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쟁의 의미를 생각한다

2022.06.22 11:55:19

강화 볼음도와 북한 황해도 연안군 800년 은행나무의 재혼식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5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5월이 나무와 풀, 꽃들이 모두 새잎을 내고 꽃을 피워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6월로 접어들면 그러한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봄의 환희가 잦아들 때도 되어가고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보다도 6일의 현충일이 있고 25일에는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일어난 날이 있는 달이기에 아무래도 북쪽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피를 흘리며 죽어간 당시 우리의 젊은 군인들과 무고한 민간인들, 거기에 이 전쟁에 참가해 죽어간 외국의 젊은이들 생각까지 하게 되면서 더는 아무 생각 없이 계절에 취해 흥겨운 날을 보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지난달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는 날은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고 하겠다. 이날 새 대통령의 참배를 비추기 위해 국립 현충원 상공에 뜬 드론을 통해서 현충원의 전경을 보게 된 것인데, 평소 땅에서 먼저 가신 영령들 묘비에 꽃을 올리고 추모하는 광경만을 보다가 전경을 보며 저렇게 넓은 땅에 온통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저리도 많이 누워계시는가? 하고 생각하니 새삼 전쟁의 비극과 순국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저기에 묻힌 분들 모두에게 아버지 어머니와 누이 등 가족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가족을 잃은 아픔으로 지난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다. 지금은 저 묘역으로 부족해 제2 제3의 국립묘역을 만들었다는데, 적어도 6.25 전쟁 때에 숨진 분들은 거의 다 현충원의 저 묘역에 안장돼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 저렇게 많은 분이 목숨을 바쳤는가 하며 놀라게 된 것이다.​

 

그래도 현충원에 안장되신 분들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이 전쟁이 발발 1년여쯤 지나 장기 대치 상태로 들어간 이후 휴전선 일대에서 쌍방이 밀고 밀리는 처절한 피의 전투를 벌여 매일 매일 수많은 젊은이들이 땅 한 뼘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잃었는데 그때의 그 격전지에서 생을 펴지도 못하고 먼저 간 영혼들이 다 수습이 되지도 못해 휴전선 철책 밑바닥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을 생각하면 한명희 선생님의 비감한 노랫말로도 다 표현 못 한 민족의 슬픔, 전쟁의 아픔이 거기에 묻혀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전쟁이 일어나고, 휴전되어 내년이면 벌써 70년이다. 북한 함경도에서 이른바 1.4후퇴 때 극적으로 미군 배를 타고 단신 월남하게 되어 해마다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시던 필자의 장인도 돌아가신 지가 한참이 된 데서 보듯 이제 남북으로 찢어진 가족들은 생존자가 점점 줄어들어 가족들을 보거나 만날 기약이 더욱 멀어지고 있어서 이러다가 어쩌면 이산가족이란 말 자체도 역사 속으로 들어갈 때가 오는 게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해보기도 할 정도로 남북 간의 만남이나 교류의 가능성은 더욱더 희미해지고, 원래 한 나라 한 민족이었던 남과 북은 남남 같은 다른 나라로 변해가면서 여전히 전쟁의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 한심한 상황이 아닌가?

 

우리는 어쨌든 남북이 갈라진 채로 휴전 이후에 근 70년을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넉 달을 넘기면서 많은 젊은이가 총탄과 포탄에 목숨을 잃고 있고 민간인들도 전쟁이 주는 온갖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우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남과 북의 전쟁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닌 양쪽의 상황 봉합으로 귀결되었다. 애초에 먼저 북에서 침공을 해서 시작된 것이기에 그 응징을 위해 우리 모두 전쟁에 참여하고 목숨을 걸었지만, 강대국들의 참여 속에 어느 한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하지 못하고 지리한 휴전회담이 이어지면서 날마다 수백 명씩 죽어 나가기만 한 것이 얼마인가?

 

지금 우크라이나는 침략군을 격퇴하는 전쟁이 계속중이지만, 전황은 어느 쪽에도 유리하지 않고 혈전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625도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도 워낙 큰 나라와 진영간 대립으로 확대되면서 한쪽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그 말은 이런 전쟁은, 과거 우리의 625전쟁에서 그랬듯이, 애꿎은 젊은 목숨들, 저마다 꿈을 키우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던 젊은이들이 채 꿈을 펴지도 못하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씩 죽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된 나라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전쟁에 이겨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 진정하고 냉철하게 서로 전쟁을 멈추는 쪽으로 생각을 바꿀 수 없을까? 전쟁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수천수만의 목숨을 살리고 가족과 가정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제 전쟁을 멈추는 방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바로 걸려있지 않으니까 애국심에 호소하며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나라 안팎의 가용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생명을 소모하는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라면, 그런 전쟁에 대한 관념 때문에 죽어가는 그 나라의 아들딸, 또 강간 학살당하는 여성들을 이제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쟁에서의 정의를 찾기 위한 명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참여한 사람들의 희생도 늘고 있다.

 

우리의 625전쟁이 공산침략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침략전쟁을 일으킨 책임도 묻지 못하고 휴전선에서 봉합으로 가버린 것은, 현대에서의 전쟁은 미국의 이란 공격 때처럼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고 하겠다. 러시아건 우크라이나건, 공격을 먼저 한 나라건 그것을 막아야 하는 나라건, 누가 옳고 그런가를 떠나서, 전쟁에서 숨지는 젊은이들을 묻을 묘지가 더 얼마나 넓어져야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거기에 정의는 없다. 최선의 전쟁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을 빨리 끝내는 것이 전쟁에 이기는 것이라고 옛 중국의 전쟁신인 손자(孫子)는 말했다. 가장 위대한 승리는 적국의 사람들, 자기들 편의 사람들을 죽이며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집의 자식이 살아서 돌아오고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진작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남북문제는 언제나 풀릴 수 있는가? 점점 대결로만 치닫는 것은 아닌가? 우리도 이 대결을 넘어서려면 지도자들의 생각과 각성이 관건일 텐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때 풀릴까 하던 기대가 무너진 지금 점점 강해지는 듯한 대결을 풀 수 있는 깨달음은 없는 것인가?​

 

강화도의 작은 섬인 볼음도에는 북한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에 살던 은행나무가 800년 전 큰 홍수로 떠내려와 이곳에 혼자 살고 있는데, 원래의 고향에는 암 은행나무가 남아 있어 800년 넘게 이산가족으로 떨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여서 이 둘이 같이 옆에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남북의 철책선이 뚫려 이 두 나무의 영혼이 다시 결합하는 재혼식을 열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곳 주민들은 해오고 있다는데, 우리들도 이달에 72주년 625가 다가오니, 그런 소망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사소한 것 같은 이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 그날은 우리 민족이 이미 다시 서로 손을 맞잡고 정을 나눌 수 있는 날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그런 날을 소망하는 것으로 이 무겁고 답답한 6월을 견디어본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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