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2022.12.31 13:00:40

허홍구, <얼굴을 감추고 싶다>
[겨레문화와 시마을 12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얼굴을 감추고 싶다

 

                                - 허홍구

     

     철없고 겁 없던 시절

     모자라는지도 모르고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마구 쏟아 놓은 말과 글

 

     여물지 못한 저 쭉정이와

     가볍게 휩쓸리는 껍데기

     이제 지워 버릴 수도 없고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건방 떨던 못난 짓거리

     아직도 이리저리 흩어져

     죽지도 않고 돌아다닌다.

 

     어이쿠, 부끄러워라

     부끄러운 흔적 어찌 지울까요

     하느님, 부처님, 독자님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사슴>의 시인 노천명은 인터넷에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어 있다. 노천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청년들의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권유하는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출정하는 동생에게’, ‘병정’ 등을 발표하고,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산하 부인대(婦人隊) 간사를 맡을 정도로 친일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천명에게는 웃지 못할 일화가 따라다닌다. 그것은 광복 직전인 1945년 2월 25일 펴낸 시집 《창변(窓邊)》에 관한 이야기다. 노천명은 《창변》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이 시집 끝에는 9편의 친일시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광복되자 그것이 마음에 걸린 노천명은 이 시집에서 뒷부분의 친일 시 부분만을 뜯어내고 차례는 친일시 제목을 창호지로 가린 채 그대로 팔았다. 전쟁 말기 상황에서 미처 팔지 못하고 쌓아 놓고 있던 시집이 아까웠을까? 말년에도 반성하지 못한 그의 행적이 참 안타깝다.

 

누구나 평생 부끄러운 일 하나쯤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을 말년에 반성하는 이라면 그 부끄러움을 우리는 탓할 수가 없다. 여기 허홍구 시인은 그의 시 <얼굴을 감추고 싶다> 시에서 철없고 겁 없던 시절부터 모자라는지도 모르고 말과 글을 마구 쏟아 놓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어이쿠, 부끄러워라 / 부끄러운 흔적 어찌 지울까요 / 하느님, 부처님, 독자님 /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사죄한다. 설령 허 시인이 모자란 글을 쏟아냈다 한들 그 어떤 이도 이렇게 반성하는 그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게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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