동주 시인이 도시샤대학을 오고가며 거닐었던 산책로 등의 설명을 들으며 교토에서의 삶이 반드시 불행했던 시간만이 아니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고 했다.

 

이날 행사는 유튜브 동영상으로 실시간 방영되었는데 일본에서 방송을 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의 대표인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손장희 감독이 만든 다큐영화 '타카하라(高原)'는 일본학생들과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한일간 어른들이 협조로  만들어낸 멋진 기획 작품이다. 손장희 감독의 이러한 작업은 마츠오카 미도리 씨를 비롯하여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의 여러분들이 항상 응원하고 있음을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다” 라고 했다. 이날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는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 회원들이 상당수 유튜브를 시청했다고 전했다.

 

 

또한 윤동주 시인을 사랑한다는 참가자 유난주(서울 망원동, 56) 씨는 “집에서 유튜브로 보려다가 친구와 함께 일찌감치 신청하고 오늘 참석했습니다. 행사 전에 공개한 윤동주 시인의 1948년 초판본 시집을 보니 왠지 가슴이 뜁니다. 일제침략이 없었다면 스물일곱 꿈 많은 청년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때, 우리들은 학교 대신 공장 등에서 전쟁 물자를 만드는 일을 해야했습니다’ 라는 일본 할머니의 증언이 인상에 남습니다. ”라고 하며 그는 “윤동주 시인이 왜 숨져가야 했는지를 일본인들은 역사 왜곡 없이 바라다 봐야할 것” 이라고 이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코로나19 돌림병으로 지난 2년여 동안 일본과 한국 등에서는 거의 윤동주 관련 행사를 하지 못했다. 다만 뜻있는 단체에서는 온라인상으로 행사를 조촐하게 해왔을 뿐이다. 어제 인천근대문학관에서 열린 <육첩방의 시인> 모임은 윤동주 순국 77주기를 추모하는 뜻에서 매우 값진 행사였다. 이 행사는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주관, 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과 BK교육연구단 주최로 열렸으며 철저한 방역과 거리두기를 지키며 10여 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유튜브 영상으로 동시 진행되었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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